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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9356

IT혁명이 가져온 빈부격차

thezine 2009. 4. 12. 23:55
 예전에 이 대통령이 IT산업과 정보화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길 한 적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의 (수 없이 많은) 실언 한 마디에 빗대 제목을 지었을 뿐, 실제로 IT가 빈부격차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IT 기술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양극화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시력교정 수술을 하신 할머니가 "그동안 집을 이렇게 지저분하게 하고 살았나 싶더라." 하시던 생각이 난다. 방구석에 쌓인 먼지는 치우면 그만이지만, 극단적인 빈부격차에 한 번 눈을 뜨고 나면 현실을 인정하던가 불만 가득한 삶을 살던가 둘 중에 하나가 되기 쉽다.



하와이 와이키키 인근의 거리


 하와이에 갔을 때 한 번은 카메라만 덜렁 메고 길을 나선 적이 있다. 거리가 좀 먼 곳이라도 일단 걷는 데까지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길을 나설 때의 묘한 느낌이 되살아나서 좋았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하는 고스톱이 편리하지만 직접 화투장을 들고 칠 때의 손맛이 없는 것처럼(?) 차를 타고 지나치는 풍경은 발맛(?)이 없다.

 하와이에서 내가 묵었던 호텔은 와이키키 해변의 거의 끝자락에 있었는데, 해변 끝에는 동물원과 공원이 이어지고 그 뒤로 주택가가 이어졌다. 그리고 위에 사진에서 나오는 것처럼 넓은 잔디밭이 군데군데 펼쳐져있고, 단층이나 높아봐야 2층인 주택들이 나온다. 주변으로는 운동 중인 사람들이 길을 걷거나 뛰고 있고 거리는 쾌적하기 그지없다. 그 넓고 상쾌한 공원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똑같이 한 번 살고 마는 인생인데 이 사람들 팔자는 뭐 이리 좋으냐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테헤란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위와 같은 빌딩숲 사이에서 일하다가 분당, 관악구, 인천/부평, 수원, 과천, 잠실... 주거지역으로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침이면 테헤란로 주변 및 강남구 일대의 사무실 지역으로 출근하는 무수한 인파들을 보라. 반면 어떤 지역에는 아파트와 상가만 가득하다.) 와이키키 옆의 공원과 주거지역을 산책하다보니 문득 나의 일상이 너무 팍팍하게 느껴진다.


인도 뭄바이의 빨래터


 물론 빌딩숲에서 일하는 월급쟁이 신세 한탄은 반쯤은 과장이 섞여있다. 인도 뭄바이의 빨래터를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이곳에서는 하루 $1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빨래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곳에 갔다가 흐르는 구정물에서 빵을 건져내서 물기를 쭈욱 짜서 먹는 사람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이어'에서도 나오지만, 인도에는 중국보다도 심각한 절대빈곤이 비참하게 만연해있다. (인도에 비하면 중국은 선진국이다.)

햄버거 먹기 대회


 주말에 케이블tv에서 우연히 먹기대회 경기(?) 모습을 봤다. 참 아이러니했던 건 햄버거 먹기 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빨리 먹으려고 햄버거를 물에 적혀 쭉 짜서 먹던 모습이었다. 구정물에 흘러가는 빵을 주워 물기를 짜서 먹던 인도 빈민과 햄버거먹기 대회에서 경기(?)를 위해 햄버거를 물에 적시던 모습은 참 지독한 대비를 이룬다. 부유한 나라에는 그 나름의 삶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두 장면을 함께 놓고 보기엔 마음이 개운치 않다. (먹기대회 종목에는 마요네즈, 소불알구이, 소뇌구이 같은 엽기적인 메뉴도 있더군.)

