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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이 제주도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된 이유가 뭘까. 제주 사람들은 해장할 일이 많았을까? 제주는 소보다는 돼지가 유명한데 해장국은 소 선지와 내장이 위주다. 언뜻 이해는 되지 않는다. 이날 나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전날 소맥과 백주를 마신 것일까? 접시에 담아 나온 부추를 수북히 국물 깊숙히 쑤셔넣고 부추의 풀이 죽는 동안 열심히 건더기를 건져 먹었다. 양념장은 익숙한 고추기름 베이스가 아닌 담백하고 매운 소스였다. 식사에 국물이 꼭 필요한 입맛은 아니지만 국물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함께 해준 국물이 지금도 고맙고 그립다. 산방산 근처 강풍해장국의 내장탕이다. 밀크쉐이크를 늘 그리워하는 나란 사람... 제주에 가면 평소 자제하는 메뉴를 마음껏 고른다. 우선 쉐이크를 급하게 마..

자연보호를 위해 하루 300명까지만 예약을 받는다. 도착하니 입구 사무소에서 직원 아주머니가 나오셔서는 "김용욱씨?" 물으신다. 혼자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렇다는데 입산 서명록 같은 종이를 힐끗 보니 목록에 이름 자체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걷다 보니 좀 단조롭다. 크게 힘들지 않고 산책하기 좋다. 이 깊고 깊은 산속에 집터가 있다. 해도 별로 들지 않는 곳에 터를 잡고 살아간 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해도 늦게 뜨고 일찍 지면 칠흙같은 긴 어둠이 지긋지긋하지 않았을까? 말할 수 없이 고독하지 않았을까? 멀리 외출 나간 가족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지 않았을까? 깊고 어두운 산속에서 정주定住의 흔적을 마주하니 한없고 지독한 고독의 감상이 밀려온다. 시험림이라는 곳은 다양한 식물의 식생 변화를 ..

내가 있는 자리에서 보이는 곳이 대청봉 방향이었으면, 보이진 않아도 그랬으면 했네. 대신 내 앞은 설악초, 설악 케이블카 방향이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바로 앞 설악초등학교 전교생 59명, 생각보단 많다 이곳 초입은 장대비 소나기가 퍼붓던 날 맨발로 차까지 뛰어가던 기억, 뛰어서 버스를 타느라 아기 신발 한 짝 잃어버린 기억, 주말 인파가 너무 많아서 입구에서 차를 돌린 아쉬운 기억도 있는 곳. 야영장으로 오기는 처음인데 국립시설의 미친듯한 가성비는 늘 놀랍다. 타이밍 맞춰 클릭질 하는데 소질이 없는지라 주중을 노리니 더 저렴해져서 저세상으로 가버려. 이번 연말은 회사에 평소와 달리 큰 풍파는 없지만 억지로 여유를 부리는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은 든다. 캠장에 어떤 아기가 아빠 아빠 하고 부른다. 용건은 알..

간만에 차를 끌고 명절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네비 최단시간 옵션을 골라 고속도로와 국도를 오가라는 안내를 보고, 그래 한 번 어떤지 가보자고 국도길을 앞차 따라 졸졸 달리른 길. 어떤 식당 앞에는 수 많은 차가 세워져있어 지역 맛집인가보다 하고 지도를 찾아 체크는 해두었는데 다시 갈 기회가 있을까 하니 그건 의문이다. 이 큰 나무와 정자는 보자마자 반했다. 도시에 나고 자라 가져본 적 없는 고향 마을어귀라는 공간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곳이 이런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소. 운전 중에 1초만에 스쳐간 공간이 어딘지 알고싶어 지도를 켜서 보다가 우연히 다른 각드의 로드뷰를 보았더니 한 끗 차이로 가을 풍경이 걸려있다. 내 것은 아니면서도 내 것이자, 지키고 싶은 것들이 이런 풍경이다 ..

찾아보면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군복무 시절에 아마도 한 번도 아니고 두어번쯤, 전역의 날을 꿈 꾸며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기만 하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심훈 선생은 1901년에 태어나서 36년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범한 한국 고등학생은 누구라도 교과서에서 그 이름을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문인으로서 대단한 성취이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겐 '들어보긴 한 것 같은' 정도의 인물일 것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흔히 공감할 법한 표현을 쓰자면, 나에겐 '평범한 위인'이라는 범주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만난 '그렇고 그런 훌륭한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사람을 긴 시간이 지나 이렇게 1대1로 만나는 것이 이렇게 인상 깊은 순간들이 될 줄이..

