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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ation is graduation

thezine 2019. 5. 18. 01:10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할 때 카투사 중 일부에게 미군병장학교(PLDC)에 갈 기회(?)를 주는데, 어쩌다 보니 거기에 나도 참가했었다. 미군들은 병장 진급대상자라면 꼭 PLDC를 수료해야 하지만, ROKA(Republic Of Korea, Army 약자인데, 약자 가... 흠... 못 멋진듯?), 대한민국 육군은 당시 기준으로 6.6.8.6 이었다. 군생활 21개월차가 되면 (특별히 영창에 다녀오거나 하지 않았다면) 누구나 병장이 될 수 있다. (잘난 놈도 이병이 되어야 하고, 못난 놈도 결국 병장이 되는 곳.)

 

 그런 마당에 카투사는 굳이 PLDC를 갈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지만, 그 바닥에선 나름 인정을 받고, 중대나 소대 별로 리더급 카투사에게 그 기회를 주곤 했으니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일이긴 했다. 그래봐야 군대밥 26개월 먹고 제대하는 거 똑같은데, 어딜 가나 그렇듯 열심히 했든 운이 좋았든 엄친아였든 간에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카투사들을 일부 PLDC에 보냈다. 중대에 카투사가 40명 정도였고, 자대 생활 2년이면 물갈이 한 바퀴가 되니까 총 80명을 거쳤다고 치면 그 중에 5명인가가 PLDC에 갔다.

 

 난 겸손을 떨자는 건 아니지만 운(?)과 실력이라 할 수 있겠다. 학생은 성적, 회사는 실적이라면 군대는 체력, 일머리, 눈치백단, 축구 등등 여러 요소가 중요하겠지만 미군부대에서는 일단 영어가 중요했다. 미군 입장에선 애가 성실하고 장비도 잘 다루고 PT점수도 MASTER급이라 해도 영어가 약하면 일단 1군에서는 제외시켰던 것 같다. 난 체력은 그냥 무난한 수준에 다른 부분은 특출난 부분이 없었지만 다행히 (영어시험 못본 애들을 보내는 부대로 배치 받았기에...ㅠㅠ) 영어실력은 준수한 축에 속했다.

 

 지금도 있을 듯 한데, 미군부대에는 카투사 선임병장이라는 보직이 있었다. Sr. Katusa라는 이름으로 혼자 독방을 쓰게 해주고 카투사 대표로 대우를 해주는 대신, 한 편으로는 한국군과 문화 차이로 생기는 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육군 소속인 카투사들의 인사행정을 처리하는 역할도 했었다. 인사행정이라 함은 월급날이 되면 중대원 월급을 10원단위까지 확인해서 만얼마 2만얼마를 봉투에 담아 전달하는 것부터, 휴가나 인원보고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카투사에 주어진 몇 안되는 PLDC 티켓은, 그렇게 선임병장이 될 후보자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왠지... 중국 공산당이 주석 후보를 정해놓고 키우는 느낌?) 왜냐면 선임병장이 되어도 6개월이면 제대하기 때문!

 

 늘 그렇듯 전설이 길었는데, 그렇게 나름 어깨 뽕 넣고 출발은 했지만 PLDC 생활은 나에겐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도 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고 겨울이라 춥기도 했다. 추운데,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별 보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부터 일단 완전 별로.

 

 나름 군생활 익숙해질 때쯤 다시 훈련생이 된 것처럼 교관들에게 갈굼 당하면서 교육을 받는 일은, 미군들에게도 쉽지 않아 보였다. 기본적으로 다들 잠이 부족한 데다, 졸업성적을 좌우하는 세 번의 시험기간에는 다들 가장 예민했다. 어느 날은 실수를 많이 해서 동기들을 힘들게 한 동료를 대놓고 까는가 하면, 어느 날은 동료애를 강조하며 끈끈한 척도 했다. 그 와중에 정말 지겹도록 듣고 외치고 구보 중에 소리지르며 복명복창했던 구호가 Motivation is graduation.이다. 

 

 어쨌든 병장 진급 대상자로 온 친구들이라 미군들도 평소 접하던 미군들 수준보다는 학력이나 이해력이나 손재주가 좋았다. 하지만 병과가 다 다르니만큼 정보부대에서 온 친구는 똑똑한데 막노동에 약하고, 보병부대에서 온 친구는 머리가 나쁘진 않지만 치고 나갈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것이고 인종과 병과와 출신 지역이 참 다양했고 잘하는 부분, 못하는 부분, 특징, 개성이 다양했다. 아무래도 같은 병과들끼리만 있는 것보다는 인원 수에 비해 다양성이 눈에 띄었다.

 

 이 생활이 해병대나 특전사 훈련처럼 힘든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교육생들이 스트레스 속에서 지내는 것을 감안했는지, Motivation is graduation이라는 말은 교육 과정 내내 지겹도록 강조했다. 결국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뭘 해도 '그냥 그렇다' 정도 이상의 만족감은 느끼기 힘들고, 퍼포먼스도 좋아지기 힘들다. 힘든 일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직장생활 너무 행복해~ 하는 사람을 많이 못봤다. (물론 그 사람들이 표현을 안 해서 못본 걸 수도 있지만? 있으면 표현들 좀 해보시게.)

 

 요즘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문득 Motivation is graduation, 이 말이 생각났다. (직장인에게 설명 없이 이 말을 쓰면 오해의 소지는 있다. 직장 졸업하면 어디 가려고!? 환갑 지나도 일자리 찾아다니는 세상에?)

 

도저히 동기를 찾기 힘든 상황도 물론 있겠지만... 세상 좀 살아보니 다 뒤집어 엎고 새로 하는 것보단, 하던 거 잘 해보려고 하는 것이 더 가능성은 높은 것 같다. 노예 생활이라면 벗어나야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는 가정 하에 말이다. 그리고 이 상황을 캡틴아메리카가 보면 나에게 충고해줄만 한, 뻔하지만 맞는 말은 어떤 말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런 생각을 해보니 이런 저런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잠시 뿜뿜 하기도 한다.

 

 약쟁이는 아니지만(한국에 약쟁이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요즘 뉴스 보고 알았다.) self-motivation의 약발은 부정기적으로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어쨌든 세상에 많은 '괜찮아, 잘 될 거야' 류의, 여러 가지 '자기 응원' 중에, 나에게는 이 말이 유독 꽂히기에 가끔 혼자 되뇌인다. Motivation is graduation!

 

 그렇게 마음 속으로 내 나름의 cheer up 만트라를 두세번 떠올리다가 '그럼 graduation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 라고 생각도 잠깐 해보고. 그러다 보면 기분도 조금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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