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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제주항

thezine 2023. 2. 13. 00:02


제주 사랑의 일환으로 읽은 책들이 많다. 제주야생화 같은 마이너한 책도 있고, 제주 어디 학부모회에서 책 만들기 강좌 수강생들이 단체로 책을 낸 건가 생각이 드는 에세이도 있고, 브런치에서 등단한 작가의 에세이, 만화로 된 여행기도 있었고, 제주 오름을 소개하는 책도 있었다. 그 중에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제주항은 한 명의 작가가 쓴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책이다. 몇 백 년 전부터 어쩌면 그 자리였을지 모르는 제주항을 중심으로 멀게는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각기 다른 시대 배경 속에서 제주 사람들이 살아갔던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했다. 그 어느 한 편도 유쾌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삶은 참 고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본 제주의 역사를 다루는 글에는 거의 항상 '척박한 환경'을 이야기한다. 책 외에도 제주의 다양한 박물관의 벽에 쓰여진 글귀나, 올레길 어떤 공원의 안내판에서도 보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오래 전 현대화 되기 전 제주는 척박하기 그지 없는 곳이었을 것이다. 바위 투성이 땅은 논농사가 불가능하고 땅은 기름지지 않았고 사철 바람이 거세어 먹고 사는 일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도 제주의 건물들은 제주의 거친 바람을 견디기 버겁다는데, 그 시절 흙과 식물로 지은 집에서 겨울을 나기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우리나라의 고난스런 근현대사의 풍파를 함께 맞은 정도가 아니라 더 심하게 겪기도 했다. 겉핥기 지식이긴 하지만 섬사람이 방어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주 사람이나 제주를 변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글에는 보통, 제주가 겪었던 모진 세월 때문에 생겨난 방어 본능이라고 했다.

제주도가 관광지로, 일상의 도피처로, 자발적 주말부부 거주지로, 한달살이 목적지로, 환상적인 곳으로 자리잡은지 오래 됐지만 지금도 그 척박한 느낌은 은근히 여기 저기 남아있다. 몇 군데의 도시나 마을을 벗어나서 드문 드문 서있는 건물들은 우편물이나 받아볼 수 있을지, 아이를 키우고 학교에 보내는 일상 생활은 힘들어보이는 곳이 많다.

제주 도민들이 이야기하는 고물가, 겨울의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살짝만 난방을 해도 생활비가 수십 만원 늘어나는) 추위, 금액이 추가되는 택배비 같은 것들도 여전히 제주의 삶을 척박하게 만든다. 생활비가 늘고 주는 것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없을 사람들을 제외하면, 실제로 제주도를 환상의 섬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오직 관광객들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제주의 서사가 오히려 제주의 풍경을 아름답고 슬프게 만들어서 오히려 나같은 관광객이 다시 제주를 찾게 만드는 이유를 더하는 듯 하니 그 또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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