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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9356

국제정치의 블랙코미디, 북한과 버마(미얀마)

thezine 2009. 4. 14. 13:03
 북한의 영어 국호는 DPRK이다.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면 왠지 더 친숙하게 들린다. 뉴스에서 가끔 접하는 흰 저고리를 입은 선동적인 말투의 평양방송(?)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UN 안보리의 북한 비난 성명 관련 BBC 기사


 북한은 국력이나 경제력에 비해 국제뉴스에서 상당히 비중이 높게 다뤄지곤 한다. 우리나라야 물론 북한 소식에 민감한 것이 당연하지만 일단 북한이 뉴스에 등장했다 하면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언론들도 상당히 중요하게 보도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한이 외교 전술의 대가라는 이야길 하기도 한다.

캐리커쳐 그리기 쉬운 외모의 소유자


 사람들이 종종 배가 나오고 보글보글한 헤어스타일의 김정일을 희화화시키곤 했지만 특유의 '벼랑끝 전술(배째라, 건드리면 같이 죽자)'과 '살라미 전술(샌드위치를 빵 값 따로 받고 살라미 값은 따로 받는 식으로, 패캐지로 팔지 않고 하나씩 떼어 파는 용팔이식 상술이랄까)'같은 개념을 널리 알린 것도 나름 대단한 능력.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희한한 상황과는 별개로 김정일, 혹은 북한의 외교 전략은 비교적 평가를 받았다. 말하자면 "성가시고 성질 더러운 놈이 잔머리는 잘 굴리네 젠장"이라는 상황. 물론 이젠 북한의 전략이 너무 잘 알려져서 잘 먹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에 북한이 동해, 일본을 거쳐 공해상에 떨어진 발사체를 발사하는 과정에서도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손꼽히는 국가들을 포함, 특히 일본은 엄청난 오도방정을 떨며 발사 과정을 보도한 바 있다. 군사비는 남한의 1/4이 되지 않고 국민총소득은 남한의 1/36밖에 되지 않는 나라 치고는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이 상당하다. 위에도 말했지만 나름 대단한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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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외교무대에서 어떤 전술로 인정을 받건 간에 상관없이 북한 그 자체는 재미있는(?) 나라다. 김일성은 그렇다 치고, 김정일이 권력을 물려받은 것만 해도 '왕조'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런데 김정일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고나더니 이젠 북한의 다음 권력자는 누가 될 것인가, 몇 째 아들이냐, 아니면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권력자가 될 것이냐 하는 추측이 나온다.(TIME 아시아판 지난주 기사에 나온 내용) 어쨌거나 'Family Business' 방식이 이어질 거란 점에는 이론이 별로 없다는 뜻.

 게다가 김정일이 프랑스 와인과 스포츠카, 영화를 좋아한다는 취미가 알려진 것도 북한의 엽기적인 이미지에 한몫을 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독재자로서 부수적인 일면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부분이지만 국민 다수가 굶주리는 상황이 겹치면서 악인의 이미지를 확실히 해주었다. 그리고 일본이나 한국에서 납치된 사람들이 북한에서 초밥요리사로 일하거나 영화를 만들었던 일은 마치 코미디 범죄영화의 한 장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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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동남아에 버마라는 나라가 있다. 많은 후진국이 그렇듯, 버마도 군부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다.(시사영어 한 토막, 군사정권은 영어로 junta, 훈터, 전터 등으로 읽음) 민주주의적 정부를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군대가 국민을 감시하고 권력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지, 아니면 외부의 잠재적인 적대세력으로부터 국민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지도 한 가지 기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외래어사용기준에 따라, UN의 경우 회원국의 의사에 따른다는 기준에 따라 버마를 미얀마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현재 버마를 지배하고 있는 군사정권이 제정한 미얀마라는 국호와 국기를 버마의 민주화 인사들이 거부하고 있고 그대로 '버마'라고 부르는 나라와 매체가 많다.


버마 군사정권의 두목인 '탄 슈웨'장군 딸의 호화 결혼식의 동영상이 BBC에 올라왔다. 위 사진은 캡쳐한 사진이므로 클릭해봐야 소용 없음. ^^


 버마는 1인당 GDP가 $1500 정도인 가난한 나라이지만 석유, 천연가스, 광물 자원 등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군사정권에 자원이 풍부하다니, 이 두 가지만 들어도 비극의 구린내가 솔솔 풍겨온다.

