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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베이스캠프

thezine 2018. 3. 2. 00:08

오래 전 학생 시절, 연애 감정을 베이스캠프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다.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오는 곳, 위안과 휴식을 얻는 곳.

베이스캠프는 다시 돌아올 곳이기 때문에 평소 소홀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오래 머물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소중히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저 방은 이도 저도 아닌 대기소 같은 공간이었다. 모든 조명을 다 켜도 환해지지 않던 방, 그보다 더 어두운 욕실, 카페트 틈 촘촘히 먼지가 가득했던 곳. 감옥 같기도 했던 생활... 늘상 잠시 후의 일정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 여행을 다닐 때마다, 특히 다시 올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되는 곳에서는 더더욱, '이 공간은 나에게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곤 한다. 여행이 좋건 어떻건, 이것이 이 공간과의 짧은 인연의 전부라는 쓸쓸한 느낌. 그런 마음으로 계단 모퉁이의 평범한 조각상이나, 허름한 식당에서 열심히 골랐지만 맛은 시시한 음식조차도 진지하게 음미하곤 했다. 일단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집에 돌아와 이틀 정도는 보고 싶었던 아이들을 안아주고 살을 부빌 수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예상 밖에 밀려드는 모임으로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저 방에 처음 도착한 후 찍은 방 사진을 다시 보고 있다. 여~엉, 정이 가지 않던 나의 광저우 베이스캠프... 아니, 대기소.

지금 저 사진을 다시 보니, 마치 거울 속 다른 세계처럼 그 곳에서는 여전히 '또 다른 나'가 새벽에 일어나 밥을 먹고, 골프를 준비하고, 잡다한 일거리를 처리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쉽지 않겠다' 생각은 했는데 예상을 뛰어넘게도... 호사 하나 없이 다마가 밀려온다. 원래 든 자리 모르고 난 자리 아는 것처럼, 그리고 잘 되가는 것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싶고 골칫거리들만 눈에 띄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날짜를 꼽아가며 '이제 44%가 지났다'느니 했던 시간과 비교해보면, 다마든 소마든 지금 이곳에 있는 편이 낫다... 숙제를 미뤄두고 있던 기분이었거든. 내가 마감기한을 미뤄도 시간은 짤 없이 흘러서 이런저런 선택을 내리게 만들어준다. 게으른 사람에겐 필요한 도움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슬슬 귀국 생각이 들 무렵부터 Eminem 노래 가사 중에 'Snap back to reality, oh there goes gravity'가 자꾸 머리 속을 맴돌았지. 돌아온지 며칠이 지나 이제서야 진짜 현실로 돌아온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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