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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유입되는 이민자들의 미래에 대한 상상 본문

시사매거진9356

한국에 유입되는 이민자들의 미래에 대한 상상

thezine 2009. 1. 26. 03:42

(DAUM 기사 원문 링크)

 안산 외국인 거리에 외국인이 많이 줄어 그곳 상인들도 힘들어졌다는 내용이다. 한국도 경기가 안 좋아지고 환율까지 내려가니 한국에서 번 돈을 본국으로 송금하며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떠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10년 동안 아주 급속하게 국제화가 된 것 같다. 아주 어릴 땐 백인이 지나가면 '저기 미국 사람 지나간다'고 하는 경우가 흔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수기나 인터뷰에도 '한국에선 왜 백인은 모두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하소연 아닌 하소연도 읽어본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공장과 식당에 가면 외국인 노동자를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한국만 유난히 국제화가 진행됐다기보다도 세계적인 추세 탓이 큰 것 같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미디어에서 '한민족'같은 민족적 색채가 강한 표현은 자제하고 있고 '살색'과 같은 비과학적인 표현도 국어사전에서 사라지긴 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민족적 의식이 강하다. 우연찮게 역사적으로도 생김새가 비슷한 이민족들하고만 교류를 해왔기 때문에(혹은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인종적인 차이점은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다.

 피부가 유독 까무잡잡하거나, 머리카락에 갈색빛이 돌거나, 생김새가 선이 굵고 피부가 진한 남방계(혹은 폴리네시안?)처럼 전형적인 한국인의 인종적 특징에서 살짝 벗어나는 사람도 흔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개성적인 특징 정도로만 여겼다.

살색으로 검색하니 이런 사진들이...




 하지만 최근 10년 정도 사이에 급속도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백인, 흑인 등 서구 선진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와는 달리 하층민의 낙인이 단단히 찍혔다. 한국인들이 가장 꺼리는 저임금 분야에서 한국인이 받는 저임금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아니 이민과 함께 역사가 시작된 미국의 경우를 일반적인 경우로 볼 수는 없겠지만 미국에서 다양한 국가 출신이 다양한 인종이 사회적으로 중산층에 편입된 것과 비교가 된다. 과연 한국에서 동남아 출신 이민자들이 일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을 받고 중산층의 위치에 오르는 날이 올 것인가. 오늘 본 신문기사를 보며 문득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

 

모델 이기용도 화교. 야하지 않은 사진 찾느라 오래 걸림;;


 중국계 외국인들의 경우 기존의 화교가 있을 뿐더러 생김새가 (심지어 이름도) 한국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 일제시대 이후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일본에 정착한 재일교포들이 비록 지금까지 사회적인 차별을 받고 있을 지언정 본인 의지에 따라 귀화, 축재 등을 통해 기득권층에 편입한 사례를 보면 한국에 사는 중국인, 조선족(재중동포)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정말 궁금해지는 건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의 경우다. 그들이 과연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우선 본인의 의지다. 외국인 노동자들 상당수는 그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본인이 원한다 해도 한국 사회에 진입하기 어려운 데다가 당초 입국의 목적이 '이민'이 아니라 '취업'이었다면 정착 의지는 작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결정적인 것은 한국인의 인종 의식이 아닐까. 한국인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사람이라면 경제적 여건이 더 나은 한국에 자리를 잡고 싶을 수 있지만, 혼혈로 자라며 온갖 차별을 당하는 자녀들 걱정에 어쩔 수 없이 귀국을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튀기'라고 왕따를 당했지만 어머니의 고향 필리핀에 가서는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한 여자아이의 경우처럼 극적인 전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혼혈아들도 평범하게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군부대에서 다양한 인종과 함께 생활하고 나름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실생활에서 '못 사는 나라 출신'들과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생각을 고치는 일도 어렵지만 정서를 바꾸는 것은 더 어렵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 그런데 아래 그림과 같은 이민혐오의 감정도 공존한다.



