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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에 이야기 하나씩

thezine 2013. 3. 2. 00:44

집 앞에 눈이 올 때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분위기가 너무 환상적이었던 적이 있다.

눈이 자꾸 얼굴에 부딪히는 게 성가셨던 걸 빼곤

고요하고 포근하고 적적하고 흰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섞인 풍경이 너무 멋져서,

다음에 겨울이 가기 전에 눈이 또 이렇게 내리면 그땐 꼭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산책을 나가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다.

(사실 밤에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커피보단 따뜻한 오뎅국물 담아서 나가면 더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서, 용케도 겨울이 가기 전 눈이 또 그날처럼 내리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이 허한 날이었던 지라 야밤에 산책을 나갈 마음이 도저히 들지 않아 사진만 찍고 말았다.


이 집에 산지 4년이 넘었는데, 처음에 이사올 무렵 강변을 내려다 보는 게 좋아서

날 좋은 주말이면 늘 창가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지만

창가에서 책 읽으면 그늘이라 해도 너무 밝아서 눈이 아파서 자리를 옮기곤 했었....지만

아무튼 기분을 내어 그 테이블을 Cafe Mapo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요즘 대화 속에 '오래 전'이라고 해봐야 10년 이내일 경우가 많은데

정말로 '오래 전'에 한창 멜랑콜리한 감수성을 키우던 무렵 겨울에 눈에 얽힌 추억들이 많았다.

그 때 찍은 사진들을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지겹도록 보고 또 보고 했었다.

그 때 기억 때문인지, 원래 센치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 사진 속에는 무대를 밝힌 조명 같은 가로등 아래서 어떤 사람 두어명이 앉아 이야길 하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든다.

사진 속의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 사람들에게선 춥거나 덥거나 한 촉감은 사라지고

다정하거나 격하거나 슬프거나 재밌거나 한 느낌만 느껴지는 모습일 것 같다.


이제 3월이 되었으니... 눈이 어쩌다 오더라도 저렇게 쌓이진 않겠지.

앞으로도 최소한 한 번 반의 겨울을 이 집에서 보낼 것 같아서 다시 기회는 올 것 같다.

그 땐 정말 오뎅국물 담아서 산책을 나가고 싶다.



그리고 이 비현실적인 풍경은 인천공항 부근.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서 처음으로 전망대, 을왕리 부근을 돌아보다 이런 곳을 지나쳤다.

주변 땅에 아무 풀도 없는 걸 보면 만조에는 찰랑찰랑은 아니어도 축축할 정도로는 물이 차는 곳인 것 같다.

영종도 주변은 이렇게 황량하고 건조한 바닷가가 많아 보인다. 영종대교 건널 때 보이는 곳들이 특히.

사진은 약간 당겨서 찍고 자르고 했는데 실제론 망망대해에 섬처럼 저 언덕만 황무지 위로 솟아 있다.

왠지 기어 올라가보고 싶은 생뚱맞은 언덕.

워낙 차가 없는 도로기도 했지만 그래도 냉큼 차를 세우고 찍을 정도로 눈에 확 띄었는데

사진으로 보니 그 만큼은 아닌 것도 같고...

공항 주변의 특이한 풍경과 오후의 센치함과 식전의 배고픔이 겹쳐서 더 분위기 있어 보였나보다.


연휴인데 혼자 애 보는 잔잔한 꿀꿀함 속에 금요일 밤이 저물어 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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