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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永樂

thezine 2014. 9. 10. 21:58

1. 열흘 사이 세 군데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쓰러지신 후로 의식을 찾지 못하고 가시고, 최근 급격히 지병이 악화되었다가 잠시 호전되어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후 떠나시고, 2년 가까이 병상에서 고생을 하다 떠나신 분. 게다가 추석 연휴도 있어서 장례를 치르는 가족 당사자들은 더 허전하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추석에도 변함 없이 일해야 하는 많은 업종 중에는 장례 관련 종사자들도 있었구나 싶었고.


2. 부산에는 영락공원이라는 공원묘지가 있어서 부산에서 치르는 화장의 대부분은 그곳에서 치른다고 한다. 부산 말고도 몇 곳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공원묘지의 이름에 '영락(永樂;영원한 즐거움)'을 쓰고 있다. 오늘 새벽에 다녀온 양재 끝자락에 있는 추모공원의 이름은 시안時安이다. 영원한 시간 속에서 평안함과 기쁨을 얻기를 바라는 것, 고인 뿐 아니라 산 사람 모두의 궁극적인 바람...


3. 한 분은 아버님은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이번에 모친상을 당하셨고, 다른 두 분은 부친상이었다. 모두 나는 인사 한 번 드리지 못한 분들이지만 고인의 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슬픔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갑작스레 어머니를 먼저 보낸 아들, 수 십년을 함께 해온 남편을 먼저 보내는 부인... 친구를 먼저 보내며 '잘가라'라고 하며 관을 어루만지는 노인...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슬픔이 느껴지도록 섧게 울고 계셨다. 노인들이 하는 말 중에 '내 장례는 누가 치러줄까'하는 말이 있는데, 장례식장에 다녀보니 왜 그런 말이 있는지 이해가 된다. 남편을 보낸 어머님들이 슬피 우시는 모습을 보니 문득 내가 죽을 땐 어떨까, 내가 더 늦게 가는 게 차라리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은 저리도 어린 나의 딸, 아들이 커서 상복을 입고 영정 앞에 서있을 생각을 하니 괜히 짠하기도 하고 미리(?) 고맙기도 했다. 나의 친구들 가운데 누가 먼저 가고 누가 늦게까지 남아 친구들을 보내줄지 하는 생각도 들고.


4. 장례식장에 대한 옛날의 '무서운 곳', '혐오시설'로서의 이미지는 아마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 같다. 부산 영락공원도 시설이 잘 되어 있었고, 양재 '시안'은 숲에 둘러싸여 건물이나 조경이 모두 쾌적하고 깔끔하기 그지없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장례식장에 가끔 가는 일을 불결하거나 무섭게 여기는 터부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오히려 가끔은 장례식장에 가보는 것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삶의 종착역에 대한 고민을 해볼 좋은 기회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5. 장례식장에 가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결혼식도 그렇지만 특히 장례식장은 경사보다 조사를 더 잘 챙겨야 한다는 관념 덕분에, 그리고 저녁이나 밤 늦게라도 시간이 될 때 찾아뵙고 문상하면 되고, 대부분 국밥과 반찬, 안주거리와 술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지고, 그러다 심하게 웃거나 떠들지만 않으면 재미있게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명절 당일에, 그것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문상을 온 사람들의 대단한 정성을 볼 수도 있고, 회사에서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구성의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술잔을 나누기도 한다.


 어릴 적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시골식' 장례식을 치르면서 밤새도록 마당에서 음식과 술과 화투장과 동네 어른들의 불콰한 장면은, 단지 장소가 병원 지하의 장례식장으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더 깨끗하고 편리한 장소, 상주들은 손님맞이만 신경쓰면 되도록 익숙한 손놀림의 상조회사들이 손을 보태는 걸 보면, 알맹이는 나름 그대로 남고 편리함이 더해져서 많이 좋아진 거지 싶다. 초상을 치르는 정신 없는 와중에 반찬, 국밥, 안주거리를 밤새 만들어야 한다면... 옛날 딸들, 며느리들 정말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6. 장례식을 치르며 상주와 가족들은 희로애락을 모두 겪는 것 같다. 손이 모자랄 때 마음이 급하면서도 약해지고, 누군가에게 섭섭한 마음이 생겼을 때 평소보다 과한 말을 하기도 하고, 멀리서 온 친구가 고맙고 반갑고, 발인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슬퍼하고... 어떤 감정과 순간이 오더라도 결국은 가족의 소중함, 인생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순간들이다. 


7. 오늘 아침 발인식에 가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밤샘 버스를 타고 새벽에 잠을 못잔 채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새벽에 터미널에 내렸을 때는 마침 택시 교대 시간이어서 탈 사람들은 많은데 택시가 거의 없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집에 와서 씻고 면도를 하고, 다시 택시를 타려면 기약이 없을 듯 해서 연휴 마지막날 새벽 텅빈 서울 거리를 운전해서 갔다. 열흘 간 세번째 온 장례식장은 당연히 새벽부터도 북적댔다. 분위기상, 오늘은 장지까지는 가지 않고 화장시설까지만 갔다가 왔다. 체력이 갈수록 저질이 되어가는 와중이라 어제나 오늘이나 쉽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다닐만 했다. 발인시간이 아침시간이라 정신이 깨어날 시간이기도 하고, 정말 슬퍼하는 고인의 가족들 옆에 있자니 난 그렇게 힘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 같기도 하다.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경사는 빠트려도 조사는 챙겨야 한다는 말이 또 한 번 다가온다. '웃으면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고, 울면 혼자 울 것이라'고 최민식이 올드보이에서 이야기했지만, 적어도 장례식장에는 누군가와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덥고, 피곤하고... 일정상, 체력상, 힘들고 어렵긴 하지만 다녀오길 잘 했다 싶고, 그 앞에 사실 더 중요한 자리에 못간 것이 미안하고 후회되기도 하고... 위에 주저리주저리 적은 것보다도 훨씬 여러 가지 생각들이 (피곤하고 졸린 와중에도) 스치고 지나갔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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