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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발언 논란에 대한 간단한 참고 지식

thezine 2009. 6. 15. 01:08


DJ '독재' 발언 관련 기사들


 6.15 남북공동성명(북한에서는 아마도 '북남공동성명'이라고 하겠지.) 9주년 강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독재'라는 단어를 썼다고 해서 여러 정치 주체들이 이런 저런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전여옥 의원도 아니고 전여옥 의원 팬클럽(?) 회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했다는 말까지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다. (언론에서 이런 사람 언행까지 다루어줘야 하는 건지는 의문이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확히 어떤 발언을 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국민은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전복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자'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현 정권을 독재와 연결지어 말한 것이 콕 집어서 말한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나보다.
 
 '독재' 발언, 정확히는 '독재라는 표현이 쓰인 발언'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회창이 '독재 말할 자격 없다'고 한 것은 한나라당에 차떼기당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별명을 안겨준 자신의 대선 레이스에 대한 과거 수사 때문인 것 같다.

 조갑제 특유의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북한편'이라는 식의 논리나, 의식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YS 특유의 발언 모두 각각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YS에게 DJ 발언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고 묻는 기자들이 너무 짖궂은 것 아닌가 싶다. YS에게 치매 노인의 이미지를 덧칠해서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과거 전두환 5공 정권에 부역했었고 지금은 국무총리인 한승수 총리가 '대한민국은 민주 정부'라고 한 발언 역시 피식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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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이래 저래 '독재' 라는 단어 하나가 가지는 폭발력이 그만큼 크구나 싶었다. 하지만 독재, 독재 하는 말을 누구나 하고 있지만(이렇게 말하니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완전히 다른 느낌의 표현들이긴 하지만.^^;) 정확한 개념은 뭘까 궁금해졌다.

 독재의 한자를 찾기에 앞서 우선 영어로는 dictatorship이라고 하던 게 생각이 났다. 단어의 원형으로 보이는 dictate는 받아쓰게 하다, 명령하다, 지시하다라는 뜻이다. 이것만으론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한자를 찾아보니 독재獨裁의 '재'자는 '(옷을) 재단하다', '재판하다'에 쓰이는 것과 같은 '재'자이다. 영어 단어와 한자어의 뜻은 약간 차이가 있었다.

 조금 더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있을까 싶어서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은 뜻이다.


DAUM 국어사전 '독재' 검색 결과

 '독재'의 뜻이 이런 거라고 한다.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이라고 한다. 그동안 '독재'라는 것이 총칼을 앞세워 정권을 잡거나 유지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우린 그런 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라면 위에 나온 '독재'의 사전적 정의를 권해주고 싶다.

 자신들의 통치행위가 얼마나 악해졌는지와는 관계없이 막연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사전에 나오는 '독재'의 정의인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독단으로 처리한다'는 말에 비추어볼 때 지금 정권이 이 말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보시라. 입법부를 장악했고 사법부 역시 묵시적으로 장악한 것과 다름없는 현 정권에 대해 '독재'라는 표현이 생각처럼 그렇게 거리감 있는 표현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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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는 보혁 갈등이 없었냐 싶지만 아무튼 언론에서는 요즘 보혁갈등이 심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종종 보혁갈등의 양단에 선 사람들이 쓰는 표현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있는 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반핵반김연대(?)'인가 하는 단체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는 분명히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진보'와 '보수',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같은 사회과학의 기본 용어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의 불법승계에 면죄부를 던져준 신영철 대법관을 포함한 대법관들과 경제개혁연대가 말하는 '경제에 끼치는 영향'도 근본적으로 보는 시각이 다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정신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대법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승계과정이 불법임이 꽤나 명확했지만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은 무죄를 선고받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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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보혁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서있기 마련이다. 관심이 많은 사람, 관심이 없는 사람, 보수적인 사람, 진보적인 사람, 객관적 판단을 위해 견해를 수정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에 대한 어떤 지적도 단호히 배격하는 사람.... 다양하고 상이한 생각의 틀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느 편이 '독재'를 포함한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기본 개념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 역시 개개인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흔히 '개념이 있다, 없다'는 말로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묘사하는데, 이렇게 '개념'의 유무로 표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다.

 초록색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신호등이 초록색인지 빨간색인지를 구분할 수는 없다. 신호등 색깔을 구분하기에 앞서 그 사람은 먼저 초록색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격한 표현을 쓰자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뭐가 X이고 뭐가 된장인지 모르는 사람이 X을 된장이라고 우기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된장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너무 피곤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어떤 이들의 개념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어쩌면 해외약탈문화재를 되찾아오는 것만큼이나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과실을 악용하는 현실을 되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문화재 반환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본받아 우리도 '그 누군가'의 개념을 반환받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