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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ZINE

소시적에(?) 편지를 많이 쓴 적이 있다. 서울에 살다 울산에 이사를 갔는데 한창 사춘기 때다보니 친구들 생각도 나고 성격도 예민할 때였기 때문일까. 편지를 쓰고 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간이 갈수록 오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결국엔 편지를 쓸 일이 거의 없게 됐다. 하지만 그땐 비싼 시외전화 외에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다. 아름답지 못한 글씨나마, 이런 저런 생각들을 편지에 담아 보내고,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돌아온 어느날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읽고 하는 일이 그땐 내 일상의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자주 쓰다보니, 어느 시간대에 썼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진다는 걸 깨닫게 됐다. 동생들이 잠들고 밤이 깊었을 때 편지를 쓰면, 특히나 유난히 기분이 묘한 날엔 차마 떠올리기 겁나는 쑥스러운 이..

타이난은 대만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다. 이번 글은 타이동을 떠나서 마지막 목적지인 타이난으로 가던 날 아침의 기록이다. 전날 머물렀던 '진안뤼셔(금안여사金安旅社)'라는 정감 넘치는 낡은 여관의 아침이 밝았다. 아담한 방,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여니 밝은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샤워를 하고 짐을 꾸렸다. 빠트린 게 없나 둘러본다. 낡고 허름한 작은 방이지만 나에게 하룻밤 달콤한 휴식을 제공했던 곳, 다시 돌아오지 못할 생각을 하면 늘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인체공학적으로 가장 샤워하기 불편한 구조로 만들어졌던 욕조. 저 작은 욕조에 그나마 바닥마저 둥그렇게 경사가 져있어서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지기 딱 좋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변기는 물살이 세지 않아서 늘 미리 바가지에 물을 채워놨다가 물을 내리..

벌써 여행을 다녀온지 한 달이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은 바로 며칠 전 다녀온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슬슬 하나씩 올린 여행기가 다섯번째 날 차례가 되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하다. 여행은 이미 일찌감치 끝났지만 다시금 여행이 끝나가는 기분을 느낀달까. 대만에 새벽에 도착해서 바로 잤으니 여행을 7박7일, 만7일 한 셈인데 그 중에 5번째 날이니 후반부로 들어선 셈이다. 중반 이후로 한 곳에서 하루씩만 머물며 이동을 했는데, 이날은 전날 묵은 '루이쑤이' 온천에서 출발해서 '타이동'이라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타이완'에 '타이베이', '타이난', '타이동'... 이라고 하면 뭔가 감이 오시는지? 바로 대만을 뜻하는 '타이'에 북, 남, 동이 붙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북=베이, ..

여행을 다니면서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길거리에 적응이 되어야 한다. 전철을 어떻게 타고 동서남북이 어느 쪽이고 시내의 주요 목적지가 대충 어느 방향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감이 잡히면 돌아다니는 게 한층 여유가 생긴다. 대만에 출장으로 갔을 때 이미 몇 번 타본 전철을 타고 박물관에 갈 때가 그랬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전철을 타고 길을 나섰다. 날은 덥지만 전철 안은 시원하다. 타이베이의 전철은 비교적 깔끔한 편. 게다가 곧 지상으로 전철이 올라가니까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는 기분이 상쾌도 하다~ 두 번째 날, 메인 이벤트 '고궁박물관' 전철을 타고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를 갈아타기 전에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100대만달러(우리돈 3200원 정도)로 고기덮밥과 어묵국을 준다...
안그래도 요즘 신문에 '가을 날씨가 가을 날씨답지 않게 비도 자주 오고 흐리다'는 내용이 많다. 날씨가 '한국의 가을 날씨 다운', 하늘이 높고 맑은 날씨였다면 여행 후유증이 덜 했으려나? 무슨 말이냐면, 날씨가 쨍쨍하던 동네에서 여행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바람이 선선한 건 좋은데 날이 너무 자주 흐려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여행 초반에는 지겹도록 하루에도 여러 번씩 비가 내렸지만 여행 중반부터는 날이 아주 좋았었다. 맑고 쨍쨍한 날, 들판을 따라 난 조용한 찻길을 땀 흘리며 걷던 기억이나, 기차를 타고 가며 창 밖으로 푸른 하늘과 햇빛, 넓게 펼쳐진 들판을 보던 기억. 물론 덥고 땀도 났지만 그때 느꼈던 눈부신 태양이 문득문득 그립다. 대만 동부의 시골에 비하면 탁하디 탁한 삼성동의 (정확히 말하..

추석 연휴 동안 대만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 대만에 짧게 출장을 다녀온 것, 대만에서 공부했던 세영이에게 간간이 들었던 이야기들 (주로 음식이 맛있다는 이야기 ㅎㅎㅎ), 대만에 대해 막연히 알고 있던 추상적인 이미지들만 갖고 목적지를 결정했다. 원래는 년초에 일본에 다녀온 것처럼 가을에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날 잡으려고 하면 각자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하다보면 계획 잡기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휴가를 붙여서 하루라도 길게 다녀오려고 하다보니 친구들과 일정 맞추는 건 일치감치 포기를 했다. 대만으로 목적지가 정해진 후로 대만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1. 여행안내서: Just Go 시리즈, '대만'편. 책 내용은 허접하지만 대안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만에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