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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하강의 신호들

thezine 2008. 11. 7. 23:28

 요즘, 역사 그 어느때보다도 한국 사람들의 경제 지식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 사람 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갚을 능력이 없이 빚잔치를 벌인 무절제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돈놀이를 한 무절제한 은행들이 불러일으킨 금융 위기 덕분이다. CDS니 하는 생소한 파생상품 개념을 뉴스에서 설명하는가 하면 중앙은행의 금리와 인플레이션, 유동성, 환율 같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뉴스들 뿐이다.

 그 와중에 새로 배운 것들 중에 '디커플링'이란 말이 한 때 유행했다고 한다. 세계 경제가 발달하면서 미국 같이 큰 나라에 경제에 변화가 생겨도 다른 나라의 상황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이었는데, 미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도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내수 시장과 기타 국가와의 국제 교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중국의 자본 시장이 많이 개방되어있지 않고 경제를 중앙 공산당이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금융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또 다시 중국이 거론됐다.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이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어 은행과 기업들을 도와주고 반 국유화시키는 상황이 된 것에 대해, 중국의 경제 통제를 비판하던 나라들이 결국은 중국을 따라 경제에 깊숙히 개입하게 된 상황을 비꼴 때였다. "어라? 우리도 중국처럼 경제에 개입하고 있네?"

 시사주간지 TIME의 기사를 봐도 중국의 경제의 비중을 알 수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TIME은 금융위기와 미국 대선을 가장 중요하게 매주 다루었는데, 금융 위기와 관련해서도 중국은 자주 기사에 등장했다. 한국의 교역국가 중에 이제는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중국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미덥지 못한 정부 때문에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과 이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란 두 부류의 사람들이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중국의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중요성에 비해 한국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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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on Fair 전시장

Canton Fair 전시장


 중국에는 Canton Fair (=중국수출입상품교역회=광주교역회;광교회)라는 유명한 전시회가 있다. 중국에서 가장,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시회다. 위 사진에 보이는 전시장은 코엑스의 전시장과 비슷한 크기의 전시장이 20개쯤 있는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다. (정확히 몇 배인지는 모르겠다. 20배일 수도 있고 40배, 50배일 수도 있다.) 초대형 전시장이 줄줄이 커다란 블럭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 옆에 같은 모양의 전시장이 새로 지어졌는데, 아마 이번 가을 전시회에서부터 전관(全館)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내친 김에 몇 장 더-통역 알바 지원자들과 전시장 내부. 이런 전시장이 반대편으로 하나 더 있는 게 1개 동이고 20개 정도의 동이 연결돼있다.



 워낙 규모가 큰 전시회이다보니 이 시기에는 전시회가 열리는 중국 광동성 '광저우'의 모든 호텔방이 동이 나고 비행기표값도 비싸진다. 더불어 고급 식당들은 빈 방을 찾을 수가 없다. 바이어와, 거래처와 만나 거하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광저우가 온통 시끄러워진다.

 전시회장의 광고판은 물론이고 광주 시내의 전철 광고, 공항의 광고는 모두 수출 기업들의 광고로 도배된다. 그리고 수출업체가 이용하는 마켓플레이스인 B2B 웹사이트들 역시 Canton Fair의 중요한 광고주들 중에 하나다. (일반인들이 옥션, 인터파크의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처럼, 무역 업자들이 웹사이트를 통해서 국제 무역을 하는 사이트들이다.)

전시장 입구

전시장으로 들어온 방문객들은 양쪽으로 길게 뻗은 전시장으로 향한다


Canton Fair는 규모가 아주 크다보니 그 거대한 전시관으로도 부족해서 이제까지 전기, 후기로 5일씩 나누어 품목을 다르게 해서 전시회를 진행했다. 그런데 Canton Fair 자체가 춘계와 추계로 1년에 두 차례 진행되다 보니 1년에 5일씩 4번 전시회가 열린 셈이다. 코엑스의 1개 전시관의 20배쯤 되는 전시관을 1년에 4번 돌려서 사용하니 코엑스에서 1년에 한 번 개최하는 전시회보다 80배 이상 큰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2008년 추계 Canton Fair에서는 그것마저도 부족해서 5일씩 1기, 2기, 3기로 나누어 개최했다고 한다.

