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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편지 쓰지 않기

thezine 2016. 12. 28. 00:09

내용과는 관계 없는 사진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킴.

밤 늦게 편지를 쓰고 낮에 읽고는 찢어버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의 기분은 무슨 일이 있고 없고 상관 없이 하루에도 시간대에 따라 그렇게 달라진다는 것이 신기하지만.

협상 전략을 논할 때, 내 쪽의 시한을 공개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간에 쫓기면 하지 않을 양보도 하게 되기 때문.

술에 취해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가 다음날 통화 목록을 보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밤과 취기가 겹치면 실수도 증폭되겠지.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연말이나 명절이나 또는 단순히 날씨가 좋은 오후에 하고는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은 그런 동물이니까.

오래 전 영화 중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였던가, 12월 31일 저녁에 급하게(?) 상대방을 찾아가 카운트다운을 함께 하는 장면을 본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대사는 '꼭 12월 31일에 혼자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야' 같은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봤는데 그것도 마침 12월 31일이 배경이다. '투나잇 스탠드'라고, 원나잇 스탠드로 만난 커플이 폭설에 발이 묶이면서 투나잇스탠드를 하게 되고, 그게 다시 애정으로 발전한다는 내용.

이번에는 두 주인공이 12월 31일 카운트 다운 직전에 극적으로 만나서 키스하지 않고, 새해가 된 직후 눈 쌓인 뉴욕 거리를 함께 걷는 장면이었다.헐리우드 영화가 보통 그러듯, 기존의 틀에 박힌 장면에서 살짝 더 신선하게 바꿔서 '새로운 틀에 박힘'을 창출하는 장면이었다.

엄청 미인은 아니지만 키도 크고 톤이 높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여배우가 궁금해 찾아보니 Analeigh Tipton이라는 배우였는데, 피겨 스케이트 선수, 모델, 배우 등등 특이한 경력이다.

그러고 보면 오~래 오래 전에 톰 행크스, 멜라니 그리피스가 출연한 영화를 보며 멜라니 그리피스의 톤이 높고 백치미 스러운 맹한 목소리가 매력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등학생 때였으니 오래 전 이야기지만) 내가 그런 목소리를 좋아하는가보다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본 후 케이블 채널을 돌려보는데 영화 '루시'에 다시 그 배우가 등장한다. 구글에서 배우를 잠깐 찾아볼 때 어깨에 문신이 있었고, 오늘 본 영화와 루시에서 모두 같은 어깨 문신이 나오는 것을 보니 분장이 아니라 진짜 문신인 듯. 관객 입장에서는 캐릭터에 몰입을 방지하는 영화관 핸드폰 불빛 같은 문신이라 생각되는데, 그걸 알고도 문신을 했을 테니 특이한 사람인 것도 같다.

아무튼 투나잇 스탠드에서도 결국은 뉴욕의 12월 31일에 한 커플이 맺어진다는 내용.

첫 해외 여행으로 들떠 뉴욕으로 떠났던 2010년 12월 27일, 연말이라 방을 잡기 힘든 시기에 예약도 없이 뉴욕에 도착했던 난감한 기분도 이제 다 잊어버렸지만, 그래 연말이었지, 하는 생각에 요 며칠 그때 생각이 나곤 한다.

내가 잘 곳=유스호스텔 이라는 생각으로 전세계 유스호스텔 전화번호부 같은 책을 들고 뉴욕의 어떤 지하철역에 내려서 길거리로 나왔는데, 개를 산책시키던 한 남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유스호스텔은 저기 어느쪽'이라고 알려줬다. '여기에 서서 지도 보고 있는 애들은 전부 거길 찾아가는 중이니까' 라고 했다.

연말이 다가오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디폴트로 하는 한 해가 어땠고 하는 생각과 이런저런.

새로 생겨난 연정을 고백하면서도, 이것이 충동적인 고백은 아님을 짚고 넘어가고 싶어했던 영화 주인공들 생각을 한다. 연말에 하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단순히 연말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고 하는 시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원래 해야 하고 원래 할 만한 생각들인가 생각을 해보다 보니 그렇다.

보통 새로운 시도는 '안 해서 후회'하고, 기분이 묘할 때 하는 행동들은 '해서 후회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이번 연말에는 뭘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 이제 고민할 시간도 별로 없다. 만날 사람들 만나고 가족과 할 일들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다만 새해는 별로 기대가 안되네. 기대를 안해서 의외로 더 괜찮은 한 해가 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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