 10년 정도 전쯤, 우리나라에 외국인이 지금처럼 많아지기 전에는 한국사람이 겪어본 외국인은 미국인과 일본인 뿐이었고, 반대로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해외교포 역시 재미교포와 재일교포가 대부분이었다. 6, 70년대 힘들던 시절에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포는 미국과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한국에 돈을 보내주기도 하고 어쩌다 한국에 올 때는 선진국의 귀한 물건을 선물로 들고 오기도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민 1, 2세대들이 언어, 문화적 장벽(외국에서, 혹은 외국인 틈에서 살아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큰 장벽인지 나 역시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 인종차별까지 더해져 아주 힘든 시절을 보냈을 거란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이젠 미국, 일본의 한인 이민자들은 상당수 성공적으로 정착을 했고 한국의 경제도 많이 성장해서 세계 여러 나라로 이주하는 한국인들 역시 전보다는 이민 1세대로서 겪는 고초가 많이 줄었다.

 이제까지 한인 이민자들의 역사를 곱씹어보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10년으로는 물론 부족할테고, 앞으로 다시 10년, 20년이 흐른 뒤에 한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어떤 존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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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잘 정착하는 게 뭐가 좋은 거냐, 그 사람들 범죄 저질러도 처벌도 잘 안된다 하며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위에 인용한 기사에 달린 리플들도 외국인혐오주의적인 것들이 다수다.

 하지만 일부 사례를 통해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수는 있겠지만 어느 나라에서든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분명하다. 한국 사람도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월급을 떼이고 사기를 당하는 일이 생긴다. 운 좋게 험한 일을 겪지 않는다 해도 타향에서 타인들의 틈에서 먹고 사는 일은 참 힘든 일이다. 심지어 놀고 먹어도 타향살이는 힘든 법이다.

 하물며 말도 온전히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의 삶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외국에 나오면 개인의 능력치에 출신국가가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인지에 따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빠진다. 조금이라도 더 잘사는 나라 출신이면 조금이라도 정신적 여유가 생기는 법이고 대사관도 허름하고 변변치 않은 가난한 나라 출신은 더더욱 외로와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주류 중의 비주류인 외국인 노동자들이 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그 사회가 얼마나 공정하고 자유로운가 하는 척도가 된다. 집안 빵빵한 한국인이 한국에서 판검사가 되는 건 신기할 게 없는 일이지만 파키스탄 노동자의 자녀가 한국의 국회의원이 되는 건 신기한 일이 될 것이다.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것도 특별한 일이었지만 그의 부모가 법조계나 금융계에 종사하는 미국의 주류 흑인이었다면 그 놀라움은 더 적었을지 모른다.(오바마는 케냐에서 미국으로 유학온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편모 슬하, 특히 백인 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때론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언론의 (미국 언론도 아니고 한국 언론들이) 과한 반응을 보인다 싶을 때도 있지만 오바마의 출신을 생각해보면 분명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한국 사회 역시 (지금까지의 민족주의적 정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로서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사회적 비주류 역시 노력에 따라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 되는 것, 그것이 10년, 20년 후의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이유다.



개천에서 용... 이런 용을 말하는 건 아니구



 '개천에서 용나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과연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서는 진보인지 보수인지, 그리고 여러 가지 관점에 따라 방법론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개천에서 용나야 한다는 주장에는 대체로 모두 동의할 것 같다.

 흔히 말하길 양극화가 심화되고 신림동 고시원 생활 역시 외제차를 타고 아파트에 살며 꾸준히 체력관리를 하며 공부하는 사람이 판검사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위와 같은 경우는 극단적인 예일 뿐이지만 실제로도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건 사실인 것 같다.

 한국사회에 인종적인 구분이 없었던 시절에 (70년대에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나 그에 대한 혐오증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개천'은 '가난'이었다면 농촌에만 가도 국제결혼 가정이 흔해진 요즘이라면 2009년의 '개천'에는 '가난' 외에도 '인종'이라는 새로운 실개천이 함께 흐르고 있다. 2019년, 2029년의 한국 개천에서 용이 나는지 어떤지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려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