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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뺨 맞고 여성부에 화풀이하는 군가산점 논쟁 본문

시사매거진9356

군대에서 뺨 맞고 여성부에 화풀이하는 군가산점 논쟁

thezine 2008. 12. 3. 13:58


발단
 공무원시험 응시자에 대한 군가산점이 폐지된 건, 아니 그에 앞서 군가산점 제도가 위헌이라는 위헌제청으로 인해 논란이 제기된 건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쯤의 일이다. 1998년 10월 19일에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 5명, 그리고 장애인 남학생 1명이 6급이하 공무원 임용시험에서 제대군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에 대해 위헌 제청을 했다.(워메.. 마침 내가 입대한 날짜하고 나흘 후다.)

 군대에 가지 않는 여자가, 그것도 마초 성향 남성들이 증오해마지 않는 이대생들이 이런 헌법소원을 청구했으니 다수 예비역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시 개설된 카페도 어딘가 있겠지만 DAUM에는 없는 듯


 이번의 군가산점 부활 움직임은 예전에 폐지된 제도와는 약간 다른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있다가 폐지된 군가산점 제도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제대 군인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었고, 이번에 국방위원회에서 법사위로 넘긴 방안은 '취업 시' 가산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인 것 같다.(구체적이고 정확한 차이점은 뉴스를 찾아보시라.) 아마도 기업체가 '직원 채용 시 군필 가산점을 부여하고 싶으면 원할 경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군가산점 제도는 뜯어보면 요상하고 웃기는 제도이다.


1.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의 의미와 관련해서
 공무원 시험은 합격권 응시생들의 점수가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1-2점 차이가 등락을 좌우한다. 이런 상황에서 3-5%의 점수를 군필자에게 부여하는 것은 본의아니게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사람들의 공무 담임권을 현저하게 침해한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면제 처분을 받은 사람들, 그리고 여성들의 경우 신체적인 이유로 인해 차별을 받게 된다.

2. 공무원 시험을 치르지 않는 사람, 가산점 제도가 없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똑같이 병역을 필했는데 군가산점과 관계없는 일자리를 찾게 되는 사람들은 그럼 뭔가? 낙동강 오리알? 일부 구직자들이 가산점 받으면 나머지 군필자들도 "그래, 너희들이라도 가산점을 받았으니 나의 군생활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라고 할 건가? 군가산점 제도의 취지는 병역을 필하고 국가에 봉사한 사람들을 위한 보상일 것이다. 그런데 왜 누구는 보상을 받고 누구는 못 받는가? 이런 제도가 제대로 된 보상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논리가 성립한다면 '출산 가산점을 주라'는 말도 맞는 말이 된다.(반대로 말하면 '출산가산점'도 말 같지 않은 소리란 말.) 뭐만 했다 하면 다 공무원 가산점 주라고 해야 할까? 이놈 저놈 오만 이유로 응시하지도 않을 공무원 가산점만 주면 되는 걸까.

3. 공무원 업무, 혹은 기업체 구직 시, 군필과 업무와의 상관관계는?
 군대를 갔다왔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들도 있지만 업무와의 상관 관계는 극히 미약하다. 사회생활을 해보면 공익, 면제, 현역(육해공), 병역특례... 여러 경로를 거쳐 현재의 자리까지 온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보지만 상대방의 군필 사실이 회사에 업무적으로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장교로 복무해서 리더십, 관리 능력을 인정해준다... 뭐 이런 거 빼고)


 "그럼 어쩌라고? 군필자들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도록 고생하면서 나라에 봉사했는데 왜 아무런 보상을 안해주는데?" 예비역이라면 당연히 이런 질문은 하게 된다. 우리나라 남자들, 이제까지 오랫동안은 국가가 스스로 정한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고 2년 내외의 시간을 부려먹는 걸 감내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병역 문제 전문가도 아니니 면밀하게 분석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에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의견+내 생각을 보태서 해결방안과 방향을 이야기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개선 방향

의무 복무 제도 개선
 남북 대치 상황이 어쩌고 저쩌고 해설라무네, 푼돈 쥐어주고 노동착취하는 제도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래 그럼 의무 복무제도는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해줄테니 제도의 불완전한 점들을 개선해라."라고 요구하는 것이 순리다. 사회 구조의 문제이므로 구조와 제도를 고쳐나갈 생각을 해야지, 불완전한 제도의 또 다른 피해자에게 화살을 돌려선 안된다.

