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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과 접대골프 후기 본문
나름 긴 5일의 장례를 치르고, 연이어 긴장된(?) 회사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간단하게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고 묻힐 곳을 평소 생각해두는 정도가 될 수 있고, 장례 절차, 어느 정도까지 종교적일지(명확하게 어느 종교식이라고 하면 그 틀이 있을 것이고, 어느 종교이긴 한데 간소하게 하고픈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종교색 없이, 정해진 틀이 없이...등)도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누구에게 연락을 할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연락을 빠트리는 일로도 지나고 나면 서로 곤란할 수 있으니.
- 장례절차에서 불교식과 유교식의 경계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하다. 딱히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기독교식 장례의 경우 독자적인 장례 방식이 아닌, 기존 방식의 장례 절차를 기독교식으로 번역한 듯한 느낌. 일제시대와 6.25를 거친 후 눈에 보이는 건물 뿐 아니라, 문화와 정신적인 역사도 다시 밑바닥부터 새로 만들어왔던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 문화가 오코노미야키 같다. 있던 재료에 새로운 재료가 섞이고 전후가난 같은 사회적 환경 속에 새로운 메뉴탄생. 맛은 좋은데 딱 내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이끼 사진을 많이 찍곤 했는데,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그 자리에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쌓여서 형성된 것들이 좋다.
- 기존 장례 절차에서는 남자 상주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인의 가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대표로 절도 하고, 대표로 인사도 받고... 잠깐은, 나도 그런 역할을 해줄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제 외동 아들 딸이 흔한 시대일 뿐더러, 기존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런 습속도 바뀔 것 같다. 옛날에는 장례를 치르면 가정집에서 그 많은 조문객들을 치러냈고, 아주머니들은 음식과 술과 화투를 준비하느라 치열한 전쟁을 치르듯 장례를 치렀다. 흔히 밤을 샜고, 흔히 싸움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장례는 고된 일이지만, 적어도 상주들은 상조회에서 파견한, 장례에 익숙한 도우미들에게 많은 일을 맡길 수 있고, 장소는 개인공간이 아닌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도, 유족과 조문객이 인사하고 교류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겠지. 슬픈 상주를 더 고되게 하는 지금의 조문 방식도 달라질 여지는 있다.
- 언젠가부터 늙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산다. 딱히 바람직한 습관도 아닌데, 암튼 그렇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이제는 늙음 그 이후에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거기에 너무 몰입하면 감정낭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영화 속 대사가 있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과, 현재에 집중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찾아봐야겠다.
- 돌아가신 장모님이 보내신 세월을 채운 수 많은 드라마들을, 유족들은 오직 일부분만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그 마저도 세세한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며 기억 속에서 잊혀져갈 것이다. 육신의 죽음은 짧은 2박3일의 장례식과 땅 속으로의 매장으로 끝나고, 개인의 역사는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에서 오랫동안 서서히 가늘어지다가, 그 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을 때 끝나는 것일 것이다. 관직에 오르고 무대에 올랐던, 혹은 연쇄살인마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서 '인사유명'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고, 사람들은 묘비에 몇 자 더 새길 만한 업적을 남기려고 노력하고, 자기를 닮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일까. 한 다리 거리의 지인들마저 떠난 세상에 굳이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수 있지만, 뭐가 됐든 개개인의 인생은 알고 보면 참으로 흥미롭고 슬프고 즐겁고 다채로운 스토리들이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정제되지 않은 명작 소설을, 하루에도 여러 권을, 덧 없이 땅 속에 묻어버리고 있다.
- 골프업계 관계자와 골프전문코치와 골프애호가가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깊이 있는 대화가 오고 간다. 함께 골프를 친다. 특정 국가 골프 발전을 위한 방법을 논의한다. 나도 골프를 조금은 더 잘 쳐야겠다. 나도 골프 공부를 조금 더 해야겠다. 골프 이론과 클럽 지식을 더 쌓아야겠다. 커뮤니티게시판 인기글들을 읽거나, 뜬구름 잡는 계획 세우는 일이나, 논란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 따위가 아니라, 관련 지식을 늘리기 위한 공부를 출퇴근 지하철에서 해야겠다. 그것이 월급쟁이의 예의인 것 같다. 회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회사에 몸 담고 있는 내 인생을 위한 예의.
