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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비평

알파라이즈하지 않는 기업의 알파라이징 광고

thezine 2010. 3. 5. 15:37

SK telecom의 새 광고 시리즈 알파라이징


 얼마 전에 이 광고를 처음 봤을 땐 '왠 듣도 보도 못한 영어가?'라는 의문부터 들었다. 과하게 영어를 남발하는 게 어디 SKT광고만의 일은 아니지만, 영어남용, 한글파괴의 선봉에 서는 광고의 계보를 잇는 기대주(?)다.

 두어번 본 광고 내용에 대해 내가 이해한 게 맞다면, 1+1이 2가 아니라 그 이상의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것을 알파라이징이라고 칭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굳이 SKT라는 회사를 비판할 마음까진 없지만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SKT라는 통신회사가 '알파라이징'이라는 구호에 맞는 가치를 창출했던 것 같지도 않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SKT는 시장을 과점하고 있고 그에 따른 반감을 사거나 비판을 받는 일이 많다. 하지만 시장에서 SKT같은 지위에 올라서는 건 아마 경영학 교과서에 나올만 한, 모든 기업들이 선망하는 일이다. 절대적인 시장점유율, 상당한 매출 규모, 가입자만 유치하면, 그리고 가입을 유지만 하면 큰 추가비용 없이 현찰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분야다. 물건 한 번 팔고 나면 그걸로 땡(ex. 컨설팅)이거나 오히려 AS 비용만 나가는 분야(ex.제조업)와는 달리, 통신산업이란 건 돈이 꾸준이 들어온다. 꾸주~운히.

 요새 인터넷 용어로 '캐부럽'한 시장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SKT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 광고는 아닌 것 같다. SKT가 과연 '알파라이즈'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선보일 수는 있을까? 알파라이즈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돈을 많이 들여서 광고를 쏟아붓는다고 해서 SKT가 알파라이즈하는 기업이 될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하긴, 삼성전자가 또 하나의 가족이라며 예쁜 애니메이션 광고를 하루 종일 내보낸다고 해서 '아~ 삼성전자는 가족 같은 기업이구나'하는 사람이 있을까?)

'tomorrow'를 반복하는 삼성 광고



 뭐, 그런 게 기업 광고, 이미지 광고라고 할 수도 있다. 기업의 실제 모습과는 무관한 내용을 그럴 듯한 화면에 담아 예쁜 노래를 부르고 외국인 성우의 영어와 섞어 하루 종일 보여주는 게 실제로 먹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까칠한 시선은 극히 일부이고 '역시 좋은 기업 xx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광고의 핵심 내용 자체가 tomorrow나 alpharising같은 영어나 영어신조어이어야 광고가 세련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시청자의 절대 다수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몇 있긴 있을 거다. 같잖은, 혹은 불필요한 영어는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그 기업의 가치도 아니고 앞으로도 실천에 옮길 마음이 없는 구호를 광고로 내보내는 건 너무 공허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말이다.

 SKT가 앞으로는 알파라이징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으면 그때서야 '아, 이렇게 깊은 뜻이' 하고 나의 지난 날의 행적(바로 이 글)을 반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알파라이징'이라는 광고 캠페인이 광고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표현이 아니라 CEO의 야심(?)이 담긴 진정한 표현이었으면 좋겠다.

 선거에 이기려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정치인의 거짓말은 괜찮다고 하는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이건희氏의 말이 맞다면 정치는 삼류여도 기업은 2류는 된다고 하니 skt의 새 광고 '알파라이징'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아주 조금은 그런 기대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