 버마의 군사정권을 이끌고 있는 '탄 슈웨'장군은 국민의 대부분이 빈곤 속에 사는 중에도 딸의 결혼식을 아주 호화스럽게 치렀고, 이 장면은 나중에 인터넷에 공개되어 버마 내외의 비난을 받았다.(위 사진은 그와 관련해 BBC 웹사이트에 올라온 해당 동영상)

 버마 정권의 강압적 통치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이 버마의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 개발과 투자를 금지하는 등 서방 세계가 버마의 군사정권을 제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그다지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버마와 국경을 일부 접하고 있는 중국이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버마의 천연자원을 중국까지 나르기 위해 장거리 송유관을 건설하는 등 경제협력을 강화했고 더 나아가서 버마의 군사정권을 비난하는 서방 국가들을 내정간섭이라며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시 버마의 군사정권에 협력한 중국을 비난할 수 있는 처지는 못된다. 한국가스공사와 대우인터내셔널이 함께 버마의 천연가스에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국익'을 내세워 반윤리적인 정권에 협조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 우리나라 사람들도 고민해봐야 한다. 반대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에 협조한 외국 기업이 있다면 우리는 '돈 벌려면 뭔 짓을 못해.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지도 함께 말이다.

버마 군사정권에 협력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와 대우인터내셔널



 중국과 인도의 국영기업체와 한국가스공사, 대우인터내셔널 등이 자원을 얻기 위해 투자한 돈과 거기에서 발생한 수익은 버마의 군사정권이 자국민을 탄압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그리고 나의 방을 따뜻하게 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가스를 사용하고 납부한 요금이 이런 식으로 본의아니게, 간접적으로나마 군사정권을 유지하는 데 쓰이는 것도 슬픈 일이다.


새 수도 Pyinmana 지도와 공사현장


 국민을 핍박하고 땅 속에 파묻힌 자원 파내서 그거 판 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것은 비극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원부국 독재정권'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버마 정권에 대해 단순히 '나쁜 놈'이 아니라 북한처럼 '이상한 나쁜놈' 이미지를 갖게 된 건 위 사진에 나온 수도 이전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이 너무 휴전선에 가깝고 수도권이 과밀화되어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수도 이전을 고려해왔지만 버마의 경우 전혀 타당한 이유가 없다. 버마 정권은 공식적으로는 군사적인 전략상 국가의 중심부로 이전했다고 밝혔다.

 외국의 전문가들은 확실한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외국으로부터 정권을 위협 받을까봐 걱정이 되거나(이라크처럼?) 아니면 소수민족에 대한 지배를 확고하게 하려고, 심지어는 점쟁이가 권유해서라는 것 등 다양한 추측을 하고 있다.나 개인적으로는 수도 이전을 보면서 군사정권에 대해 총칼을 손에 쥔 돌아이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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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권력을 3대가 세습하려고 하는 상황과 버마 군사 정권의 행각에서 비슷한 점(어이가 없어서 코믹하기까지 한 상황)을 떠올렸는데 막상 생각해보면 이 두 정권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써놓고 보니 '중요한' 차이점이라기보단 '나에게 흥미롭게 보이는' 차이점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둘 다 도덕적 비난을 받는 정권이지만 버마의 군사정권은 가끔 해외뉴스에 등장할 뿐 별로 존재감이 없는 반면, 북한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핵실험, 로켓 발사 같은 대형 이벤트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지구상의 손꼽히는 열강들을 바싹 긴장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지하자원이 풍부했다면(나름 광물 자원이 꽤 있긴 하지만), 혹은 강대국들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동남아 구석탱이나 아프리카 내륙지방의 국가였다면 오늘날 북한 정권은 어떻게 행동할까? 북한의 행동이나, 한국 주변 동북아의 정세는 어땠을까?

 어쩌면 북한은 버마 정권처럼 외부 세력과의 충돌 없이 자기들끼리 조용히 권력을 누리며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북한이라는 존재를 빌미로 국내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어려웠을 것이기에 박정희, 전두환 같은 독재정권이 통치하기에 조금 더 골치아팠을지도 모르겠다. 보수를 사칭하는 한국의 극우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지식인과 진보주의자들을 숙청하기 위해 '좌빨'이나 '빨갱이'가 아닌 다른 호칭을 생각해내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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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비교적 친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북한과 버마를 거론했을 뿐, 따지고 보면 동남아, 아프리카에는 독재정치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Sudan과 같은 나라들이 있고, 이런 나라에서는 북한과 버마 못지 않게 어이없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정치선진국이라는 북/서유럽이나 북미 지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 여러 가지 non-sense한 일들이 벌어진다. (예를 들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진보주의를 이룬 듯해 보이는 북유럽에도 극우 정당이 일정하게 득표를 한다던가. 물론 독재국과와 비교하자면 새발에 피 수준이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말이 길어졌는데, 이 글의 키워드는 '블랙코미디'다. 인간의 이성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 허탈해서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 있다. 북한 방송에서 국영방송에서 나오는 표현이라곤 믿기 어려운 막말이 쏟아지고 국가권력을 3대가 세습을 하는가 하면 김일성의 생일이 국가 최고의 명절로 기념되는 상황이 블랙코미디이고, 그런 방송에 발끈해서 PSI로 맞짱 뜨자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자칭 '보수'라는 사실이 블랙코미디이다. (취향은 다르지만 참으로 그 수준은 비슷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이 이런 말 하니까 너무 웃기고 슬프지 않나? 이것이 바로 블랙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