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보수와 진보의 원칙 본문

시사매거진9356

보수와 진보의 원칙

thezine 2008. 5. 28. 21:55
 우리나라에서는 '진보'와 '보수'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행동이 흔히 사전이나 사회학에서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것과 다를 경우가 많다. 일일이 예를 들자면 한이 없는데 간단히 한 가지만 예를 들면 미국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미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편에 서고 진보주의자라는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희한한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민족 독립의 상징적인 날인 3.1절에 시청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워낙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특이한 면이 많다보니 일반적인 '진보'와 '보수'의 틀로는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저 case by case로 나열해보는 편이 더 쉬울 것 같다.


1. 북한 인권

 진보주의자들이 앞장서서 북한 인권을 외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보다는 북한과의 관계를 잘 관리해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교류가 확대되는 방식을 선호한다. 미국, 일본, 중국 등 타국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외부 여건과 관계없이 남북관계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선호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한반도에 전운이 감도는 긴장상황을 거리껴하지 않는다.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평화를 주장하긴 하지만 북한과 적대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강경한 조치를 선호한다. 보수파들에게 북한의 인권은 대체로 진보주의자들의 인권운동을 반박하는 수단으로서 거론되곤 한다. 또한 보수파들은 한반도 안보에서 미군의 역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데 남북관계 불안과 이로 인해 미군의 역할이 더 커지는 순환 구조를 발생시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의 의사인 '풀러첸'이라는 사람이 있다. 북한 인권을 위한 운동가로 자처하는 사람인데, 시위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격한 행동과 그에 따르는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진보파에서는 과격한 돌아이로 취급되는 사람이고 보수파에서는 북한 인권을 이슈화시키는 총알받이로 각광받는다. 북한 인권이 진보파의 이슈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통일을 이룬 후에 가능하지 않을까.



2. 국내 소수자 인권

 국내의 대표적인 소수자로는 외국인 노동자, 여성, 양심적 병역 거부자, 동성애자, 성전환자 같은 사람들이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이 같은 소수자들에게 동정적이다.(불쌍히 여기는 동정pity가 아니라 심정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한다는 뜻의 동정compassionate이다.)

 개인적인 소신이나 종교적 신념으로 집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옹호하여 대체복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구타, 성폭력을 방지하고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양성평등운동을 하는 사람들, 동성애자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목적은 달라도 대체로 진보주의의 틀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관련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34623



 반면 보수파들은 국내의 인권 상황에 대해 대체로 강경하다. 국가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양심적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 복무를 허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적당히 싸게 부려먹은 후에 강제 출국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임금 현실화, 노동 환경 개선(ex. 한국타이어 공장의 유독물질)과 같은 주장을 하고 파업을 하는 사람들은 뻔뻔한 요구를 하는 노동귀족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명분이 있는 파업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불편이 생기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시민을 볼모로 한...")


3. 국민 저항권

 국민 저항권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는 낯선 단어다. 법을 어기지 않아도 끌려가서 고문당하는 일이 흔했던 터라 법대로만이라도 하길 바랬던 한국 사회에서, 잘못된 법과 권력에 저항한다는 개념은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 권력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서, 잘못된 권력과 법에 대해서는 국민이 저항하고 맞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국민 저항권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무현 정권 시절 "대통령이 여론 외면하면 남은 선택은 국민저항권"이라고 외치던 보수파들


 보수파는 대체로 악법도 법이며 시위와 파업의 명분과 상관없이 법에 어긋날 경우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옳고 그른 것과는 무관하게 공권력은 도전받을 수 없다고 믿는다. 비무장 시민에게 총구를 겨누더라도 상관의 명령이라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수 특권층을 보호하거나 경제, 사회 정의에 반하는 법률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진보파는 악법은 거부해야 하며 바꾸고 폐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보안법처럼 UN등 국제사회에서 폐지를 권고하는 법 뿐 아니라, 일반적인 법률에 대한 위법이라 해도 명분이 정당할 경우 나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예를 들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현행법률을 어기고 신고 없이 집회를 하는 것은 집회가 정당하다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4. 환경 보호

 보수파는 대체로 환경 보호 운동을 반대한다. 과거 미국 민주당 정치인인 앨 고어가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로 환경 보호를 역설할 때, 앨 고어의 대저택이 엄청난 전기를 소모한다며 비판하던 사람은 TIME의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Krauthammer라는 사람이다. 또한 이산화탄소로 인한 온실효과, 온도 상승, 기후 변화, 환경재난 발생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고 비과학적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 역시 보수파에 속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 환경운동 너무 좋아!


 소수자 인권 운동과 함께 환경운동 역시 진보적인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인 시민 운동이다. 환경운동과 진보가 엮일 수밖에 없는 것은 환경 오염의 주체가 대체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의 표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업이 폐수를 무단 방류하거나, 미군 기지의 토양이 무단 투기된 기름으로 오염된 것을 찾아내고 비판할 때는 기업과 미군을 비판하는 것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환경 오염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그들이 환경 오염의 주범인 경우는 드물다.


5. 강자에 대한 태도

 본인이 강자 그룹에 속하는 것과 무관하게 보수파들은 대체로 강자 그룹을 옹호한다. 그리고 강자의 부흥이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곤 한다. 예를 들어 삼성이 기업의 재산을 편법 수단을 동원해 돈세탁하고 총수의 재산을 불리는 데 사용한 사건에 대해서도 '삼성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되고 내가 잘 된다'고 믿는 달동네 가난한 아저씨를 떠올리면 된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삼성이 아니라 '이건희'가 잘 되는 것이 삼성과 나라의 이익이라고 믿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실제로 이건희는 삼성의 기업 이익, 주주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했더라도 말이다.)'강자'라 함은 대체로 한국에서는 '재벌 기업'과 '지방 토호', '미국과 미군' 등을 의미한다.

 이번에 미국 소고기를 수입하는 문제에 있어서 '미국을 믿어야지 누굴 믿느냐'고 하던 공무원의 경우,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것은 왠만하면 다 들어주자'던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서, 한국 보수주의의 한 전형을 이룬다. 또한 성추행 혐의로 한나라당에서 쫓겨난 최연희 의원이 지역에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강원도에서 재선에 성공한 것도 어떤 면에서는 강자를 밀어줘서 나도 득을 보자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의 믿음에 부합하는 케이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반대로 진보파들은 대체로 강자에 대해 비판적이다. 강자의 잘못을 비판하는 데 앞장선다. 삼성 등 대기업의 특권, 편법 등 관행에 대해 비판적이며 폭로, 제도 개선, 법정분쟁, 사회 운동, 주주운동 등을 통해 개입한다. 강자 집단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파들이 강자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보수파들은 종종 '잘 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질 않는다'는 말로 비난하곤 한다. 다시 말하면 '잘 나가는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봐주자'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

 평소에 생각했던 보수파와 진보파가 비교되는 부분들에 대해 적어봤다. 따로 정리를 한 게 아니고 생각나는대로 적다보니 빠트린 부분도 있을 것이고 나중에 더 생각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생각날 때마다 추가하고 정리하다보면 한국 보수와 한국 진보의 지도가 대충 그려지지 않을까.


'시사매거진935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위의 배후세력  (0) 2008.06.01
이명박 OUT, please  (0) 2008.06.01
220볼트와 광우병의 관계  (0) 2008.05.09
한국인 세금으로 미국 쇠고기 광고  (1) 2008.05.06
대운하 개그콘서트  (0) 2008.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