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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엄숙을 주의하시오

thezine 2018. 6. 4. 00:03

일본을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래 저래 몇 곳을 몇 차례 다녀봤는데, 얼마 전 일본 출장은 그 전과 달랐다. 예전엔 느끼지 못한 일본의 엄숙주의를 유독 체감할 수 있었던 시간.

마지막 날 새벽에 길을 나서는 2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일본식 진지함에 대해 생각해볼 계기가 많았다.

 출장 업무 자체도 일본 특유의 기업 문화가 단점으로 작용했을 때의 모습과 관계가 있었다. (한국도 일본을 제외하면 '이 정도 얘기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어야지?' 하는 'High context -간접적으로 문맥 상의 뉘앙스를 파악해야 하는- 문화로는 손 꼽힌다고 하던데... 직설적으로 손꼽히는 독일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할 때 좀 답답할 수도 있겠다, 사무실 옆에 아우디폭스바겐 한국 본사가 있는데 그 사람들 생각이 문득 궁금해지는...)

아무튼 한국식 소통도 답답하기론 어느 나라 못지 않다곤 하는데, 이번 출장에선 특히나 일본식 커뮤니케이션이 답답하게 느껴지던 차... 그래서 그런지 한편으론 그렇게 쓸데없이(?) 진지한 덕분에 여러 면에서 이만큼의 성과를 이루었겠다는 생각도 했다.

첫 사진의 라멘을 만드는 주방 사진. 사장 없이 모두 알바들이 조리를 하는 듯 했지만 면을 삶는 시간이나 물기를 터는 횟수, 육수의 양과 고명의 양 등등... 물론 그냥 내 생각인데 미세하게 조정해서 매뉴얼화한 듯한 느낌. 그러니 새벽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이곳에서 해장을 한다고 하는 거겠지. 인기가 많아서 다들 아는 곳이라던데 라멘과 유자가 이렇게 어울릴 줄이야... 일본 라멘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지금도 다시 먹고프다.

일본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인데 수십 명이 길다란 탁자 주변에 가득 앉아있다. 실제 장면이었다면 서열과 기타 등등 규칙에 따라 수십 명의 앉는 자리도 정해져 있었을 것 같고, 말이 '회의'이지 말을 하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은 극 소수였을 것 같은 느낌.

그놈의 진지함 덕분에 수 많은 개인들은 없어도 되었을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이고, 대신 일본이라는 나라/문화는 그 대가로 일정 부분 성취를 이뤘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다. 만리 장성을 쌓느라 국력이 소모하였지만 후대에 훌륭한 관광지를 남기는 것처럼 당대인의 불행이 무언가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 것.

그런 면에선 아이러니하긴 하다. 서태후가 해군을 키울 돈으로 연못을 파서 물놀이를 즐겨 청나라 망국의 일등공신이 되었다는데 그곳은 지금은 북경의 손꼽히는 관광지.

아무튼 일본은 그렇게 자기들끼리 수 많은 프로토콜을 만들어내고 그걸 지켜야 하고, 그걸 안 지키면 눈총을 받고 하는 자기들만의 규칙 속에 살아간다.

아마 일본인들 스스로도 가끔은 그런 문화가 답답하면서도 막상 그런 규칙 없이 사는 사람과 어울리게 되면 '너무 규율 없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규율이 적당한 수준이다'라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사람은 보통 본인이 익숙한 것이 적당한 수준이라고 느끼기 마련이니까.

물론... 모든 일본이 그런 건 아니다. 나리타 공항의 돈까스는 대학가 싸구려 식당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학창시절 서문분식 A4돈까스와 비교해서 값은 세 배, 맛은 비슷... 마지막은 좀 씁쓰~~을 했다는 결론. '엄숙주의'도 고유의 문화이긴 하지만, 그래도 과도한 '엄숙'은 '주의'하자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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