 당초에는 중국 기업체에만 참가를 허용했었는데 최근에는 외국 기업에도 참가를 허용해서, 이번에도 한국 기업들이 KOTRA를 통해서 다수 참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수많은 전시회들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Canton Fair가 최근 들어 방문객 감소로 흥행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 원문 보기) 위 이미지에 일부 나온 기사내용처럼, 교역액이 지난해보다 44%나 감소했다고 한다. 엄청난 폭의 하락이다. Canton Fair는 중국 소비재 수출의 상징과 같은 대표적인 전시회다. 중국을 대표하는 최대 규모의 전시회에서 방문자가 대폭 줄어들고 교역액도 더불어 줄어들었다는 것은 심각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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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B2B 사이트를 대표하는 '알리바바'란 회사가 있다. B2B사이트, B2C 사이트 등, 전자상거래에 주력하는 사이트이고 2007년 총 매출액은 4000억원 정도다. 제조업체에 비하면 닷컴 기업들의 매출액은 미미해보이지만, 중국의 전자상거래에 대한 지배력(및 그로 인한 잠재력)과 창업자 '잭 마(馬云)'의 성공 신화로 중국에선 아주 유명한 기업이다.

 중국의 한 인기 TV 프로그램 중에 일반 시민 참가자의 창업 아이템을 심사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런 사업을 하겠다'고 지원자가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면 CEO들이 패널로 출연해서 사업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때에 따라 투자자를 찾아주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알리바바의 CEO '잭 마'가 출연할 정도로 그는 벤처 창업의 상징적인 존재이고, 중국의 빌 게이츠 같은 존재.

 그런데 최근에 '잭 마'가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이 중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앞으로 더 추운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혹한기를 각오하고 겨울을 보낼 준비를 잘 하자."는 내용이었다. 알리바바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엄살이 아니다. 최근 알리바바의 주가는 몇 달 째 내림세를 보였다.

알리바바 최근 6개월 주가 흐름


 세계적인 자산 거품과 중국 주식 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알리바바의 주가도 큰 영향을 받았다. ('잭 마'가 임직원들에게 격려의 이메일을 보낸 것은 경기 하강으로 매출이 하락한 것도 있지만 알리바바가 성공적으로 기업 공개를 하고 거액을 끌어들인 후에 스톡옵션을 받았던 직원들의 자산 가치가 폭락한 것을 안위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알리바바라는 웹사이트는 물건을 수출하려는 사람과 수입하려는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수출 경기가 좋으면 알리바바와 같은 B2B 사이트에 광고를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그만큼 투자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요즘처럼 불경기가 찾아오면 기업들은 가장 먼저 줄이는 것 중에 하나가 홍보 예산이다. 특히 B2B 사이트를 사용하는 유료 회원들은 대부분 대기업이 아닌 중소규모의 기업이고 심지어 1-2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업체도 허다하다.

 알리바바의 유료멤버십은 1년에 5만 위안, 현재 환율로 900만원 이상이다. 어지간한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몇 명밖에 되지 않는 영세업체라면 현재 같은 불경기에서는 아예 포기하거나 여러 번 고민 끝에 어렵사리 선택할 수준의 고가 서비스. (덧붙이자면, 최근에 2만 위안의 신규 서비스를 출시해서 B2B 시장의 지각 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알리바바가 최근 어려움을 겪는 걸 보면서 중국 수출 경제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 설명한 Canton Fair의 흥행 저조, 알리바바와 같은 B2B 사이트의 실적 저조라는 수치만으론 중국 경제의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으니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예를 들어보자.


 아래의 사진과 내용들은 TIME의 기사에서 발췌한 부분들이다.

