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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애哀, 슬퍼할 도悼 본문
오늘 무안공항에서 179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는 대형 사고가 났다. 세월호 사건, 이태원 사고 이후에 또 몇 년 만에 이런 큰 일이 생겼다. 한 시절을 상징하고 풍미했던 유명인이 명을 달리 할 때면 일종의 모방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슬픔이라는 감정도 쉽게 퍼져나가는 전염성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자들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 단란한 가족과 예쁜 어린 아이와 꿈을 이루어가는 청년의 이야기들이 하나 둘 소개되기 마련이다. 이런 큰 사건 뒤에는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애도하고 슬퍼하고 가라앉는 시기가 이어질 것이다.
오늘 TV의 큰 연말 시상식이 취소되었다. 한 달씩 준비해왔을 가수와 스탭들의 노고가 안타깝지만, 그렇기에 그런 결정이 고맙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서 마음 한 켠에는 전혀 인연조차 없는 남이지만 그들의 노고가 안타까와진다.
계엄사태 이후로 불경기가 심해져서 특히 먹고 마시는 가게들이 영향이 큰 것 같다. 신용카드 사용액수 통계 같은 구체적인 수치는 아직 못봤지만, 예전의 반토막 수준이라는 가게 주인들의 이야기를 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작고 큰 모임 관계 없이, 연말 연중 관계 없이, 먹고 마시는 자리는 기본적으로 즐겁자고 모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내 주변에 요식업계 종사자가 많지 않지만, 오늘 사고로 안타까움과 함께 '당장 앞으로 연말연시 매출이 줄어들겠구나' 하며 걱정하는 많은 자영업자들도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공연 업계가 초토화되고 한참동안 회복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말라죽어갈 것 같은 심정 아니었을까.)
한강 작가에 대한 이야기 중에는, 5.18 같은 비극적인 사건의 속 이야기를 접할 때면,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내면에 대한 공감과 고통 때문에 몸이 아파 앓아 누울 정도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감수성의 깊이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지만, 이렇게 커다란 고통과 비극이 온 나라를 압도할 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까운 후배의 갑작스런 부친상 소식에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 이 뉴스를 접했는데, 알고 보니 후배의 아버님은 투병생활을 하시긴 했지만 병세가 크게 나쁘진 않던 와중에, 감기 기운으로 병원을 가셨다가 겨우 이틀 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마도 거동도 잘 하시고 대화도 불편하시지 않던 중에 갑자기 돌아가신 것 아닌가 싶다.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지만, 가족과의 준비 못한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다.
애도哀悼의 두 글자는 둘 다 각각 비슷하게 슬프다, 가엾다, 가련하다,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다. 그 둘을 합쳐서 만든 이 단어의 뜻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아침부터 마음에 애도라는 단어가 내내 맴돌았던 하루. 이런 마음은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에 가족상을 당하고 많이 했던 생각이지만, 이러한 이별은 비록 생면부지의 타인일지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차가 망가지고 물건을 잃어버리고 어디를 다쳐도, 덕분에 차를 바꿨다던지, 다친 김에 쉬었다던지 하며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의 정서를 방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사람이 죽는 일만큼은 그렇게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해석하는 잔재주로 넘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그저 슬픔을 슬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흙탕물이 가라앉길 기다리듯이 극복하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