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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끄적끄적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thezine 2008. 1. 1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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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곳에서 걸어서 2분이면 가는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용달차도 없이 승용차로 네 번인가 왔다갔다 하며 짐을 나르고

소파는 그냥 들고 옮겼다.


원래 살던 곳은 방이 좁기도 했고 햇볕도 별로 들지 않았다.

전에는 방이 어두운 걸 신경쓰지 않았는데 성향도 바뀌나보다.

2003년에 반지하에서 1년을 지낼 때는 밤낮이 바뀐 생활 탓에

창문을 담요로 막아버리고 살기도 했는데 말이다.



이사를 하려고 방을 알아볼 때 첫째 기준은 넓은 방이었다.

원룸이 넓어봐야 한계는 있겠지만

그 중에 넓은 편인 방을 찾길 원했다.



새로 이사온 곳은 베란다까지 딸린 남향 방이다.

아래층보다 내가 사는 5층이 조금 면적이 작아서 옥상같은 베란다가 딸려있다.




먼저 살던 방에서 일요일이면 늘 같은 생각을 했다.

볕이 드는 창가에서 편하게 앉아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



지난 토요일 이사를 하고 밤 늦도록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 데다

일요일도 세탁기를 세번 돌리고 물건들을 들었다 놓으며 청소를 했지

그 와중에 일요일에는 짬짬이 그때의 소원을 드디어 풀었다.



우선은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을 거의 다 꺼내놓았다.

(사진에 보이는 책들이다. 저기 쌓인 책만 해도 12권.

핸드폰 메모장에는 더 사고 싶은 책 목록이 수십개 적혀있다.)

특이하게 방 중간에 소파를 놓은 것도 창가에서 책을 읽기 위해서다.

누군가가 스리랑카에서 사다준 홍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홍차는 커피보다도 카페인이 많다.)



사진 저 끝에 쿠션에 가려 살짝 보이는 회색 상자는 스피커다.

소파 양쪽에 스피커를 놓고 집중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연주곡을 틀었다.

글을 읽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클라이막스가 나왔을 때,

그 순간은 일상에서 몇 안되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계산해보니 일주일은 60만4천8백초나 된다.

그 중에 '아... 지금...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몇 초나 될까?




신호등이 타이밍에 맞춰 파란불이 켜졌을 때,

전철이 바로 왔을 때,

주말에 늦잠을 잘 때,

배고픈데 음식이 나왔을 때,

오랜만에 애인을 만났을 때,

오랜만에 만난 애인이 잔소리를 한 번도 안할 때... ^^




일주일을 단위로 돌아가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겐

뭐 하나 버릴 것 없는 소중한 휴식이자 즐거움인 순간들이다.

주말 내내 종일 혼자 정리하고 청소하려니 심심하긴 했지만

저 책들을 읽으려면 심심해도 버텨야 한다.



낮에 햇볕이 들 때 저 사진을 찍었어야 그림이 맞는데 저녁에야 생각이 났다.

봄가을엔 창문밖 베란다로 나가 책도 읽고 어쩌다 삼겹살도 구워먹어야겠다.

고시원에서 원룸으로 옮겼을 때도 넓어져서 좋았는데

더 큰 방에다 남향 베란다까지 생기니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는 중이다.

남이 이러는 걸 내가 봤다면 난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좋~댄다."




주말 이틀을 꼬박 이사와 뒷정리에 보냈다.

평소에 운동을 안하는 것도 아닌데 일요일 아침에는 온몸이 쑤셨다.

힘들여 이사를 했으니

이제는 일주일 60만4천8백초에서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만드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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