여성의 사회 복무 제도 도입
 '여자도 군대가라'라는 말이 감정적인 말로 들리는가? 보통 여성의 병역을 거론할 때 이스라엘의 예를 드는데, 미군의 경우에 여성들도 남성과 거의 동일한 조건에서 복무하고 있다. 행정과 의무 같은 일 외에도 보병, 헌병 같은 신체적인 활동을 하는 병과는 물론이고 해병대에도 여성들이 일반 병사로 복무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이 거의 동일한 조건에서 의무 병역을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은 꽤 큰 일이다.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제도적으로 큰 변화가 필요한 일이고 쉬운 일이 아니다.
 

희망사항은 이런 여군과 같이 군생활을? ♡

혹은


이런 여군? 아우 깜찍해




 하지만 병역이 아닌 '사회 복무' 제도라는 개념의 복무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존하는'공익근무요원', '병역특례기업체 근무'같은 제도는 4주의 기본군사훈련을 포함할 뿐 기본적으로 병역이 아닌 사회 복무제도이다. 여기에 덧붙여 양심적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방법으로 거론되는 장애인시설봉사 등 사회봉사도 생각해볼 수 있다. 4주 기본 군사훈련은 여성들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우리나라 여성들의 운동량이 워낙 적어서 초반에 고생을 좀 하겠지만. 해보면 다 한다.) 4주 기초 군사훈련 후에 사회의 공적인 이익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2년 정도 하면서 여성들에게도 동일하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것은 달리 보면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병역세 도입
 병역을 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정 기간 병역세를 부과하고 이 세제를 통해 걷힌 세금은 병역을 이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건비와 복지 비용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나도 최근에 어디에선가 본 주장인데, 제도 취지에 맞게 사용만 된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 하다.

물론 세금 낼 사람들은 짜증나겠지만



 이 제도는 다른 면에서 보면 군복무 조건을 개선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년 동안 가둬놓고 일을 시켰으면 적어도 월급 모아서 중형차 한 대 살 돈은 갖고 제대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월급 받아서 저축을 했을 경우에 말이다.) 군복무자 중에서 극히 일부만 혜택을 볼 수 있는 군가산점 같은 헛짓거리 대신 군복무자가 직접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제도가 훨씬 효율적이고 똑똑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재원은 군대를 가지 않지만 국가 안보의 혜택을 똑같이 받는 소득이 있는 미필자들이 병역세의 형태로 부담하자는 것이다.

모병제 도입
 장비도입 계획처럼 돈 쓰는 일은 20년, 30년씩 내다보고 하면서도 모병제 도입 같은 건 '당장은 어려우니까 앞으로도 못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분위기라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검토할 만 하다. 사회복무 제도를 확충해 현역병사 수요를 줄이고 대신 장비 현대화 같은 실용적인 방향의 국방 개혁과도 맞물린 문제이고, 무엇보다도 장교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육방부에서 싫어할 것이다. (지금도 별 달기 어려운데 병사가 줄어들면 장군 보직 자체가 줄어들 것 아닌가.)

 일 배우고 쓸만하면 제대하는 징병제에 비해 모병제가 가진 장점도 많다. 오죽하면 미국 前국방장관 럼즈펠드가 이라크 전쟁으로 미군이 부족할 때도 징병제는 군인들 질이 떨어진다며 징병제에 반대한다고 했을까.(이 말 했다가 베트남 제대군인들한테 욕 바가지로 먹긴 했지만.)


기타 잡담
 간혹 군가산점으로 후끈 달아오르면 '남자는 군대 가는 대신 여자는 출산하잖아?'라고 하는 일부 불성실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둘을 대칭항으로 놓는 사람들의 뇌구조는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군가산점 제도를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대립으로 이해하는 동문서답이 나은 2차적인 동문서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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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가산점 제도가 다시 거론되긴 했지만 1998년, 2000년 당시만큼 화끈한 이슈로 주목받진 못하고 있다. 어쩌면 위에 길게 나열한 군가산점 제도의 문제점이 그만큼 이미 꽤 많이 알려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대부분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일지도. 그래서 전보단 조용한 걸까? 물론 모든 게 이성적으로 순리대로 귀결되지는 않는 법이니 어떤 결과 나올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