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멀고 먼 남북통일의 길 본문

시사매거진9356

멀고 먼 남북통일의 길

thezine 2007. 10. 5. 12:04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포털에 뜬 남북정상회담 관련 뉴스들


 박정희 정권 시절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의 밀사로 북한에 다녀왔을 때도, 그 이후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때마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때에도,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 때에도 뉴스의 관심은 대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뉴스를 지켜봤고 그동안 아예 잊고 지내던 '통일'이라는 의제에 조금씩 다가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향민이나 서해5도민처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마다 감격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



 그동안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역사를 공유하는 북한은 우리에게 '외국 아닌 외국'이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살고 있지만 지구 반대편의 나라보다 더 먼 곳이 북한이다.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와 정 반대되는 곳을 예로 들면 이해가 더 쉽다.
 
 유럽을 보라. 국가간의 경계도 그동안 자주 바뀌었고 민족도 섞여있고 심지어 이 나라의 왕족이 저 나라에 가서 새로 왕위를 계승하는 일이 잦았다. 그 곳에서는 동서남북을 둘러보면 각각 다른 나라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고, 기차만 오래 타고 있으면 중간에 몇 차례 간단한 출입국 절차를 거쳐 여러 나라를 거치게 되는 곳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참 얄궂다. 수도 서울에서 차로 2시간이면 닿을 거리지만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자유로운 여행은 커녕 육로 통과도 불가능하니 말이다.

 통일을 하면 경제 효과가 어떻고 국제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어려운 부분은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상상은 해볼 수 있다. 그동안 가볼 생각도 못했던 곳을 편하게 차로 여행하고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이 통하고 음식도 비슷한 곳을 여행한다는 상상, 그렇게 죽 달리면 중국과 러시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상상말이다. 그렇게 되면 길이 없는 시골길을 제외하면 끝에서 끝까지 달려봐야 차로 5-6시간이면 충분하던 '국토'가 전남에서 함경북도까지 10시간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통일'을 환상에 사로잡혀 예상한다면 사실적인 예상을 할 수는 없을 것이고, 통일에 대해 비전문가인 내가 생각해도 진짜 통일을 하기엔 통일 전후에 감당해야 할 문제가 너무 엄청나다. 다만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직접적인 변화가 그럴 거라는 말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사라졌지만 이 작은 나라에서 지역감정이 심각했던 걸 보면, 통일 후에 생겨날 남과 북의 문화/경제/사회적인 격차와 갈등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 뉴스 열풍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은 변화가 좋은 것이든 아니든, 또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국가 장래에 득이 되든 안 되든 가치 판단을 떠나서 진짜 통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다.

 통일을 하기에 가장 큰 어려움은 남북 상호간의 문제보다는 각자의 내부적인 문제가 될 것 같다.


 북한을 독일과 같이 흡수통일을 하기에는 남한의 경제력이 충분치도 않고 북한도 동의하지 않을 거다. 결국 북한이 점진적으로 경제를 개방하고 소득을 증대한 후에야 고려해볼 수 있을텐데 경제적인 개방조치, 흔히 말하는 3통(통관, 통신, 통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왕래하고 소식이 왕래하고(인터넷, 전화, 언론) 물건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면서 북한 체재 유지가 과연 가능할까? 물론 그나마 최선의 상태는 오늘날의 중국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겠지만 내가 북한 지도층이라면 기득권 유지에 심각한 불안을 느낄 것 같다.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김정일이라고는 하지만 최대 측근일 군부의 강경하고 보수적인 계층의 입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다.

 남한은 어떤가. 점진적인 통일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상호 인정이 불가피하다. 지금처럼 세상 모든 나라는 다 인정해도 북한은 하나에서 열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절대 비토(거부) 층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통일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한국의 대표 극우 조갑제의 표현대로 '주석궁에 탱크가 들어가는' 통일, 남한이 북한의 모든 것을 접수하는 통일이 아니고선 그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같은 수순을 통해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을 추진할 경우에는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옛날처럼 반공교육이 심하진 않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반북주의가 깊히 각인 되어있다. 북한의 입장을 일부 두둔하는 이야길 하는 것만으로도 반역죄인이 되는 우리의 알레르기성 체질이 바뀌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


 개방에 의한 체재 위기를 걱정하는 북한과, 북한을 인정할 수 없는 남한의 내부적인 거부반응을 극복하고 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호혜적인 경협을 확대하고 교류를 지속하는 점진적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칠 때 곧바로 깊이 2m의 수영장에 떠밀 사람은 없다. 바가지에 떠놓은 물로 물장난을 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물이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과정, 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재밌는(자신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 통일 과정을 이렇게도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지난 분단 50년간 쌓여온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100% 해결하지 못했다고 해서 정상회담의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전에 블로그에 쓴 글대로, 역사는 결국 한 방향으로 흐를 것이고 다만 시간이 아직도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