인기리에 막을 내린 꽃보다 막장


 혈연의 비밀과 불륜, 복수의 비빔밥이라는 공식을 벗어나 막장드라마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 드라마에서 등장인물들은 리조트나 놀이공원을 전세내는가 하면 헬리콥터로 등교를 하기도 하고, 고등학생 주제에 한국에 몇 대 없다는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모습도 보여준다. 물론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한 '드라마적 허용' 정도로 봐야겠지만 꼭 이 드라마가 아니어도 이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는 범인(凡人)들이 상상도 못할 부와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제목을 잘 몰라서 관련 사진은 첨부하지 못했는데, 케이블 채널 중에는 '부자들의 삶'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컨셉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의 생활이니 당연히 신기하고 환상적을 보일 수밖에 없다. 명품제품이나 보석을 매장에 직접 가지 않고 자신이 머무는 호텔에서 가져오게 해서 구경하고 구매한다던가 거대한 요트(작은 유람선이라고 해도 될 만한)를 소유한 부자들의 모습. 옛날에는 극히 한정된 소수의 사람만이 알 뿐이었던 이와 같은 정보들을 이제는 케이블 채널만 돌리면 쉽게 접할 수 있다.

 

미드 '가십 걸'

사람들은 부유층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과 미국 뉴욕시의 부유층 고교생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를 통해 부자들의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됐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보면, 그들에겐 지금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겠지만 지금 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양극화 인식은 오히려 적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옆집 부엌에 먹을 게 좀 더 있거나 소가 한 마리 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봐야 대부분 고만고만한 살을 살지 않았을까. 물론 그중에는 대지주도 있었을 것이고 99칸 기와집에 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일상적인 인지의 범위 안에서는 생활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당장 보릿고개를 넘길 식량이 절실할 망정 상대적인 박탈감은 덜했을 수도 있다.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이야기가 존재하는 걸 보면 꼭 그렇기만 했던 건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물론 내가 어릴 때 본 건 한글판이다


 어릴 때 구독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오래 전에 소개한 시각장애인의 개안 수술 수기를 보면 주인공이 시력을 회복한 이후의 느낌에 대해 나온다. 주인공은 맹인안내견과 함께 생활했던 비교적 젊은 아가씨였는데, 시력을 되찾고 나니 자신의 얼굴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았더라는 말을 했다. 물론 시력을 되찾은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눈으로 보는 것이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다.

 현대인은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져서 선택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이기 바쁘다. 채널이 백개도 넘는 케이블TV, 블로그, 인터넷 게시판, 뉴스를 통해 예전이라면 알지 못했을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물론, 제대로 된 정보를 구분해내기도 그만큼 힘들어졌다.) 부자들의 삶을 알게 된 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괜히 알아서 '병'만 더한 것일까.



영화'아일랜드'에 등장한 호화요트


 사실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은 비교적 숫자가 많은 '형편이 넉넉한 편인' 사람들 정도도 아니고 극소수에 불과한 극부층들이다. 사람들은 매체들로부터 늘 배고프도록, 늘 무언가를 갈구하도록, 채울 수 없는 탐욕을 늘 유지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심지어 새로운 욕구를 창출해내기 위해 전문적으로 교육받고 일을 하는 영역을 우리는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참 신기한 것은 구정물에 빠진 빵을 건져먹는 사람의 이미지는 아무리 충격적이라 할지라도 '호기심' 수준의 관심, 혹은 잘해봐야 약간의 기부를 이끌어내는 정도의 힘밖에 없지만, 달디 단 부의 열매를 엿본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부여 측면에서만 본다면 역시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인 것 같다.

 어쨌거나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나아지건 상관없이 우리는 또 무언가를 가져야 하나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사는 삶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이 과거에 가장 갖고 싶어했던 세간살이가 자전거와 시계, 재봉틀이었는데 나중에는 TV, 냉장고, 세탁기로 바뀌고 이제는 자동차가 추가된다는 말이 있다.

 갖고 싶었던 걸 가지고 만족감을 가질 때쯤 매체는 다시 성공적으로 우리에게 '넌 아직 XXX를 가지지 못했어. XXX없이 너의 삶은 완성되지 못한 퍼즐조각 같을 뿐이야'라고 세뇌시킬 것이다. 특히 이런 창출된 욕망은 '대학 친구'나 '옆집 민지 엄마'가 그것을 이미 가지고 있을 때 최대화된다. -_-

 세월이 변할수록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하는데(수능 전에 꼭 알아야 수학공식 몇 가지, 20대에 꼭 할 일 몇 가지, 꼭 가볼 곳 50곳 등등, 참 인생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 모든 것들에 앞서 상대적인 빈곤감에 익숙해지는 법도 배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