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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가의 윤리

thezine 2008. 7. 3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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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연권과 혐연권에 대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 매번 스토리 전개는 거의 비슷하다. 아파트 아랫층 베란다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 길거리에서 걸으면서 담배 피는 사람의 담배 연기, 술집은 아니지만 술도 파는 식당에서 담배 연기, 혹은 그런 경우에 어린 아이나 임산부가 있는데 날아오는 담배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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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센터는 금연 건물이라고 한다. 하기야 요즘 금연건물 아닌 곳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삼성동 4거리에 KT&G가 자리한 건물에는 예외적으로 담배도 공짜로 주고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의 건물은 흡연을 금지하는 듯 하다.

 무역센터 중앙 비상계단으로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종종 담배 연기 냄새가 난다. 계단 한 구석에는 담배 꽁초가 담긴 종이컵이 놓여있을 때도 있다. 금연 건물이라고 포스터를 붙여놓고, 흡연이 적발되면 회사에 경고조치 하고 3차례 적발되면 해당 회사의 사무실 임대 계약을 취소한다고까지 하는데도 몰래 담배 피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 (실로 대단한 '깡'이라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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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도 물론 금연구역이다. 화장실 칸마다 붙어있는 금연 표지로는 모자라서 분에 못이긴 누군가가 '금연 공간인데 담배 좀 피우지 맙시다. 다른 사람 생각 좀 하고 살아요'라는 취지로 글을 붙여놓은 적도 있다. 그러나 어떤 흡연자는 '이곳은 금연 공간입니다'에서 '금'자를 지우고 '흡'자로 낙서를 하기도 했다.

 가끔 화장실에 있으면 옆에서 라이타 소리가 들리거나 담배 연기가 스물스물 넘어올 때가 있다. 어쩌면 그리 깡이 좋은 걸까. 딱 한 번, 안전 요원이 "거기 나오세요. 담배 피셨죠. 빨리 나오세요."하고 잡아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안전 요원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고 나오는 경우를 본 이후로는 안전 요원도 미덥지가 않다. 급하게 피웠는지 단 시간에 나오더니 잽싸게 헹구듯이 이를 닦고 나가는 안전요원.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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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 있고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쉴만한 곳이면 늘...

 무역센터 지하1층에는 실외공간이 있다. 쓰레기통과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최고의 너구리 소굴. 실외공간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고 있기 때문에 근처만 지나가도 담배 냄새가 난다. 이곳 말고도 무역센터 뒤켠, 코엑스 앞, 아셈타워 근처 벤치... 어딘가 의자가 있고 그늘이 있어서 그나마 삼성동의 몇 안되는 쉴 만한 공간에는 어김없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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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는 그 특성상 냄새가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실내에서 흡연을 하는 경우에는 20미터 떨어져있어도 담배 연기가 따라다닌다. 냄새도 고약하지만 피부를 통해 니코틴과 분진이 흡수되고 아기들의 경우 특히 더 하다. 실외라고 해도 그리 사정이 좋지는 않다. 길거리에서 앞에 걸어가면서 담배를 피는 사람 때문에 눈쌀을 찌푸린 경험은 누구나 있다. 운이 나쁘면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누군가의 담배 때문에 옷이나 가방에 구멍이 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사람 때문에 지나가던 아이가 한 쪽 눈을 실명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어디에서건 실외의 쉴만한 벤치나 그늘진 곳을 찾아가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과 재털이가 있다. 과히 상쾌하지 않은 냄새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보통 말한다. 돈 주고 사서 세금도 많이 내면서 피우는 건데 흡연할 권리를 존중해달라고 말이다. 알아듣기 쉽도록 비유를 들어서 반박을 하자면, 노래방 기계를 합법적으로 샀다고 해서 어디에서나 자기 마음대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몸을 해쳐가며 건강보험 재정에 한 편으론 기여하며 한 편으론 손해를 끼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하지만 흡연의 권리를 위해 비흡연자의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는 것은 미안하지만 어불성설이다.



 굳이 피우겠다면 피우시라.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주변에도 담배를 사랑하는 친한 지인들이 많은 고로, 흡연자를 인간 말종 취급하고픈 생각은 없다. 니코틴 중독이 얼마나 강한지도 알고 있다.

