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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9356

과외 경제학

thezine 2010. 9. 19. 15:45
 언젠가부터 주변에 과외/학원강사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딱 언제라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원강사, 과외가 아르바이트가 아닌, 전업인 사람이 많아진 거다.

 그 방식도 다양하다. 크고 작은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경우, 본인이 학원을 차린 경우, 과외만 하는 경우, 강사+과외 겸업하는 경우, 편입학원, 재수학원, 보습학원...

 그리고 그 지인들이 그 길을 걷게 된 과정도 제각각이다. 그냥 대학시절부터 생활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하던 일을 전업으로 삼게 된 경우도 있고, 잘 다니던 괜찮았던 회사가 IMF 때 망해버려서 강사일을 하게 된 경우도 있고, 졸업을 하지 않고 방황을 하다 그 길을 걷게 된 사람도 있다.

 삼성전자나 포스코에 다니다가 학창시절 과외로 벌었던 돈보다 수입이 적고 일도 맘에 안들어서 그만둔, 혹은 그런 권유를 받은 경우도 있다. 고시 공부를 포기하고 학원 강사로 성공한 경우도 있고, 금융업계에서 잘 나가다 이쪽 길로 접어든 경우도 있다. 참 다양하다.

 세상엔 원래 잘 된 사람 이야기만 들려오는 법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자영업을 하는 주변 지인의 경우도 돈 잘 버는 경우만 눈에 들어오는 법) 사교육 산업에 투신하여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 입소문을 잘 타면 일감도 밀려오고 단가도 세지기 때문에 나름 재능이 있고 '학생 엄마' 관리를 잘 하는 사람들은 500, 1000, 2000만원씩 버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수업 능력이 기본이지만, '학생 엄마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이 바닥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불안정하다. 어제까지 과외 신청이 줄을 섰던 강사가 어느날 갑자기 일이 뚝 끊길 수도 있다. 반대로 그럭저럭이었는데 성공사례 한 번 제대로 창출하고 나면 갑자기 밀물처럼 부탁이 들어오기도 한다. 4년제만 가면 다행이다 싶던 학생을 지방 국립대에 합격시켰던 김모군은 곧바로 아버지의 소득을 뛰어넘어서 아버님이 기쁘면서 허탈해하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과외의 경우 대부분 세금을 내지 않고 100% 소득이 된다. 과외의 경우 소득의 일부는 학생에게 재투자하는 것도 필요하다. 피자도 사주고 책도 사주고 뭐 그런... ^^

 학원에 강사로 일할 경우 큰 학원의 잘 나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입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에 결국 목표는 자기 학원을 차리는 거라고들 한다. 여름 방학에 100만원짜리 수업 100명 끌어모아 현찰로 1억이 한두달만에 생기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물론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교육 종사자의 대다수는 평범한 수준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시류의 변화에 민감하다. 정부 정책이나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해서 수요를 창출해내는 기민함은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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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교육 경제가, 과외 경제가 IMF 이후 고성장/저고용 경제 환경에서 그나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아마 지금 정부나 이전 정부 모두 안고 있는 아이러니일 것이다. 사교육비 중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학원/과외 비용 때문에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돈도 적어지고 애 키우기도 힘들고 하니 사회악인 것 같기도 하고, 반면 언젠가부터 대졸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창출해온 면도 일정 부분 있다.

 (내 생각에 사교육은 사회악의 원인이 아닌, 사회악의 증상이다. 시험점수로 줄을 세우는 입시제도, 대학들의 수직 서열화-A학과로 유명한 학교라도 해도 서열이 더 높은 학교의 A학과보다 커트라인이 높을 수 없는 구조-, 대학 졸업장 유무, 대학 서열 정도에 따라 졸업 후 소득 수준이 심하게 차이가 나는 경제여건 등의 환경에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학원 경제 역시 적응에 적응을 거듭해, 메가스터디 같은 성공적인 벤처 기업이 탄생하기도 했다. 사교육에 투신한 사람들 상당수가 젊고 나름 책도 읽고 사회적인 이슈에 귀를 기울이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예를 들어 논술 강사), 아무래도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현재의 극우정권에선 그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아서 '문제야 문제'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딱히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지 지금은 조용해진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과외 경제학은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인 것 같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가도 이런 경제가 형성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한국이 한국스러운 특징들(장점이든 단점이든, 어느 것도 아니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과외 경제가 어떻게 바뀌어갈지 궁금하다.

 잡담을 덧붙이면 나도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남녀학생 과외를 나름 많이 해보았고 이과수학/영어 수업도 가능하고, 지금은 중국어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올빼미의 삶을 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사교육에 뛰어들 날이 올지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