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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캐피털리즘 - 패키지 여행의 쇼핑 본문

시사매거진9356

용산 캐피털리즘 - 패키지 여행의 쇼핑

thezine 2010. 7. 17. 00:51

 오래 전, 용산 상가의 이미지를 떨어트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뉴스의 한 장면이다. 그 당시 기자가 일부러 매장 점원을 도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당시 용산 상가, 특히 구용산역에 연결된 터미널 상가의 경우 당시 뉴스에 나온 것 같은 험악한 장면도 실제로 벌어지곤 했다. 가격이나 제품 이야기를 10분, 20분 이상 해놓고 물건을 사지 않으면 점원이 욕 비슷한 말을 하고 옆집 점원까지 합세하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물정을 모르고 용산에 갔다가 바가지를 쓰거나 험한 꼴을 당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용산 던전(지하 감옥)'이라는 별명도 생겼었다.

 용산 이야기부터 꺼냈는데, 원래는 이번에 처음으로 패키지 여행이란 걸 다녀오면서 우리나라 패키지 여행의 이상한 경제 구조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키지 여행의 왜곡된 가격구조가 과거 '용산 던전' 시절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이상한 방식의 경제논리로 움직이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용산식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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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여행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경우엔 현지인을 위한 한나절에서 3-4일짜리 다양한 지역 여행 패키지들이 보편적이고 나도 그런 식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본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보라카이에 다녀왔다. 이번엔 처음으로 우리나라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을 해봤다. 단체 비자, 단체 티켓, 단체 이동, 버스 이동... 모두 이번이 처음. 우리나라식(?) 패키지 여행은 그동안 짧게 짧게 들었던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필리핀에서 먹은 첫 끼니 비빔밥


 주로 출장을 다니는 곳이 홍콩, 대만이고, 요즘은 한국 날씨도 동남아시아 비슷한 느낌이 들 정도라 필리핀 날씨가 어색하진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필리핀은 필리핀. 올 여름 들어서 흘린 땀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온 것 같다.

 그리고 패키지 여행이라서 그런지 식사는 한국식이 대부분. 특히 보라카이란 곳이 한국인 관광객 비중이 높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 간판도 여기저기 한글이 눈에 띄고 한국인이 하는 상점과 식당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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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 관광

 옵션 관광은 보트타기, 패러세일링, 스쿠버 다이빙, 각종 마사지 같은 것들이 있다. 패키지 관광을 하면서 도중에 옵션 관광을 하면 대개는 현지 가격보다 비싸다. 패키지로 하면 더 싸야 정상일 것 같은데 아무튼 더 비싼 것 같다. 자세한 비교는 해보진 않았지만 오가며 들은 일반 가격과 비교하면 비싼 것 같다.

 옵션 관광의 경우, 직접 구해서 이용하지 않고 패키지를 이용하면 가이드의 안내나 일정 안배 같은 면에서 더 편리한 것이 사실이다. 옵션 관광 가격이 현지 가격보다 비싼 것에 대해서는 그런 가이드의 서비스 비용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했었다.

햇볕에 탄 피부를 위한 오일 마사지, 얼굴에 시원한 팩 마사지는 좋긴 하다. 난 알로에팩 가져가서 밤에 자기 전에 발랐음.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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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쇼핑은 패키지 관광의 꽃(?)이다. 그런데 참 재밌는 건 패키지 관광에서 하는 쇼핑은 대개 품목 구성이 비슷하다는 사실. 만병통치약에 가까운 기적의 열매를 이용한 비누, 크림, 술 같은 것들, 라텍스 베개, 형형색색의 진주목걸이 등등. 옵션 관광보다도, 패키지 관광에서 여행객의 지갑을 여는 곳은 이런 쇼핑 코스다. 여행객들이 한국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평소 씀씀이보다 훨씬 비싼 금액의 물건들을 사게 만들고, 친절하게(?) 포장 배송까지 해주곤 한다.

 그런데 이런 쇼핑에서 문제는 물건들의 품질을 과장하고 품질에 비해 비싼 가격을 받는 것으로도 모잘라서 논 옆에 있는 건물의 상점을 '면세점'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일이다.
 
 사근사근하게, 며칠간 말 안 듣는 관광객들을 늘 웃으며 안내하고, 지루한 버스 안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관광객들이 지치지 않게 노력하던 사람 좋던 가이드들이 자의든 타의든 거짓말을 하고, 법적으로는 사기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필리핀에서 주스, 비누, 화장품 원료로 쓰는 신비의(?) 영약 '노니'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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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가격 구조


 지금과 과거의 패키지 여행 관행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예전을 기준으로 말하면, 해외 여행의 경우 한국의 여행사와 현지 여행사가 있는 경우가 많다. 관광객들에겐 그 사람이 다 그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지 여행사는 한국 여행사의 지점도 아니고, 가이드 역시 한국 여행사의 직원이 아니다. 

 한국 여행사는 패키지를 판매하고 돈을 받아서, 그 중 얼마를 현지 여행사에 보내준다. 그럼 현지 여행사는 그 돈으로 한국 관광객들의 현지 일정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 여행사가 현지 여행사에 보내주는 돈으로는 현지 여행사는 마진은 커녕 오히려 마이너스다.
 
 하지만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현지 여행사가 그런 사업을 할 리 없다. 현지 여행사는 관광객들의 옵션 관광 수수료, 쇼핑 시 구매한 금액의 일정액을 수수료로 받아서 부족분을 메꾸고 가이드 몫도 떼고 여행사의 수익도 남긴다.