 다만 애꿎은 비흡연자의 피해를 막자는 차원에서 다음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상상해 보시길.

-여름에 날도 더운데 담배 연기 때문에 창문을 닫아야 한다면?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집에서 넘어온 담배 냄새를 빼기 위해 5분쯤 미리 환풍기를 켜야 한다면?
(원룸은 물론이고 일부 아파트에서도 종종 생기는 일)

-새로 산 옷을 입고 외출하고 왔는데 담배 구멍이 생겼다면?

-상쾌한 아침, 앞에서 걸어가는 못생긴 총각이 자꾸 담배 연기를 날린다면?

-엘리베이터에 뒤늦게 탄 누군가의 입에서 가래와 니코틴이 섞인 냄새가 난다면?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담배를 피워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면?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아랫층에서는 들은척 안하고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 냄새가 올라온다면?


그래도 정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담배 연기를 듣기 싫은 소음이라고 생각해보시길 권한다.

담배 연기를 망가진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며 흘러나오는 강호동의 과장된 괴성이라고 생각해보라.



금연표지쯤은 가볍게 무시하고, 실외에서 흡연은 무조건 정당하다고 믿는 흡연자가 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쯤, 더워서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듣기 싫은 소음이 들려온다면

그 흡연자는 소음을 내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할까? 대답은 각자의 상상에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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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부대에 있을 때, 미군 부대의 흡연 규정이 더 엄격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한 취향 때문인지, 미군들 중에는 씹는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씹는 담배는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구두약통 같은 통에 들어있다. 일반 담배의 내용물을 겉종이 없이 그냥 통에 담아둔 것처럼 생겼다. 당시 미군들이 많이 피우던 new port라는 담배도 우리나라보다 비싼 편이었지만 입담배는 그보다도 더 비쌌던 것 같다.

 느낌은 약간 눅눅한데, 손가락으로 조금 집어서 앞이빨과 입술 사이의 공간에 끼워둔다. 그러면 침에 녹아든 니코틴 성분이 잇몸과 입술 안쪽의 연한 피부의 모세혈관으로 스며든다. 나도 한 번 재미삼아 입에 넣어봤다가 즙(?)을 삼키는 건 줄 알고 삼켰는데 머리가 핑 돌아서 금새 뱉은 적이 있다. 이 담배를 피우면(?) 자꾸 입에 침이 고이기 마련인데 이 때문에 이걸 즐기는 미군들은 콜라를 마신 후 그 캔을 들고 다니면서 거기에 침을 뱉곤 했다.

 장점이라면 실내나 차량 보관소처럼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곳에서도 니코틴을 섭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론 이렇게까지 담배를 피워야 하나 하고 불쌍한 생각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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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실수는 한다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래도 죄를 지은 사람처럼 눈치를 보기도 하고, 술자리도 연기가 안 퍼지는 자리를 골라가며 담배 연기를 보내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남에게 연기를 날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심한 악당은 거의 없다. 평소에 조심하던 사람이 어쩌다 한 번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를 운전자에 비유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 번쯤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전화를 받다가, 다른 생각을 하다가, 신호나 표지를 잘못 보거나 해서 급차선 변경을 한다던가, 잘못된 차선에서 좌회전을 하는 경우도 100번 운전하면 한 번쯤 생길 수 있기 마련.

 문제는 길거리에는 엄청나게 많은 자동차가 있다는 것.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천 대의 차들과 나란히 도로를 달려야 한다는 것. 그 중에 몇 사람만 '1년에 한 번쯤 하는 실수'를 저질러도 그 날 길거리는 짜증나는 상황으로 바뀐다는 것.


 야금야금 세금 올린다고 정부 욕할 생각말고 담배 끊으라는 말도, 건강을 위해서 좋다는 말도, 흡연자들에게는 별 설득력은 없는 듯 하다. 아마 내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내년에도 비상계단과 화장실에는 몰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쉴만한 휴식 공간마다 담배 연기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어쩔 수 없이 피하는, 혹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짜증만 내야 하는 비흡연자들의 스트레스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