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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9356

베트남전쟁 반전운동과 촛불시위의 유사점

thezine 2008. 7. 13. 22:10
 요즘 '하워드 진'이라는 미국 역사학자가 쓴 '오만한 제국(원제: Declarations of Independence, 1991년 작)'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처음 펼쳐본 지는 꽤 오래됐는데(아마... 6개월도 더) 이제서야 슬슬 진도를 나가고 있다. 하워드 진은 예전에 서평을 쓴 적이 있는 '미국민중사'의 전자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노암 촘스키'와 함께 가장 유명한 미국 진보 지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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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Zinn



 '오만한 제국'에는 '시민불복종 운동의 역사'에 대한 부분에서 베트남 전쟁의 반전反戰운동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가장 성공적이었던, 그래서 시민불복종 운동에 대해 거론할 때면 베트남전 반전운동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해당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촛불시위와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고 느꼈다.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다가 이 부분은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따로 메모를 해둔 게 있어서 메모해둔 내용만 간단히 소개한다.


1.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는 흑인민권운동가들이 앞장섰다.
 베트남 전쟁의 반전 운동은 1차적으로는 전쟁에 대한 반대였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저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베트남전 당시 흑인들은 미군의 일부로 전쟁에 참전하기는 했지만 흑인들은 징집에서부터 부대배치까지 백인들과는 격리되어있었다. 흑인들만 따로 뽑아서 흑인들끼리 훈련을 시키고 흑인들만 쓰는 방에서 자야했다. 전투에 나갈 때도 취사병 같은 고된 분야에만 배치되었다. 미국 국내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아주 심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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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민권 운동



 흑인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가들은 정당하지 않은 목적을 위해 정당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모순을 느꼈다.

 촛불시위에서 참가자의 숫자로 봤을 때 대다수는 특별한 단체에 소속되어있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숫자는 적지만 다양한 진보적 성향의 단체들이 참가하고 지원 활동을 벌였다. 진보적 시민단체라고 하면 대체로 여성운동, 환경운동, 동성애자나 장애인 등 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이 포함되곤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외국인 인권 문제도 머잖아 '인종 평등'이라는 주제로까지 발전할텐데 관련 시민단체 역시 진보 단체에 속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 자본에 논리에 밀린 환경에 대한 차별 등은 차별당하는 대상이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정글과 같은 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차별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반대로 그런 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입장을 기준으로 본다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고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여성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도 막연한 반감을 가지기 보다는 더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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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참가 단체 목록 일부



 미국의 반전 운동에 참가했던 다양한 단체들, 한국의 촛불시위에 참가한 실로 다양한 단체들(요리동호회, 카메라동호회, 메이저리그 야구동호회, 오토바이 동호회, 민변, 운동권/비운동권 대학총학생회...)은 각각 1970년대 미국, 2000년대 한국이라는 상이한 상황에서 다른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보적 가치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시위 및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표출되었다는 점에서, 힘을 합쳐 정부에 맞섰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2. 정부의 잘못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서로 도와주며 연대했다.
 베트남 반전운동은 미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처음에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반전 운동에 동의했지만 이내 반전운동의 정당성이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심지어 미국 국내의 군부대와 베트남 현지의 군부대에서도 군인들이 비도덕적인 명령에 불응하는 행동을 했다.

 미국의 군부대 근처에는 '반전 카페'가 생겨났는데 군인들과 반전 운동가들은 이곳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은 지하 신문을 만들어 반전 운동에 관한 정보, 관련 기사, 병사들의 고통에 대한 소식, 반전 운동과 관련해 병사들의 법적 권리에 대한 실제적 조언 등을 교환했다.

 이번 촛불시위는 주모자가 없이도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대형 시위를 이끌어낼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인터넷 공간의 힘이 컸다. DAUM의 '아고라'를 경찰들이 배후로 지목하는 코미디가 벌어졌던 것도,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이 다음의 카페를 통해서 퍼져나갔던 것들도 베트남 반전 운동의 '반전 카페'를 연상시킨다. 동일한 작용을 하는 모임이 시대적인 변화에 적응해서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왔을 뿐인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지하 신문 등을 통해서 반전 운동 과정에서 체포당하고 수사를 받는 사람들을 시민운동가 변호사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변호해주고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번 촛불시위 참가자, 연행된 사람들을 위해 민변이 조언을 해주고 무료 변론을 맡는 등 조력하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3. 종교의 참여
 베트남 반전 운동의 실천 방법 중에 하나는 각 지역의 병무청에 몰래 들어가서 징집 서류를 파기하는 것이었다. 혹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징집 카드를 불태우는 방식으로 시위를 하기도 했다.(미국 대 오브라이언 사건 페이지 중간쯤, 4번째 문단). 당시 병무청에 몰래 들어가서 징집 카드를 파기하려다 붙잡힌 사람들 중에는 신부와 수녀들로 구성된 시위자들도 있었고, 반전 모임은 종종 교회에서도 열리는 등, 반전 운동에는 종교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종교적 가치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사회적인 보수와는 달리 윤리를 강조한다. 미군이 베트남의 농민, 부녀자를 학살한 증거가 공개되면서 베트남 전쟁의 비도덕성이 명확해지자 미국의 종교인들은 베트남전 반전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에 한국 3대 종교 단체들이 순차적으로 시위를 주도한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


4. '범법'의 기계적인 적용
 베트남 반전 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의 주장은 미국 보수층의 심기를 건드렸다. 검사가 피고의 죄를  추궁하기도 전부터 판사는 최대한 무거운 처벌을 내리기 위해 이를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법을 어긴 사실을 기계적으로 들이대고 처벌하려는 시도를 했다.