 정리하자면 한국 관광객이 한국에서 패키지 여행에 지불한 금액은 애당초 그런 코스를 다녀올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는 말씀. 한국 여행사 입장에서는 가격만 보고 패키지를 비교하는 여행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렴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 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사기 행위에 해당한다. 다만 사기를 조장은 했지만 실제로 저지르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것.

 패키지 여행의 문제점에 대해 해당 종사자들은 '그 싼 가격에 그 여행을 다 하려는 사람이 도둑놈 심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런 논리에 대해 동감할 만한 소비자는 별로 없을 거라고 본다. 옥션에서 진짜 나이키 운동화라고 하면서 3만원에 신발을 팔아놓고, 그 가격에 진짜를 사려는 사람이 문제라고 하는 짝퉁 판매상과 비슷한 논리인데, 만약 그게 말이 된다면 지금 감옥에 사기죄로 들어간 사람들 대부분은 무죄로 풀려나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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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식 자본주의와 패키지 여행의 공통점

 과거 용산의(현재는 어떤지 몰라서 그냥 '과거 용산의'라고 쓴다.) 일부 매장들이 손님들에게 사기를 치는 방법 중에 하나는 훗날 북한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시킨 '살라미 전술'이다. 가격 흥정으로 상대방에게 왠만큼 양보하는 척 해놓고 나서 '그건 카세트 값이었고, 이제 이어폰하고 충전기 값을 흥정해보자구' 하는 식이었다.

 나름 알아본다고 알아봐서 원하는 물건의 시세가 10만원이라는 점 정도는 미리 알고 갔던 오탁후 군은 점원이 제시한 9만원에 눈이 둥그래져서 흥정을 시작했다가, 결국은 다른 구성품 가격(?)까지 포함해 11만원, 13만원을 내고 가게를 나서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었다.


 실제로 현실적이지 않은 가격으로 패키지 상품을 구성해서 일단 여행객부터 끌어모아놓고, 나중에 이런 저런 수단을 동원하고 때론 사기에 가까운 방법으로까지 이윤을 남기는 방식은 용산에서 일단 싼 값을 불러서 매장 안으로 손님을 끌어들인 후에 CDP 따로, 이어폰 따로, 아답터 따로 팔던 수법과 비슷하다.

 물론 여기에는 언젠가부터 용산에 불기 시작한 '최저가' 바람이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최저가를 검색해서 들이대니 10만원, 20만원짜리 물건을 팔면서 2, 3천원 남겨야 하는 상황에서 일부 매장들이 어리숙한 손님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방법으로 이윤을 남기게 된 거란 논리다.

 아마 과거에 사람들이 여행 상품을 고르는 기준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목적지와 몇박몇일인지만 같으면 내용이야 어쨌든 간에 무조건 값이 싼 것만 골랐겠지. 그러니 패키지로 여행을 가서 옵션 관광도 하지 않고 쇼핑도 하지 않는 사람은 저렴하게 여행을 다녀오는 이익을 보고, 오만가지 옵션에 쇼핑도 넘쳐나게 한 사람은 앞으로 남기고 뒤로 손해보는 여행을 하게 되는 셈이다.

 비현실적인 가격으로 일단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이 패키지 여행에서 더 두드러지는 건, 여행이라는 생소한 환경, 현지 여행사와 가이드 같은 다자가 복잡하게 얽혀들어서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식당에서 비빔밥 먹으러 온 손님한테 고추장값 따로 받았다간 가게 문 닫아야겠지만 패키지 여행은 뭔가 구조가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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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와 쇼핑에는 '흥정'이라는 것이 일종의 기교로 미화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동일한 물건에 대해 동일한 가격이 적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옛날 용산에서는 노련한 흥정가들은 잔뼈가 굵은 상인들을 상대로도 꽤나 괜찮은 조건으로 물건을 사는가 하면, 어떤 어리숙한 손님들은 같은 물건을 훨씬 더 비싸게 사야했다.
 
'흥정'이 나름의 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자체를 즐기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흥정 기술이 좋지 않거나 물정을 잘 모른다고 해서 가격이 달라지는 관행은 뭔가 짜증이 난다. 특히 여행이라면, 즐기려고 가는 것이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아도 그렇게 손해볼 일은 없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도한 옵션이나 '면세점'이라는 상호를 가진 가게에서 필요 없는 건강 식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가이드가 성실하게 여행을 안내하기 위해서 적정한 수준의 여행 요금을 내는 패키지도 있긴 있다고 한다. 맘편하게 그런 여행을 가던지, 아니면 패키지 여행을 가서 옵션과 쇼핑만큼은 '조심'하던지.

 패키지를 이용할 때면 생각해볼 부분이다. 그리고 후자 같은 여행객이 많아지면 여행사들이 그때라도 어쩔 수 없이 정상적인 가격의 상품을 내놓게 될까? 아마 그런 변화가 생긴다면 그 과정에서 돈 안 쓰는 관광객들 때문에 열 받은 가이드가 손님들을 내팽개치는 사건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하고.)

 

 그나저나 여담으로 쓰자면, 필리핀에 가서 태반크림, 건강식품을 사는 건 이해가... -_-; 건강식품이나 화장품 같은 건 그래도 물정을 잘 아는 국내에서 믿을 만한 업체의 제품을 쓰는 게 상식이 아닐까 싶다. 필리핀에 많이 파는 '노니' 열매 제품들도 모두 한국에서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하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