-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간단하게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고 묻힐 곳을 평소 생각해두는 정도가 될 수 있고, 장례 절차, 어느 정도까지 종교적일지(명확하게 어느 종교식이라고 하면 그 틀이 있을 것이고, 어느 종교이긴 한데 간소하게 하고픈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는 종교색 없이, 정해진 틀이 없이...등)도 미리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누구에게 연락을 할지,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연락을 빠트리는 일로도 지나고 나면 서로 곤란할 수 있으니.
- 장례절차에서 불교식과 유교식의 경계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하다. 딱히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기독교식 장례의 경우 독자적인 장례 방식이 아닌, 기존 방식의 장례 절차를 기독교식으로 번역한 듯한 느낌. 일제시대와 6.25를 거친 후 눈에 보이는 건물 뿐 아니라, 문화와 정신적인 역사도 다시 밑바닥부터 새로 만들어왔던 것 같다. 알면 알수록 우리나라 문화가 오코노미야키 같다. 있던 재료에 새로운 재료가 섞이고 전후가난 같은 사회적 환경 속에 새로운 메뉴탄생. 맛은 좋은데 딱 내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이끼 사진을 많이 찍곤 했는데,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그 자리에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쌓여서 형성된 것들이 좋다.
- 기존 장례 절차에서는 남자 상주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인의 가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대표로 절도 하고, 대표로 인사도 받고... 잠깐은, 나도 그런 역할을 해줄 아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제 외동 아들 딸이 흔한 시대일 뿐더러, 기존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런 습속도 바뀔 것 같다. 옛날에는 장례를 치르면 가정집에서 그 많은 조문객들을 치러냈고, 아주머니들은 음식과 술과 화투를 준비하느라 치열한 전쟁을 치르듯 장례를 치렀다. 흔히 밤을 샜고, 흔히 싸움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장례는 고된 일이지만, 적어도 상주들은 상조회에서 파견한, 장례에 익숙한 도우미들에게 많은 일을 맡길 수 있고, 장소는 개인공간이 아닌 장례식장을 이용한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도, 유족과 조문객이 인사하고 교류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겠지. 슬픈 상주를 더 고되게 하는 지금의 조문 방식도 달라질 여지는 있다.
- 언젠가부터 늙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산다. 딱히 바람직한 습관도 아닌데, 암튼 그렇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이제는 늙음 그 이후에까지 생각을 하게 된다.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거기에 너무 몰입하면 감정낭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영화 속 대사가 있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과, 현재에 집중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찾아봐야겠다.
- 돌아가신 장모님이 보내신 세월을 채운 수 많은 드라마들을, 유족들은 오직 일부분만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그 마저도 세세한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며 기억 속에서 잊혀져갈 것이다. 육신의 죽음은 짧은 2박3일의 장례식과 땅 속으로의 매장으로 끝나고, 개인의 역사는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에서 오랫동안 서서히 가늘어지다가, 그 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을 때 끝나는 것일 것이다. 관직에 오르고 무대에 올랐던, 혹은 연쇄살인마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서 '인사유명'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고, 사람들은 묘비에 몇 자 더 새길 만한 업적을 남기려고 노력하고, 자기를 닮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일까. 한 다리 거리의 지인들마저 떠난 세상에 굳이 내 흔적을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수 있지만, 뭐가 됐든 개개인의 인생은 알고 보면 참으로 흥미롭고 슬프고 즐겁고 다채로운 스토리들이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정제되지 않은 명작 소설을, 하루에도 여러 권을, 덧 없이 땅 속에 묻어버리고 있다.
- 골프업계 관계자와 골프전문코치와 골프애호가가 만난 자리에서 이런 저런 깊이 있는 대화가 오고 간다. 함께 골프를 친다. 특정 국가 골프 발전을 위한 방법을 논의한다. 나도 골프를 조금은 더 잘 쳐야겠다. 나도 골프 공부를 조금 더 해야겠다. 골프 이론과 클럽 지식을 더 쌓아야겠다. 커뮤니티게시판 인기글들을 읽거나, 뜬구름 잡는 계획 세우는 일이나, 논란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 따위가 아니라, 관련 지식을 늘리기 위한 공부를 출퇴근 지하철에서 해야겠다. 그것이 월급쟁이의 예의인 것 같다. 회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회사에 몸 담고 있는 내 인생을 위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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