 예를 들면, 병무청에 들어가 징병 카드를 파기하려고 하는 행동은 건물에 몰래 침입한 행위로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베트남전이 아무리 비도덕적인 전쟁이고 반전운동이 아무리 고결한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법을 어겼을 때는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도 기계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촛불시위 과정에서 쓰레기가 쌓이거나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왔다거나 시위 참가자 20만 명 중에서 2명이 폭력을 휘둘렀거나 하면 약속한듯 앵무새처럼 '불법 시위'를 들먹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유명한 풍자 만화가 있는데 링크만 소개한다. 법은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규범이며 완전무결할 수 없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이며 법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0&articleId=382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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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촛불시위에 대해 보수세력들은 '배후설'을 꺼내거나 '촛불을 이용해 좌파가 준동한다'는 주장을 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는 약자인 진보 단체들이 힘을 합쳐 권력의 부조리에 도전한다는 것은, 진보적 가치를 싫어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이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절반은 맞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썩은 물 때문에 전염병이 돈다면 전염병 치료가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썩은 물을 없애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야 한다. 미産소고기 사태의 본질은 현 정권의 내재적 문제점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시위가 재협상에서 나아가 정권 퇴진 운동으로 연결된 것을 부자연스럽게 볼 필요는 없다.

 촛불시위에 대해 '정권 퇴진 등 정치적 집회로 변질되었다'고 폄하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시청에서 '구국기도회'를 주최하고 성조기를 흔들며 노무현정권 퇴진을 외치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권에 대해서건 시민들은 퇴진하라고 외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노동단체와 학생운동 단체들은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맞서 정권 퇴진을 줄기차게 외쳤다.) 촛불시위도, 언론매체의 사설도, 경찰과 검찰의 공안정국 조성도 모두 정치행위다. 생활 자체가 정치의 일부인데 '정치 집회로 변질'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식이라면 직업 정치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아무런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CIA가 대학에 신입 요원을 모집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학생 시위대가 이들을 가로막은 일 때문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20년 전쯤 일인데, 미국도 정부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방식이 왠만한 독재국가 못지 않았나보다.) 그때 재판에 전직 CIA 요원이 증인으로 참석해 CIA가 해외에서 벌인 온갖 테러활동, 테러 지원 활동, 살인 행위들을 증언했다고 한다. 배심원들은 CIA의 불법적인 활동들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학생 시위대에게는 무죄 평결이 내려졌다.

 촛불시위 때문에 연행된 사람들도 많고 그 중에는 일부 고발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도 고발하지 않았어도 검찰이 알아서 과잉 수사를 하기도 한다. 이건희의 배임, 횡령에 대해서는 죽어라 고발해도 수사와 재판을 미루던 사법부가 어째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에 대해서는 이처럼 빠릿빠릿한지. 그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1786년 미국 서부 메사추세츠 주에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제퍼슨은 그들의 주장에 동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정부가 사면해주기를 희망했다.

 "정부에 대한 저항정신은 어떤 경우에는 아주 가치있는 것이어서, 저는 이 정신이 늘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때론 부적절할 때에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저는 때때로 일어나는 소규모 반란은 좋다고 봅니다. 그것은 대기 속의 폭풍우와 같은 것입니다."

 제퍼슨이 반란을 폭풍우에 비교한 것은, 대기 속의 불안정한 에너지가 폭풍을 통해 해소되고 에너지가 지구 여러 곳으로 고루 분배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연상시킨다. 폭풍우가 불지 않는 것이 당장은 편해보이겠지만, 폭풍우가 불면 당장은 혼란이 생길 수도 있지만 폭풍우가 불지 않는다면 결국은 더 큰 피해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주고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해주는 것은 순전히 부조리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노력 덕분이다. 노동조건 개선, 복지 개선, 참정권과 같은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정부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허락한 것이 없다. 모두 '혼란'을 거쳐, '정부 전복 기도'라는 거창한 헛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얻어낸 것들이다.



 미국에서 '최저 임금'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미국 기업가들은 이 제도를 시행하면 미국이 공산화될 거라고 설레발이를 쳐댔다고 한다. 지금은 지구 최후의 이데올로기 전장으로 남은 한국에서도 최저 임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한국이 공산화되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진보세력이 변화를 추구할 때마다 그것이 마치 사회를 뒤집어 엎어버리려는 시도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보수들은 부디 과한 걱정을 그만 거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