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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란 말의 범위에 대한 횡설수설 (UN의 단일민족국가 개념 극복 권고 관련) 본문

시사매거진9356

'한국인'이란 말의 범위에 대한 횡설수설 (UN의 단일민족국가 개념 극복 권고 관련)

thezine 2007. 8. 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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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media.daum.net/foreign/others/200708/19/yonhap/v17825528.html


 UN에서 단일민족국가 이미지를 벗으라고 권고를 했다고 한다. 그 기사 밑에는 예상대로 'UN이나 잘 해라, 백인들이나 잘 해라' 하는 식의 분노에 찬 리플만 주루룩 달려있다. 이 리플들에 실린 일부 이성적인 반박 정도는 방어 논리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단일민족국가라는 허구적인 개념은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당연한 듯 사용했던 '살색 크레파스'같은 표현, 이제는 산자부 규격을 '연주황'으로 바꿨다고 한다. 한국 사람만 해도 살결이 하얀 사람, 꽤 까무잡잡한 사람이 모두 있는 만큼 진작부터 말이 안되는 표현이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작지 않은 변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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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오래전에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온 재미/재일 교포들과 알게 되면서부터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이 해외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건 교포들 덕이 크다. 한국으로 오려는 외국 학생들이 있어야 그 나라로 학생들을 보낼 수 있다. 재외교포의 후손들, 피입양자들이 지속적으로 한국을 알고자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지원하기 때문에 incoming 수요가 유지된다.)

  그리고 중국에서 지내본 이후, 한국인과 조선족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그리고 서울 거리에서 나날이 많이 보게 되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외국인과 한국인의 구분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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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만 해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외국인은 미군 뿐이었다. 그 외에 선교사, 외교관, 외국계 회사 주재원도 있지만 숫자가 적으니 눈에 띌 리가 없었다. 그래서 '외국인=백인=미국인(미군)'이라는 관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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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금은 '미군'은 외국인의 일부분으로 전락(?)했다. 가장 먼저 늘어난 외국 인구 중 하나가 바로 조선족 아줌마들일 것이다. '식당 아줌마'를 지금까지도 서서히 대체해오고 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식당의 종업원들이 조선족이다.

 조선족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중국의 한인회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족과 한국인들 사이에 모종의 충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조선족들은 조선족대로 '왜 조선족만 조선족이라고 부르느냐, 재일교포나 재미교포처럼 재중교포라고 불러야 한다', '왜 중국 현지에서 같은 일을 해도 한국 사람은 월급을 더 많이 주느냐'와 같은 불만이 있다.

 이제 한국에서 너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조선족' 혹은 '재중교포'. 차별은 하지만 언어가 통하고 생김새가 같다는 점에서 외국인 치고는 동질감이 더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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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이런 현수막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아가씨들이 아이를 낳아 자라서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족에 대해 생각할 때 함께 생각해볼 만한 개념이 바로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이다. 나는 흔히 주변사람과 이야길 할 때 조선족은 중국사람, 화교는 한국사람이란 이야길 하곤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몇십년을 살아온 사람의 뿌리가 바다 건너 어디라고 해서 굳이 차별화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조선족(재중교포)는 중국사람이라는 말로 그들을 '외국사람'으로 무 자르듯 구분 짓는 것도 어렵다. 재미교포, 재일교포를 만나고 이야길 나누며 느낀 바가 많다. 특히나 뿌리에 대한 의식을 이민 부모세대로부터 어느 정도 물려받은 그 친구들에겐 때론 스스로를 외국사람이라고 느끼고 때론 스스로를 한국사람이라고 느끼는 현실이 혼란스럽다거나 정리가 안된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앞에서 굳이 '너는 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재미교포들과 롯데월드에 단체로 놀러갔을 때인가, 교환학생들을 위해 따로 준비한 김밥이 있었는데 '이건 교포(=교환학생)들 먹으라고 준비한 거라'는 취지의 말을 하다가 '이거 미국사람들 먹으라고 준비했다'고 했더니 한 여자애가 "우리 미국 사람 아니예요." 라며 불만섞인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외국인들은 대체로 싫어했던 Bush대통령을 욕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Bush에게 투표했다며 Bush를 옹호하던 친구, 한국과 미국이 경기를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할지 헷갈린다던 친구, 나에게 '미국사람'으로 불린 게 섭섭했던 친구.

  나도 좀 헷갈린다. 어디까지 '우리'이고 어디까지 '그들'인지. 지금 드는 생각엔, 아마도 '그런 경계가 생각했던 것 만큼 명확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깨닫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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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이주 노동자들까지

 
 어릴 때부터 '한민족'='한국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그렇게 많이 외침을 당했으니 그 과정에서 피도 많이 섞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한 때, 부산 인구의 절반 이상이 대마도, 일본섬에서 건너온 왜인들이었다. 북쪽으로는 만주족, 한족, 몽골족 등 타민족과 빈번한 교류와 침략이 있었을 테고 말이다.

 실제로 한국사람 중에도 피부가 하얀 사람, 까무잡잡한 사람, 머리카락이 새카만 사람, 머리카락이 갈색인 사람이 있고 눈동자 색깔도 약간씩 다른 경우가 많다. 단순히 혈통(애완견도 아닌데 혈통 따지기도 우습지만)만 따져도 이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민족개념에 집착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넌센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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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간 한국사람들은 스스로 '한국 사람'의 정의가 바뀔 때라는 각성을 해야 한다. 미국에 사는 수 많은 나라 출신들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여기듯, 한국에 사는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와 그 후손들에게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화교는 중국 사람, 동남아 출신 이민자의 후손은 동남아 사람으로 남겨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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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영어강사도 무지 많다. 티벳에 갔을 때 만난 외국인 여행자 대다수 역시 중국에서 일하는 영어 강사들.


 중국에서 알게 된 한 미국인 교수가 있다. 중국에서 산지 10년이나 되었고 중국말도 잘 하지만 여전히 중국인들은 하얀 피부를 가진 그를 '라오와이(老外;외국인을 가리키는 말)'라고 부른다는 말을 불만스럽게 하던 기억이 난다.

 외국인 이민자들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부족을 보충해준다는 경제적인 논리도 있지만 이민자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포용을 의미한다. 일본, 미국, 그 외 나라에서 이민자들을, 한국 교포를 차별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군대를 '면제'하는 것은 '면제'보다는 '배척'에 가깝지 않을까. 정부는 이민자들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이민자들이 한국인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민자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공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아이가 커서 군대에 가고 대학에 가고, 다른 한국사람들과 똑같이 한국 기업에 취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체도 없는 단일민족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보류해둘 것인가, 시대적 흐름에 맞춰 제도 뿐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꿀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와버렸다. 좀 늦었나 싶기도 한데, 지금이라도 뭔가 해야한다. 2580이나 추적60분에서 그들의 장기를 살려서 쌔끈하게 관련 특집 한 번 만들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