봄이나 가을의 문제점(?)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두 계절은 특히 조석으로 일교차가 크다보니 새벽에는 아직 겨울이네, 낮에는 아직 여름이네 하다 보면 지나가기 일수. 가을과 봄은 그렇게 끝과 끝이 확실하지 않고, 길이가 길지는 않은, 완만한듯 빠른 기울기로 변화하는 계절. 하지만 그래도 그 정점이라는 건 있기 마련이고 가을은 단풍의 색깔이 그 시기를 알려준다. 지금 저 밖에는 헷갈리지 않도록 큰 산의 경사면 전체가 울긋불긋 해져서 누가 뭐래도 지금은 가을이야 하고 선언한다.

청와대 견학길에 오른 가족들을 내려주고 잠시 쉴 곳을 찾는다는 게 북악 스카이웨이를 빙 돌아 성북구 어딘가를 헤메다가, 언젠가 지나쳐본 것 같은 곳을 지나 평생 한 번도 와볼 일이 없었던 곳을 거쳐 돌아다녔다. 어느 한 곳 제대로 자리잡고 뭔가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저쪽 동네의 낯선 풍경을 훑고 온 것은 좋았다. 오래된 동네를 통채로 들어내고 원래 있던 골목의 흔적이 아예 사라져버린 '뉴타운' 동네에 살고 있다보니 더 낯설었던 것 아닐까 싶다. 서울이 오래된 도시였지, 하는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 어쩌면 등잔 밑 그늘처럼 가려진 동네, 그런 느낌인데도 구석구석 카페가 있고 맛집이 있고 그곳들을 찾아온 인파가 줄을 서있다. 정말 내가 사는 도시와 같은 도시일까 싶을 만큼 이질적이다. 제주도 둘레길만큼..

인천공항 가까이 있고, 그 전에는 배로만 갈 수 있던 곳. 새로 다리가 연결되어 차를 타고 갈 수 있게 된 곳. 이곳 옆에는 영화로 유명했던 섬 실미도가 있다. 영종도, 용유도 두 섬 사이를 메워 지어진 인천공항이라는 '핫(했던) 플레이스' 바로 옆인데 배로만 갈 수 있었던 곳이었기에 서울에서 두세시간 거리의 해수욕장만도 못한 후락한 모습이었다. 다리가 연결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은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새로운 행선지가 생겼다 뿐이지 눈에 띄게 경관이 수려하다고 할 수준은 아니고, 코로나 불경기 탓도 있겠지. 대충 가로질러 다녀보니 대부분의 길이 차 2대가 마주하고 맘 편히 달리기 어려운 좁은 길이고, 도로 상태나 편의시설도..

어리목 휴게소에서 차에서 내리면 어승생악 정상까지는 30분 거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곳. 부지런히 걷다 뛰다 했더니 하산은 12분만에 했다. 주차장이 해발 1000미터 정도, 정상은 1200미터 높이인데 이 정도로도 귀는 조금씩 막히곤 했다 왕관처럼 활짝 핀(?) 고사리를 지나 정상에 다다르니...정상에는 통신사 안테나가 나를 반겨준다. 안테나는 정상 말고 그 옆 봉우리에 설치한 대둔산의 센스가 아쉬워 제목을 부조화라고 적었다.그리고 뜻하지 않게 일본군 진지의 유적이... 이 조용한 곳에서 진지를 만들고 지키고 있는다 한들 얼마나 방어 효과가 있었을까. 내부는 어두워서 대충 보고 나왔는데, 다시 사진을 보며 생각해보니 75년전 진지를 만드는데 동원되었을 도민과 강제노동을 시켰을 일본군은 각각 ..

Hardship of a librarian. 말장난이 잠시 하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면 여정 중간중간 고된 순간들이 찾아온다. 특히 아이가 있으면 그렇다. 밤 늦거나 아예 밤샘 비행인 이번 여행은 특히 고되다. 그 고생을 하고 2박 같은 3박으로 짧게 가는 것도 고생이고. 여행의 즐거운 순간들도 마찬가지로 일정을 보내던 중간 중간에 찾아온다. 아이들이 기억할 순간들이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요 며칠을 또 한동안 이야기하겠지.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선택적인 기억의 세례를 받은 추억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