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잡담] 시간 잘도 간다 본문

잡담끄적끄적

[잡담] 시간 잘도 간다

thezine 2007. 10. 21. 02:4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제 찍은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폴더를 찾아보면 되는데... 귀찮다. 올해 초였을 것 같다. 혹은 작년 말...? ^^a) 아무튼 이번 봄보다는 이른 어느날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겨울에 눈은 흔했는데 어쩌다 보니 세상이 우습게 돌아가면서, 어린이과학책에서만 봐온 '온난화'가 현실이 되었고 이젠 서울에서 눈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눈이 쌓이면, 우리 할머니를 비롯해 노인들이 돌아다니기가 어려워진다. 또 흘러가버리는 빗물과 달리 눈이 길에 쌓이면 서서히 녹으면서 꾸준히 구정물을 흘려보내 길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릴 때 언젠가, 그 어린 게 을지로에 뭐 볼 일이 있을까마는, 친한 후배와 낮시간에 길거리를 걸었던 생각이 난다. 눈이 얼마나 펑펑 오는지, 세상이 하얗게 덮힌 걸로 부족해서 쉼 없이 내리는 눈 덕분에 그 넓은 거리에 오직 하얀색 뿐이었던 생각이 난다.

 눈 때문에 차도 다니지 않고 사람들도 거닐지 않는 을지로 거리, 그런 풍경은 다시는 볼 수 없겠지?



-=-=-=-=-=-=-=-=-=-=-=-=-=-=-=-=-=-=-=-=-=-=-=-=-=-=-


 쓰다보니 왠지 환경보호를 역설하는 글이 되버린 것 같다. 소소한 고백을 하자면, 내 글들을 어떻게든 마무리짓긴 하지만 때론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글이 되버릴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이 글은 길지 않게 마무리할 각오로 다시 주제로 돌아와야겠다.


 사진 속의 풍경은 눈이 쌓여있다 뿐이지 늘 다니는 길이다. 이 집에 산지 벌써 2년이 조금 모자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 사진을 보니 시간이 참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진을 찍은 내 카메라도 산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얼추 계산해보니 1년하고 두달 여가 흘렀다. 햇빛이 강해서 눈이 부시던 더운 날, 남대문 카메라 상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생각이 난다.

 쉬지 않고 업그레이드 제품이 나오고 가격은 떨어지기 때문에, 디지털기기를 사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가 언제냐면 죽기 직전이란 말도 있다. 나는 아직도 내 카메라를 애지중지하며 이따금 애정어린 손길로 보듬곤 하지만 후속모델도 이미 출시되었고 이 기종의 가격도 아마 많이 내렸을 것이다.

 나는 내가 그대로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 카메라도 아직 새거라고 무심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온 후로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 카메라를 1년이 넘게 써오고 있었다.

 모르고 법을 범했을 때 '그런 법이 있는지 몰랐다'고 항변해도 처벌을 면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그 시간만큼은 너의 지난 세월을 돌려줄게' -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리도 만무하다.

-=-=-=-=-=-=-=-=-=-=-=-=-=-=-=-=-=-=-=-=-=-=-=-=-=-=-



 중국어 작문 연습을 하면서 '지난 30년을 살면서'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다. 여전히 익숙치 않은 숫자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어린 시절 풍경들과 기억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까마득하다. 기억은 너무 선명하고 거리감은 너무 멀게 느껴져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연초에 2007이라는 숫자가 조금 지나면 익숙해지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익숙해졌다 생각이 들 때쯤이면 벌써 봄이 지나 여름이 오곤 한다. 나는 그럼, 서른 다섯쯤 되면 '서른'이란 숫자에 익숙해질까? ^^

 중국의 신진 지도부에 대한 기사 중에 누구누구는 나이 제한에 걸려서 상무위원을 그만둔다던가 하는 기사가 있었다. 69세의 나이, 그 사람에겐 아직도 한창이라고 느껴져서 공산당의 결정이 내심 야속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기사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을까?)

 어쨌거나, 시간이 빨리 흐르더라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고 해서 사람이 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늙어가는 것은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다.
 
 학교에 다니고 어른이 되고 하는, '남들과 함께, 남들만큼은 다 해야 하는 과정'은 이제 모두 지나갔다. '적어도 이런 건 해봐야지' 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괜찮았던 것 같다. 다만 앞으로의 30년은, 그리고 그 후의 시간은 더 가득 가득 내가 원하는 것들로, 남들과 다른 것들로 채워갈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지에서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매 순간마다 익숙치 않은 새로운 것들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생활이 단조롭기 그지 없다는 뜻이다. 변화가 없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일도 없다. 새로운 것들, 하고 싶은 것들... 너무 많다. 그 생각을 하면 발걸음이 빨라진다.

 때론 나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몇 가지에 대해서는 끝내 내 고집대로 해야만 한다. 가족에게든, 가까운 친구에게든, 고집을 피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은 갖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결국 양보할 수 없게 된다. 아... 은근히 고집스러운 성격이여... ^^;

'잡담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원 목록  (0) 2007.11.06
홍콩사람과 confenrence call을 마치고  (0) 2007.10.29
합창연습실  (0) 2007.09.17
편견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0) 2007.09.07
반도半島 시민에게 '먼 곳'은 어디일까.  (1) 2007.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