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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기억에 대한 영화 'Away from her'

thezine 2008. 8. 2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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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ay from her 포스터



 영화 Away from her 는 알츠하이머 병('치매')에 대한 영화다. 44년을 함께 행복하게 살아온 노부부, 캐나다의 호수가에서 평화롭게 살던 중에 부인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고, 처음엔 간단한 철자를 잊어버리는 가벼운 증세에서 시작하지만 날이 갈수록 증세가 악화된다.

 겨울에 혼자 스키를 타러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릴 뻔한 일이 있은 후에 부인은 결국 요양시설에 들어가기로 한다. 부인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남편은 부인의 결심을 어쩌지 못하고 보낸다. 요양 시설에 적응하기 위해 한동안 방문을 하지 못한 후에 오랜만에 요양시설을 찾은 남편, 그리고 그 사이에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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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주제는 우선은 알츠하이머 병을 앓는 사람과 그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그에 더불어 '관계'와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44년을 사랑하며 살아온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이 병에 걸려 기억력이 희미해져갈수록, 견고할 것만 같던 사랑의 감정도 희미해진다. 겨우 한 달 전에 애틋한 포옹을 하고 떠나보낸 남편을 부인이 이제는 남을 대하듯 예의를 갖춰 대하고, 엄마가 보고싶어 찾아온 딸을 엄마가 알아보지 못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두뇌의 신경들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면서 생기는 병이라고 한다. 사람의 두뇌는 부위별로 담당하는 역할이 고도로 구분되어있기 때문에 특정 부위가 잘못되면 해당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표현을 인용하자면 수 많은 전등에 각각 스위치가 달려있고, 증세가 심해지면 스위치가 내려져 거기에 연결된 전등들이 하나 둘 꺼져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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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결국 알츠하이머 병은 기억, 기억력에 대한 병인 듯 하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감정도 상당 부분은 기억에 대한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기억이 없어졌을 때 사랑은 디디고 설 땅이 없이 공중에 떠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커다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실연'이란 감정도 그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서로 아끼고 좋아하던 연인이 어떤 계기로 돌아선 후에는 그 전의 살가운 감정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꿈을 꾼 것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실연 후의 연인들은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겨낼 수 있어도 상대방을 사랑했던 자신의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다.

 몇 십년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가족에게 알츠하이머 병이 닥쳐온다면, 가족의 애틋한 사랑과 수 십년의 세월 동안 나누었던 소소한 추억과 소중했던 순간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상실감일지 상상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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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포옹의 느낌도 기억과 함께 사라진다면



 앞서 쓴대로 기억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지만 기억 없이는 사랑도 있을 수 없는 걸까? 가족이든 연인이든 부부든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기억이 사라진다면 그 모든 소중함도 애틋한 감정도 모두 사라지는 걸까? 남녀간의 사랑이나 모성애/부성애가 두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고약한 과학연구자들이 이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길 할까.

 문득 김광석이 불렀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의 가사가 생각난다. 읊조리듯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 시험 보던 날, 큰 딸이 시집가던 날,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하고 물었던 것은 그 모든 기억을 함께 나눈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5년, 10년 전의 이야길 나눌 수 있는 친구와 가족과 연인이 있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공기처럼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존재들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그런 친구와 가족들이 있다는 점과 더불어서, 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을 나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