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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파도가 지난 후에는 퇴행적 보수의 골이 찾아온다

thezine 2008. 9. 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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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명 작가 한한(韓寒)

 중국의 유명 블로거 한한(韓寒)이 한겨레신문에 기고를 했다. 요즘 어쩐 일인지 관심거리로 등장한 중국인들의 반한 감정에 대해 중국인의 생각을 묻자는 취지인 듯 한데, 한겨레에서 센스있게 섭외를 했다. 최근의 일련의 상황들은 학자나 언론인이 어려운 말로 풀어내는 것보다는, '한한'과 같은 젊은 온라인 작가가 설명하는 것이 더 적합했던 것 같다. (관련 기사 클릭)

 '한한'은 한 마디로 중국의 반한 감정을 한 마디로 "반한감정은 반일감정에 이은 새 유행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예전에 일본, 미국, 홍콩(향항香港), 대만의 문화 역시 비슷하게 '일류', '미류', '항류', '대류'라는 이름으로 유행을 이뤘었던 것처럼 한류 역시 유행을 이루던 것이 이제는 반대로 반한감정으로 유행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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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기사를 보고 먼저 촛불시위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 떠올랐다. 일견 반한 감정과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지만 흐름을 타는 역학 그 자체는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상황 역시 한류가 유행을 타고 반한으로도 변신한 것처럼 흐름을 탄다는 생각을 한다. 촛불시위 이후의 정국이 그렇고, 더 작게는 어청수의 경질론이 그렇다.

 한동안 어청수 경찰총장 경질론이 야당과 불교계는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현재 분위기론 경질론이 쏙 들어갔다. '자기편'들도 성난 여론에 꼬리를 내릴 때 구원 투수로 등장한 것은 '보수 세력'들의 '경질 반대' 주장이다. '애국시민대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어청수 청장 경질 불가론을 펼쳤다고 한다.(관련 기사 클릭)

 이런 흐름은 언제나 반복되는 듯 하다. 어청수 경질론에 훨씬 앞서 촛불시위가 정점에 올랐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민심을 주목하며 극우 언론들마도, 한나라당도 촛불의 배후 같은 것은 없다고 인정했었다. 대통령도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 노래 소리를 들으며 반성을 했다는 이야길 했다. 하지만 촛불 시위가 잠잠해지고 열성 참가자들을 구속시키는 강공으로 일관한 끝에 보수 단체들의 지원을 힘입어 이제는 반대로 보수파가 정국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YTN, KBS를 힘으로 접수하고 MBC가 알아서 기도록 만든 능력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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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曰 "반성한다고 들었다면, 오해였다."



 촛불의 파도가 높았던 만큼, 공안 정국의 골도 깊다. 어청수 경질론과 불교계의 분노의 파도가 지난 후에는 잠잠한 시기가 찾아왔다. 정치적인 상황과 한중 네티즌들의 싸움은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고, 다만 이렇게 흐름을 탄다는 점에선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한류의 파도는 제법 높게 오래 유지되긴 했지만 그에 대한 일부 반동 작용으로 반한 감정이 흐름을 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다. 물론 흔히 하는 말대로 반한 감정 자체는 생각보다 과장된 측면이 강하고 또 전투로 치자면 국지전의 성격이다.(물론 전쟁터는 온라인이고 무기는 키보드, 전투 요원들은 요즘 말로 '키보드 워리어'라고 부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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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끼리 줄다리기를 하면 양쪽에서 당기는 힘이 아주 팽팽하다. 어지간히 힘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도 밧줄에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 그렇게 줄다리기를 할 때면 대개 초등학교 때 배운 '영차 영차'하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여~엉ㅊ..ㅏ..'에서 '여'쯤에서 가장 강하게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타이밍이 상대편과 서로 반박자씩 어긋날 때 이쪽으로 끌어오기도 하고 상대쪽으로 끌려가기도 한다. 영차 영차를 열번쯤 하면 평균적으로 적게 끌려가고 많이 끌어오는 편이 이기는 식으로 결판이 난다.
 
 광화문을 가득 채웠던 촛불 불꽃들이 사라지고, 진보 단체 관련자들이 구속되고, 보수 세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면서 봄과 초여름에 시민들을 거리로 모은 힘은 어디로 사라졌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저 옛날 일이라고 생각했던 반대파 탄압을 보면서 '신 공안정국'의 도래가 믿겨지지 않았다. 이 상황을 나름 이해해보려고 하다보니 변화란 이처럼 파도에 이어 찾아오는 골이 반복된 끝에 찾아온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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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자리에 앉았던 Rosa Park



 이런 저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가 '지향점'으로 생각하는 선진국이다. 그런데 미국 역시 지금 만큼의 진보를 이루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흑인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식으로 형식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흑인이 투표를 하기 위해서 투표소로 가다가 살해당한 것이 겨우 50여년 전의 일이다. 식당이나 버스의 백인전용 좌석에 흑인이 앉아있는 운동을 벌이던 북부의 대학생들이 실종되어 시체로 발견되기까지 경찰과 FBI가 일부러 구경만 하던 것도 그 무렵이다.

 2008년, 한국의 진보세력들이 추구하는 가치들만 보자면 솔직히 '아직도 이런 일로 투쟁해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하지만 2차례의 진보적 정권을 거치면서 이루어진 얼마 되지 않는 성취만을 놓고 너무 안심했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 같다. 역시 사회의 진보는 시민들이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지켜내기 어렵단 생각이 든다. 정권이 바뀌자 겨우 6개월 만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10년 전,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지난 10년의 성과 후에 찾아온 보수 정권의 등장은 1보 진전에 이은 2보 후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러나 그게 어찌됐든 역사는 진보의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믿음을 가지고, 파도가 지나 골이 찾아왔지만, 언젠가 다시 파도가 올 거라는 믿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PS: '한한'의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에 그의 블로그 주소가 잘못 나왔다.
      실제 블로그 주소는 http://blog.sina.com.cn/twoc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