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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9356

220볼트와 광우병의 관계

thezine 2008. 5. 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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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자 모양의 110볼트 플러그



 우리나라에도 한 때는 가전제품의 사용 전압이 110v였던 적이 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점점 220v 겸용 제품들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공급전원이 모두 220v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220v의 전압을 가정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220v를 쓰면 좋은 점은 전력 손실이 적다는 점이다. 전압이 높을수록 전력 송신 과정에서 손실되는 전기의 양이 적으니 효율이 좋아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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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코 모양의 220볼트 플러그


 그런데 110v와 220v의 또 다른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110v가 220v에 비해서 훨씬 안전하다는 점이다. 감전 사고가 생겼을 때 죽을 수도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물론 110v라고 해도 특별히 심장이 약한 사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은 사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하니 박정희 정권 시절, 당시로선 거액을 들여 220v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지금은 원자력 발전 비중이 높아졌지만, 화력 발전이 많았기 때문에 '전기=석유'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꽤 대단한 사업이었는지, 지금 내가 출근하는 회사 빌딩 건너편의 한전에서 산자부 장관 등이 참석해서 220v 전환을 축하했다고 한다.

 사람이 죽는 사고가 생기더라도 효율을 위해서라면 220v로 전환한다는 결단(?), 이것은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고기를 수입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일부 희생은 있을 수 있지만 효율이 높아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그 이득을 누릴 수 있으면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늘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을 당연시 여겨왔던 문화에서 이런 사고방식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하다.

 작은 희생이라도 생길 위험이 생길 바에는 차라리 비효율을 감수하겠다는 문화가 있을 것이고, '그래봐야 몇 명 죽겠어? 나머지 사람들이 편리하잖아'하는 문화가 있을 수 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이고 더 좋은 것이냐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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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년이 친구 미친소

 광우병으로 인해 대량 발병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광우병에 걸린 소가 널리 유통되었던 영국에서 사망자가 150명 정도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 통제를 하는 지금은 발병을 하더라도 그 숫자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광우병의 발병 메카니즘에 대해 전문가들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또한 광우병의 잠복기가 평균 10년 정도로 상당히 길다고 한다. 게다가 사망 후 부검을 하지 않는 한 광우병 진단도 쉽지 않다.

 말하자면 '대량 발병, 대량 사망'의 대재앙이 발생할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광우병에 대해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따라서 광우병에 대한 경계를 늦추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도 있고, 지금의 모든 소동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광우병에 대한 수 많은 이슈 가운데 발병/사망 가능성에 대한 내용만 다루고 있다. 그 외에도 미국 사람들은 95% 이상 20개월 미만의 소고기만을 먹고 나머지 5% 조차도 사료 등의 용도로 사용되며 일반에 유통이 금지되어있다는 점, 한국에는 30개월 이상의 소고기가 유통될 것이라는 점, 식당의 원산지 단속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등 개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들이 있지만 일단 이 글에선 다루지 않겠다.

 결국 미국 소고기를 수입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사람들과, 거기에 반대하는 상당수 시민들의 차이는 110볼트에서 220볼트로 전환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사람들의 차이점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두 부류의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에 달려있다.

1. 효율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효율 저하를 감수할 것인가?

2. 확실히 위험해야 금지할 것인가?
   아니면 확실히 안전해야 허용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대체로 효율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묵인하는 분위기였고, 확실히 불안전하지 않으면 금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예를 들면 '국익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하자'는 주장이 그렇다. (여기서 '국익'이란 단어의 의미는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의 군국주의자와 일본 우익들이 말하는 '국익'과 비슷한 의미이다. 다른 이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이익을 말한다.)

 하지만 소고기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달랐다. 광우병의 희생자는 극소수가 될 수도 있지만 모든 국민이 적던 크던 그 위험에 노출된다. 더군다나 한국 사람은 먹는 문제에 특히 민감하다. (군대에서 사람을 아무리 개취급해도 밥 시간만큼은 지켜준다.) 촛불시위 참가자가 남녀노소 어느 한 그룹이 두드러짐이 없이 비교적 다양한 인구분포를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소수의 희생보다는 효율을 포기하자'는, 좀 더 고상한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변화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인식이란 건 한 순간 쉽게 바뀔 수 없다. 어쩌면 광우병 파동이 그런 인식 변화의 과도기적 과정이자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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