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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의 부활

thezine 2010. 2. 24. 13:16

딴지일보 메인화면

  요즘 딴지일보(http://www.ddanzi.com/)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있는 듯 하다. 딴지일보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덧붙이자면 대체로 진보적인 아젠다를 때론 진지하고 깊이있게 다루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코믹하게 다루곤 하는 온라인 매체다. 딴지일보의 옛날 메인화면은 엉덩이 모양의 그림이 있고 그 중간을 클릭해야 기사를 볼 수 있었는데 현실을 똥침한대나 어쨌대나. 아젠다 측면에서는 한국 언론계의 암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일보를 비판하고 풍자하곤 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지난 몇 년간 딴지일보를 찾지 않게 됐다. 대부분의 뉴스를 포털사이트에서 읽게 되고, 딴지일보의 컨텐츠도 포털의 뉴스모음과 포털의 블로그 모음에서 볼 수 있게 된 무렵부터인 것 같다. 딴지가 침체기에 들었던 이유가 뭐라고 딱히 말하긴 어렵다. 다만 그때 가끔 자료를 찾으러 딴지일보 사이트를 열어보곤 '아직도 돌아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걸 보면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거의 잊혀져있던 사이트.

 그런데 요즘은 딴지 특유의 재기발랄한 기사가 넘쳐나는 듯 하다. 옛날부터 딴지에는 재야의 고수 필자들이 쓰는 글이 많았는데, 나름 전문성을 갖춘 데다가 쉽고 재밌게 쓴 글이 많다. 똥폼과 허세로 무장하고 여론왜곡에 앞장서는 신문들 때문에 생기는 답답함을 해소해줄 때가 많다.

 오랜만에 딴지에 좋은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그 전에도 줄곧 좋은 글들이야 많았겠지만 아무튼) 문득 작년에 TIME에서 읽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글이 떠올랐다.

  작년 8월31일자로 실린 Comedy in the Obama Age: The Joking Gets Hard 라는 기사가 있다. '오바마 시대: 농담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라는 제목이다. (원문 링크)
 
 섹스 스캔들로 '이건 뭐야' 싶은 에피소드가 많았던 클린턴 대통령도 그렇지만, 특히나 부시대통령이 재임한 8년은 미국의 정치 코미디언들에겐 태평성대의 시기나 마찬가지였다. 위 기사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부시 대통령은 ready-made joke였다. 부시 대통령은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 수준으로 '준비된 웃음거리'였다는 뜻이다. 초등학교에 방문해서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던 사진처럼, 부시대통령은 일부러 그러기도 힘들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그에 반해 지금의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을 한 이후로는 스탠딩쇼 형식의 정치 코미디언이나 제이 리노, 데이빗 레터먼 같은 인기 토크쇼 진행자들의 농담에서 대통령을 우스개거리로 삼는 일이 더 적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농담에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는 경우에도 대통령 당사자보다는 미국의 달라진 정치 환경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요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time의 기사들에서 느낀 그의 스타일은 대체로 '쇼'를 싫어한다는 뜻의 'no-drama', 그리고 법학교수스러운 지적이고 신중한 이미지다. 그리고 종종 자신의 실수를 누가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내가 망쳤다 I screwed up'라고 하니 비판자나 코미디언으로선 김빠지는(?) 스타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말은 오바마가 Daschle이란 사람을 보건부 장관으로 지명했다가 세금문제로 지명을 철회하며 한 말이다. MB정권에서 세금문제 정도는 지명철회감도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탈세와 위장전입 경력이 없이는 공직에 진출하기 힘든 상황인 것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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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된 웃음거리' 부시가 퇴임하고 진지하고 지적인 오바마의 등장으로 정치 풍자의 소재가 줄어든 미국과, MB의 등장과 함께 재 부흥의 전기를 맞이한듯한(물론 순전히 내 맘대로의 평가) 한국의 딴지일보.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MB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해고, 고발, 폭력진압 같은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그나마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정치 풍자는 탄압을 덜 받는 편이다. 때론 '아 우리나라 네티즌의 풍자 센스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구나' 싶을 때도 많다.


 지난 해, 촛불시위를 막기 위해 새벽부터 컨테이너 성벽을 쌓은 것에 대해 그날 낮에 벌써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 명박산성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린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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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을 함께 살고 있지만 어째 미국과 한국사회의 시계는 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 하다. 사회가 커다란 진보를 이룬 후에는 진보 매체가 사라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진보적 지식인들, 글쟁이들은 먹고 살 일이 걱정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으로선 쓸 데 없는 걱정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