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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귀향

thezine 2008. 10. 17. 00:58

 추석에 큰집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인 곳, 어릴 땐 '우리집'에서 '가장 먼 곳'이었고, 방학이면 열흘 쯤 개울에서 멱을 감고 논두렁에 미끄러져 옷을 버리고 벌레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큰집으로 향하는 길 양쪽에는 가로등이 없어 길이 보이지 않았고 여름이면 귀가 따갑도록 개구리가 울어대던 논이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겨울에는 동네 아이들이 논에 물을 대서 썰매를 탔고 손과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던 추위 속에서 뒷산에 올라 푸대자루를 잡고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세상과 떨어져있는 풀과 개울과 산과 나무의 마을로만 여겼던 곳인데, 이젠 조그만 아파트와 학원 건물이 들어서고 큰 길이 들어서 주변은 갑갑해보인다. 조그만 슈퍼에서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오던, 차도 없고 사람도 다니지 않던 한적한 길은 커다란 포장도로에 허리춤이 잘려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마당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고 언제라도 집 문을 나서면 곤충과 새들이 눈에 띄고 큰집 뒷문쪽으로는 여전히 논이 펼쳐져 있다. 경제적 가치가 적다는 것이 자연에게는 축복이다. 아스팔트가 깔리고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선 곳은 언제 봐도 꼴 보기 싫은데,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봐 걱정이다. 이미 많이 망가졌는데 더 많이 망가질거란 생각, 그 예감이 맞을 것 같단 생각. 돈이 많으면 내가 다 사들여서 보호하고 싶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했다.

풀밭에 물 주는 호스(?)에 앉은 잠자리, 늦여름부터 눈에 띄는 반가운 녀석 잠자리



거꾸로 바닥을 향해 무엇을 노려보는지 알 수 없는 사마귀



큰집 마당으로 향한 큰 창문 앞을 가득 채운 꽃



농협(?)에서 만들었다는 농사 체험공원(?) 시골에서도 이젠 체험공원에 가서나 농사를 경험할 수 있는 걸까?

 위 사진에서 계단형으로 있는 논 아래의 잡초같은 것이 미나리꽝. 옛날에는 부엌의 하숫물이 흘러나와 미나리꽝을 채웠다고 한다. 세제 같은 것이 없던 옛날에 부엌 하숫물이라고 해서 풀밭에 흘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겠다. 그 양분을 먹고 풀이 자라고, 반대편으로 맑은 물이 시내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에겐 단순한 삶의 방식이었겠지만 이날 본 것 중에 가장 감명깊었던 것 중 하나.







옛날의 실제 원두막에는 옆면을 가릴 수 있는 문 같은 것이 있어서 여름엔 원두막에서 먹고 잤다고 함. 나도 해보고 싶다!!!



원두막에는 진짜 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박이 너무 커져 떨어질 것 같으면 장대 같은 것으로 받쳤다고 한다.



땅처럼 보이지만 땅이 아니라 물임. 연밥이라고 하나? 물에 떠있는 작은 물풀들이 수면을 가득 채운 모습



중간에 보이는 하얀 팝콘 같은 게 목화의 알맹이. 저걸로 실을 뽑아내는데, 거칠고 손이 아픈 일이라고 한다. 이 일을 시키려고 미국인들은 흑인들을 수입했던 것이지.



풀 뒤에 다른 풀, 그 뒤에 또 다른 풀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이것 저것



잘 알지도 못하지만 어딘가에서 잘 자라고 있는 이 땅의 풀들을 보면 왠지 고맙고 대견하고. 나만 그런가?



태양이 뜰 때를 기다리며 쉬는 중





실잠자리











어딜 그렇게 쳐다봐



오랜만에 보는 밤송이. 머리를 짧게 깎는 중학생들을 보고 '밤송이 같은 머리'라고 흔히 말하는데, 진짜 밤송이는 동글동글 무지 귀엽다.



가마니를 짜는 틀. 씨실과 날실처럼 볏짚으로 만든 줄로 가마니를 짜는 도구다.





오른쪽 맷돌은 많이 봤지만 왼쪽 맷돌은 별로 못본 모양새




솟대. 음력대보름에 마을의 안녕, 풍년 같은 것을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세웠다고 한다.



 농사체험장(?) 문 닫을 시간이 되어 나갈 때쯤이다. 솟대는 마을의 안녕, 수호, 풍년 따위를 기원했다고 한다. 마을 어귀에 홀로 세워질 때가 많으나 때로 장승이나 탑, 신목(神木)과 함께 세워지기도 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솟대를 세우며 전염병, 가뭄, 난리 같은 것들로부터 마을을 지키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지금은 산과 풀과 나무와 강이 흐르는 곳마다 솟대를 세워야 할 것 같다. 땅 파고 아파트 짓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들로부터 자연을 지켜주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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