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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 주모자는 도망가고 가담자는 독박 쓰고 본문

시사매거진9356

부동산 거품: 주모자는 도망가고 가담자는 독박 쓰고

thezine 2008. 9. 3. 14:50

 요즘이야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경제가 어렵다는 것에 동의하고 부동산 가격 역시 거품이 걷히고 있다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상반기 내내 온라인에는 거품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거품임을 주장하는 측은 대체로 인구 감소를 주된 논거 중에 하나로 들었고, 거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측은 대체로 서울과 강남 지역에 실수요가 많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던 것 같다.

 정치와 마찬가지로 경제에 대해서도 누구나 할 말은 있고 나름의 의견은 있겠지만 그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식견은 그 중 일부일 뿐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므로 단정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긴 어렵다. 다만 요즘 부동산 경기에 대한 뉴스를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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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순환 모형


 부동산 경기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벌집 순환 모형'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1국면(거래량 증가, 가격 상승)→2국면(거래량 감소, 가격 상승)→3국면(거래량 감소, 가격 보합)→4국면(거래량 감소, 가격 하락)→5국면(거래량 증가, 가격 하락)→6국면(거래량 증가, 가격 보합)의 순서대로 부동산 경기가 10년 정도 주기로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물론 통계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시장의 실제 상황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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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집 순환 모형에 비춰 서울의 상황은 위에 실선으로 표시한 것과 같다고 한다. 벌집 순환 모형의 기본 그래프와 비교했을 때 하반기 부동산 경기는 3국면의 특징을 띄다가 4국면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한다. 3국면은 가격은 큰 변화가 없지만 거래량이 감소하는 것이고 4국면은 거래량도 줄고 가격도 떨어지는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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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부동산 거품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들던 근거 중에 하나가 일본의 버블 붕괴에 앞서 거래가 끊기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개인들도, 기업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앞뒤 재지 않고 돈을 끌어 부동산을 사들였고 이것이 다시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는 현상이 벌어졌다. 한창 가격이 올라갈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좋았지만 롤러코스터가 언제까지나 상승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부동산 가격이 '좀 비싸다'고 하는 수준을 넘어서 무서운 수준까지 폭등해버리자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는 묘한 구석이 있는 듯 하다. 주식의 경우에는 고점에 팔지 못해도 손해만 보지 않으면 비교적 미련을 두지 않는 반면 부동산 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뭐든지 최고점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신문이나 일명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워낙 맞는 경우가 드물어서 참고하긴 어렵지만 2008년 들어 거의 일관되게 나온 소식이 '거래량 감소'였다. 신문사 논조는 조변석개(朝變夕改)해도 올해 상반기에 거래량이 줄었다는 점 만큼은 일관되게 흘러나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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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주식 시장


 1978년 중국이 개방 정책을 표명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해, 심천 등지에서 중국 최초로 주식 거래가 시작되었다.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주식 객장에 몰리는 건 당연했다. (2004년에 본인이 상해에 살고 있을 때도 조용한 아파트 단지 안에까지 주식 객장이 있는 걸 보고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상해에는 한국 부자들 불꽃 싸다구를 후려칠 만큼 부자들이 많아졌지만 당시에 주식 거래로 4천위안(현재 환율로 한국돈 60만원 정도. 환율이 최근 많이 오른 점을 감안하면 당시 한국돈 40만원 정도쯤이 아닐까 추측)을 손해본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사람이 중국에서 최초로 주식 투자 실패로 자살을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주머니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적어넣은 쪽지를 몇 장을 넣고 그 중에서 하나를 뽑았는데 그 쪽지가 '죽음'이라고 적혀있어서 자살을 택했다고 한다. (자살을 선택하는 방법이 비범하다.)

 한국의 주식 투자자들 역시 심리적으로 이리저리 쏠리긴 하지만 확실히 과거보다는 주식 시장을 객관적으로, 더 넓은 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든다. 워렌 버핏 같은 세계적인 투자자들의 투자 철학이 인기를 끌고 '재테크'를 찬미하고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덕분에 고급 정보를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된 덕인 듯 하다. 물론 연초 이후 줄창 바닥을 새로 뚫고 있는 주가지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20% ~ -30% 정도는 선방한 거라고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옛날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본격적으로 주식 시장이 활기를 띄다 보니 작년 말부터 폭락한 증시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사람이 많다고 한다. 광동 지역의 한 총각이 장가 가려고 모아둔 돈으로 주식에 몰빵을 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자살한 사람에 대한 기사를 접한 기억이 난다.

