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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9356

정치시험 답안지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thezine 2009. 5. 26. 21:54



토익 시험 듣기평가 Part #1에 나올 법한 사진


 TOEIC시험에서 듣기평가를 칠 때면 가장 먼저 접하는 부분이 듣기평가의 Part #1이다. 문제지에 흑백으로 인쇄된 그림들을 보고 그 그림들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을 고르는 방식이다. 위의 사진이라면 '도로에 자동차가 있다' '오토바이가 아주 빨리 달리고 있다' '행인이 길을 건너고 있다' '거리에 행인들이 가득하다' 같은 보기들이 나오면 그 중에 사진에 나온 풍경과 가장 근접한 2번째 보기를 고르면 되는 식이다.

 이 문제를 풀기에 앞서 풀이방식을 미리 설명해줄 때 하는 말이 '사진을 가장 잘 묘사하는 보기를 고르라(which best describes the picture)'는 말이다. 언듯 들으면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정답으로 골라야 하는 보기 내용도 약간은 의구심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테이블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진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농담을 하는지, 회의를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테이블을 옮기고 있다'는 보기보다는 '회의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 상대적으로 더 정확할 것이고 그 보기를 답으로 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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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면에서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토익 시험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답이 아닌, 그림에 가장 근접한 표현을 골라야 하는 것처럼 유권자들은 한정된 선택지(그래도 제대로 된 후보는 보통 기호1번부터 기호5번 안쪽이다.)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투영하는 후보를 골라야 한다. 세상에 어떤 정치인과 어떤 유권자도 모든 면에서 견해가 같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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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월드컵 열기 덕분에 어부지리로 인기가 올라간 정몽준氏의 등장과 단일화, 단일화 철회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던 많은 유권자들이 유행어처럼 입에 담았던 표현이 '비지', '비판적 지지'의 줄임말이다. 당시 민노당이 상승세를 타면서 한국 정치판에도 진정한 진보 정당이 등장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던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은 '아마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것 같다. 내 표는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노무현 후보 당선이 위태해보이자 아쉬움을 안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며 진보정당 대신 중도보수적 성향의 노무현 후보를 선택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보주의자들 입장에서 극우정당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 위험을 무릅쓰기는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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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탄생했던 만큼, 때론 극우 및 보수 세력들로부터, 때론 진보세력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했던 참여정부. 요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에 대해 "이 사람들이 모두 집권 당시 이런 마음으로 정책을 뒷받침했더라면' 하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정치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건 아마 정치를 택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숙명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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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FTA 추진, 이 2가지 사안은 전 정부가 기존 지지세력과 진보세력들로부터 가장 큰 반대를 받았던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반면 의문사, 간첩조작사건 같은 박朴, 전全 독재정권의 극악한 범죄들을 재조명하고, 정치적 반대세력 제거에 유용하게 쓰였던 국보법을 폐지, 사학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사학법 제정과 같은 노력들은 한국 정치사에 찾아볼 수 없는, 진보적 가치의 빛나는 발현이었다. 비록 현 정권 들어 과거사 위원회가 유명무실화되고 다른 것들은 당시에 실패했지만 말이다.

 (사족을 덧붙이면, 사학 비리 세력을 보호하겠다고 시청 앞에서 촛불시위하던 한나라당의 주장이 결국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아직도 어이가 없는 슬픈 장면이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전히 그때 내가 생각했던 정답에 가장 가까운 정치를 목표로 했던 사람이다. 다시 2002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다른 가능한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견해와 100% 일치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가치와 가장 비슷한 비전을 제시한 후보였기 때문이다.

 (비록 때론 현실적인 이유로 궤도를 이탈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중시했던 가치였던 민주주의, 정의, 진보를 추구했던 진정성을 믿었다. 이번 서거逝去가 슬펐던 이유 중에 하나는 당신이 정치적 부관참시를 당한 끝에 내린 이 선택이, 한 편으론 대한민국의 진보와 정의,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순간이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이 세가지 가치들을 추구했던 사람에게 그는 가장 믿을 만한 장수였는데 그 장수마저 결국은 장렬히 전사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만큼이 한계일까?'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었다.


 

어느 길거리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임시분향소


 그 외에도 개인적인 인연 때문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익숙했던 존재가 사라진 충격 때문인지, 서거逝去 이후 며칠이 지난 오늘에야 모 사거리에 세워진 임시 분향소에서야 울컥하는 슬픔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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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탑을 열 척을 쌓으려다 다섯 척이라도 쌓는다면 나는 그 사람을 응원할 것이고 탑을 무너트리는 사람이 방해한다면 두세 척이라도 탑을 쌓은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낼 것이다. 누군가 내게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너무 좋아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싫어한다는 말을 하기에 이런 대답을 한 적이 있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 독립투사와 잘 나가는 이완용을 놓고 선택을 한다면 아쉬운 부분이 일부 있더라도 독립운동가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것과 비슷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독립운동가의 능력이 미치지 못했던 것은, 실은 개인의 역량이 아닌, 그를 돕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수의 기세가 아무리 높아도 함께 나아갈 병사들이 없다면 승리를 거둘 수 없는 법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진보, 민주주의적 가치가 상당한 수준을 이루는 날이 올 그 날에는 누군가가 그동안의 성과를 빛내며 탑 위에서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볼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가질 수 있는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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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이 어제까지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군사정권과 야합하여 합당을 추진할 때 이를 반대했던 사람,

가치에 충실했던 정치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