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단 한 번의 삶
어째 소설보다 에세이가 나에겐 더 착 와감기는 김영하 작가. 들고 다니기 좋은 작은 사이즈의 책이 나왔다. 소설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어떤 에세이인지, 컨셉트(?)는 모른 채로 책을 시작했다. 믿고 시작하는 김영하 작가... 작가를 좋아해보고, 팬덤을 경험해보는 일은 별로 없지만 오~~래전에, 유시민 작가의 신작에 대한 북세미나를 가보고는 강연이 끝난 후 열렬히 책을 들고 달려오는 북 팬덤이라는 것을 실감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기다리고 읽고 찾아가는 마음은 책으로 비유하면 스타일(문체)의 차이일 뿐,아이돌이건 배우건 작가건 팬덤이라는 측면에서 비슷하다.
책에는 김영하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연달아 등장한다. 작가가 기억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인물, 관계, 어린 시절, 살아오면서 '김영하'라는 개인을 정의하고 빚어낸 에피소드와 순간과 선택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별 지식 없이 시작했기에 그저 흐름을 따라 읽었는데, 책의 맺음말이 인상적이다. (소설가가 소설을 여러 권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인생관을 정리한다던지 하는,) "인생에 한 번만 쓸 있는 그런 글이 있고, 이 책이 그런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했다. 그런 글을 너무 일찍 쓰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써야겠다 싶었다고 한다.
맺음 글을 읽고 나서 다시 책을 앞에서부터 훑어봤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보통 독후감을 쓰기 위해 기억을 되새기려고 책을 훑어보는데, 이번에는 작가의 맺음말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생에 한 번 쓸 수 있는 글이란 무슨 뜻이지? 다시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보니, 교과서를 잘 이해하듯 구조와 논리가 쉽게 이해되는 그런 일은 없지만, 작가의 말뜻은 이해가 된다. 작가는 본인의 부모님과의 생활 속에서 어린이 '김영하'의 정서를 만들어갔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억하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이야기 한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순간'이야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순간들으로 중심으로 CT를 찍듯 한 장씩 한 장씩 인생의 특정 시점을 묘사하는 단면도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그런 그림 몇 장을 모은 책이 '단 한 번의 삶'이다.
살을 더 하자면, 김작가가 잠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글쓰기 과제를 내주면 꽤나 실력 있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정도면 작가가 될 수 있냐'고 물은 학생들은 작가가 되지 않았고, 작가가 된 학생들은 그런 질문 없이 글을 쓴 학생들이었다고 한다.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합격 점수를 받듯이 해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냥 써야 한다는 것이라는 이야기 아닐까.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의 작법에 대한 책도 결론은 일단 쓰라는 것이었고, 하루키도 매일의 루틴이 아침에 무조건 글을 쓴다는 것이었고, 요즘 동창생들의 소모임 테마 중에도 매일 5줄 쓰기가 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법' 한데 나는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다.)
덧붙이면, 작가의 인생관이나 상황이나, 나와 비슷한 면이 가끔씩 느껴지는데, 원래 본인이 좋아하는 글이나 영화를 읽으면 '아 그래, 내가 딱 그렇게 생각하거든' 하고 공감하기 마련인 지라, 나와 비슷하다고 느낀 게 그런 '공간' 차원인지, 실제로 더 구체적인 공통점이 있는 건지 헷갈리곤 했다. 김영하 작가가 인생에 한 번 쓰는 그런 책을 썼다곤 하지만, 다른 에세이에서 더 많은 생각을 풀어주길 기다려야겠다. (다작하지 않는 스타일인 듯 하니 오래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