 집값이든 주식이든 줄창 오를 때는 모두가 행복해보였지만 2008년 들어 줄곧 비실비실하니 한국이든 중국이든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투자와 투기라는 미묘한 차이에 대해 말장난을 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고작 1년 정도 사이에 이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것이 경제 발전의 결과인가 하는 냉소적인 질문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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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개발 저기도 개발

 며칠 전 SBS에서 방영한 부동산 거품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도봉구의 집주인들을 인터뷰한 부분이 있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단기간에 몇 십% 상승하는가 하면, 계약한 오피스텔의 주인이 집값 상승 때문에 계약을 파기하는 일이 2번이나 연이어 벌어져서 가만히 앉아서 계약금으로 2400만원을 벌었다는 아주머니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 자리에 모인 아주머니들은 하나같이 아직은 충분치 않다는 이야길 했다. 집값이 올라 표정에는 여유 섞인 웃음이 떠나지 않았지만 너무 올랐지 않냐는 말에는 정색을 하며 '강남 만큼은 올라야지' 하고 대답을 한다. 처음에는 '강남 만큼'이란 말에 피식 실소가 나왔다. 밑도 끝도 없이 '강남 만큼'이라고 말하는 아주머니들의 경제적 무개념이 처음엔 그냥 우스웠지만 그것이 자신의 부동산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심리일 것이다.

 집값이 오를 땐 정부를 욕하고 내려야 되다고 하던 사람이, 집을 산 후에는 집값이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더 올라야 한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흔히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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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든, 투기든, 합리적인 분석의 결과이든 남들 따라하는 묻지마 선택이든 상관없이 결국 선택은 각자가 했고 그 결과도 자기 책임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집값 하락이나 이자율 상승으로 인해 부담이 커진 사람들을 '샘통'이라고 하는 심리를 가진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책임을 지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장려한 은행과 저축은행들, 대출을 상담해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책임을 질까?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개발을 추진해서 서울에서 전체적으로 전세난을 불러일으킨 이명박과 한나라당 국회의원 등 뉴타운 정치인들은 과연 어떤 책임을 질까?

 70년대에 서울에서 최초로 '재개발'이란 것을 시작한 이래 재개발한 면적을 전부 합친 것의 2배에 달하는 면적을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새로 빚을 내도 더 작은 집을 간신히 구해서 이사가야 하는 뉴타운 지구의 세입자들, 하숙생과 자취생들. 그들의 죄가 있다면 이명박을 서울 시장으로 뽑고 신지호, 정몽준 같은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았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투표하지 않은 '선의의 피해자'도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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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가 김근태 전 의원을 밀어내고 뉴타운으로 당선된 뉴라이트 출신 신지호 의원

 하지만 뭐가 뭔지 잘 몰라서, 뉴타운이라고 하니까 뭔가 좋은 것인 줄 알고 사글세방에 살면서 한나라당에 투표한 서민들만 탓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아 보인다.

 IMF 당시 부실 기업들을 나라의 세금으로 살려낼 때 진보주의자들은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를 외쳤다. 부실 경영의 과실은 무능한 경영진들이 따갔지만 부실을 치유하는 엄청난 비용은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했다. 말하자면 돈 벌어서 혼자만 쓰던 가게 주인이 사업을 망쳤는데 동네 주민들이 돈을 모아 가게를 다시 살려준 셈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어째 대기업 총수들을 위한 사법부와 정치인들의 <집행유예 후 사면> 패키지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도 그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부동산 경기로 한 몫 잡아보자고 유권자들을 선동했던 정치인들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범죄의 주모자는 여의도에서 초선의원 뱃지를 달고 거들먹거리고 있는데 단순 가담자들은 자신들을 붙잡은 경찰 탓만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비용을 치르는 사람, 위험을 감당하는 사람과 과실을 거두는 사람이 비슷하게 일치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아직은 멀기만 한 목표다. 하지만 유권자 스스로 판돈은 같이 내고 딴 돈은 쓸어가는 정치인을 구분할 줄 모른다면 이는 영영 불가능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