사진 출처:TIME 08.11.03

사진 출처:TIME 08.11.03


 위의 '아시아경제'의 기사에서도 소개된 완구업체 '허쥔'의 공장이 폐쇄됐다. 이 업체는 세계적인 완구 제조업체인데 공장 2곳을 폐쇄했다고 한다. 현재 중국의 광동에서 수 많은 업체들이 위 업체처럼 도산하거나 이윤 감소에 허덕이고 있다.


사진 출처:TIME 08.11.03

사진 출처:TIME 08.11.03


 2008년 3분기 중국의 경제성장율은 9%, 내년에는 8%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꽤 높아보이는 숫자지만 그동안 중국의 성장율을 감안하면 상당한 하락이다. 오른쪽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수출 역시 성장율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 (본인이 차린 가게 혹은 사업의 매출이 저렇게 줄어든다고 생각해보라. 아주 끔찍하다.)

중국 경제는 이래 저래 고민이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디커플링'을 거론하며 괜찮을 거라던 시각이 많았고, 엄청난 투자를 쏟아부어 화려한 올림픽도 치러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금융 위기에, 국내적으로는 임금 상승, 물가 상승, 공급 초과 (공장이 너무 많아!) 등 첩첩산중이다. 광동 일대에 홍콩 기업이 운영하는 공장들은 중국인 노동자 천만 명 정도를 고용하고 있는데, 이 공장들 중에 20% 정도가 내년 초까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이꼬르, 엄청난 대량 실직 사태!

 여전히 미국 등지에서 주문들이 들어오긴 하지만 대금 결제가 되지 않는다.(국제 무역의 세계에도 날로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일부 업체들은 중국 내수에 집중해서 문제를 돌파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쉽지 않다.

 거기에 또 한 가지 커다란 문제는 부동산 거품 붕괴다. 부동산은 중국의 전체 고정 자산 투자의 1/4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국내 고용의 10%나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게다가 부동산/건설 사업의 침체는 철강 생산 등 연관 산업에까지 파급 효과를 미친다. (상해에 위치한 중국 최대의 철강 업체인 '바오샨' 철강도 얼마 전 감산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목표가 인플레이션 억제였던 중국 정부는 이젠 경착륙을 걱정하며 몇 년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내리기까지 했다. 메릴 린치의 예측으로 내년의 전세계 GDP 성장의 40%를 중국이 담당할 것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전체적인 규모는 그만큼 크지 않다. 전세계 GDP에서 중국은 겨우 5%인데 미국은 전세계 경제의 28%에 달한다. (!!! 미국 정말 덩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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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대통령으로 오바마가 뽑힌 이후에 언론들은 차기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여러 모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 위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파병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당선인(언젠가부터 누군가에 의해 '당선자'란 표현은 터부시하게 됐다. 누가 그랬을까? 누가 그랬을까?)이 원래 갖고 있던 정책 목표까지 추진하려면(오바마의 경우는 '클린 에너지 경제 개발'이 후보 자신의 중요 공약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중국에서는 국가 지도자들을 민중이 선출할 권리가 없지만, 공산당이 권력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 만큼이나 성공적인 경제 운용이 중요하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갈까? 당장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한 편으론 끊임없이 곁눈질 해볼만 한 주제다.

 중국에 진출한 수많은 한국 생산업체들, 유학중인 한국 학생들, 한국식당 같은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중국에 물건을 수출하는 사람들... 이렇게 한국에도 중국 경제에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이 아주 많다. (꼭 내가 중국어로 먹고 산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국제화된 세계에서 이젠 남의 나라 경제까지 함께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2년 전만 해도 금융권 관계자들만 알던 CDS(크레딧 디폴트 스와프)같은 개념을 공부하고 세계 경제를 걱정해야 하는 세상.

 갈수록 세상 사는 게 너무 피곤해지는 것 같다. (...라고 넋두리를 늘어놓으면서도 국제 뉴스를 뒤적거리는 건 무슨 취미냐고 물으신다면. 음...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