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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설 '하얼빈'

thezine 2022. 9. 26. 17:34


한국 사람 누구나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사건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해 그 배경이나 의미는 정작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의 식민지 경영을 위한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이자 일본의 제국주의의 핵심 권력자. 어디를 가든 특별 열차와 고위 외교관이 응접을 나오는, 안중근의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조선 전국에서 순종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조문과 성금 모금을 했을 만큼 일제에서도 손꼽히는 권력자. 일본에서는 상당히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산실인 조슈번 출신이자, 그 극우주의자들을 길러낸 요시다 쇼인의 제자였다. (얼마 전 서울시 포스터에 친일 상징물들이 총출동했을 때 등장한 것들 중에도 조슈번의 상징 새, 상징 나무가 있었다.)




안중근의 이미지는 위의 사진과 손바닥 도장이 거의 전부이고, 어떤 성정의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이미지 자체가 없었던 것을 이제야 알겠다. 어린이 위인전에 나오는 그림 속 이미지가 전부였던 것 같다. 기차, 놀라는 표정의 군중, 코트 차림으로 권총을 들고 뛰어드는 안중근 의사, 아픈 표정으로 쓰러지는 이토. 거의 이런 그림이었을 것이다.

세밀한 묘사는 작가가 여러 출처에서 얻은 것들을 모아 새로 하나로 그린 그림이지만 사건 자체는 단순 명료하다. 하얼빈 기차역에서 이토는 안중근 의사에 총에 맞아 죽었다. 워낙 거물이었던 까닭에 지금도 안중근 의사와 이토는 현대 정치에도 회자되곤 했다.




참 우연찮다, 얄궂다 싶은 게, 이후 아베가 사제 총에 맞아 죽은 사건에 대해 미국의 Wall Street Journal(우리나라로 치면 한경, 매경 같은 신문지 회사)에서 안중근과 이토의 사건에 비유를 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WSJ같은 매체의 역사 인식이야 애초에 기대를 하면 안될 수준이니 참고가 필요하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다수가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고 하지만, 특히나 안중근의 가족들은 더없는 고난 속에 살아야했다고 한다. 이토가 죽은 것은 1909년으로 일제가 패망하기 한참 전, 나날이 침략의 기세가 높아지던 시기였다. 안중근의 첫째 아들 안분도, 7살의 나이에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준 음식을 먹어 독살설이 있을 만큼 허망하게 죽었고, 둘째 아들 안준생은 일제의 감시 속에 직업도 가지지 못하고 비참하게 지내다가 일제의 회유로 이토 히로부미를 제사 지낸 사당에 참배하고 이토의 아들에게 사과를 하며 '아버지가 저지른 잘못'에 사과하여 민족의 반역자로 살았다. 김구 선생이 안준생을 처단하겠다고 나설 만큼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독립운동가의 가족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느껴지는 안타까운 일화이다.

소설은 길지 않고, 김훈 작가의 강한 문체가 내내 묵직하게 몰아친다. 나도 이 책 후기를 쓰려니 말투가 조금은 비슷해지는 것 같다.


이토 저격 사건이 위에 말한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그 중 한 명의 암살 사건을 통해, 암살 사건에 대한 무지성 언론의 기사를 통해 여전히 살아있는 사건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를 말해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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