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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가을] 둘째날, 고궁박물관과 충렬사, 야시장

thezine 2007. 10. 10. 18:08
 여행을 다니면서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길거리에 적응이 되어야 한다. 전철을 어떻게 타고 동서남북이 어느 쪽이고 시내의 주요 목적지가 대충 어느 방향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감이 잡히면 돌아다니는 게 한층 여유가 생긴다.

 대만에 출장으로 갔을 때 이미 몇 번 타본 전철을 타고 박물관에 갈 때가 그랬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전철을 타고 길을 나섰다. 날은 덥지만 전철 안은 시원하다. 타이베이의 전철은 비교적 깔끔한 편. 게다가 곧 지상으로 전철이 올라가니까 창밖을 보며 음악을 듣는 기분이 상쾌도 하다~


두 번째 날, 메인 이벤트 '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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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을 타고 가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버스를 갈아타기 전에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100대만달러(우리돈 3200원 정도)로 고기덮밥과 어묵국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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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를 타고 도착한 대만 고궁 박물관 입구.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 햇빛이 쨍~쨍하다. 사진 속에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들은 결혼식 웨딩앨범을 촬영하러 온 사람들이다. 대만 사람들은 웨딩앨범 찍는 걸 좋아한다는데 주된 촬영 장소가 이곳 박물관을 포함해서 몇 곳 정해져있는 것 같다. 이 더운 날씨에 턱시도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하느라 참 욕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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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찾은 자료 사진

 박물관 전경. 장개석이 중국 본토에서 도망쳐서 대만에 정착한 이후 비교적 초기에 건설한 건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웅장하면서도 약간 촌스러운 느낌도 든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거의 중국 황실이 수집해온 유물들이다. 국민당 정부가 중국에서 집권할 당시에 유물들을 철두철미하게 보존하고 빼돌리는 사람이 없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옛날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건륭제'라는 중국의 유명한 황제가 처음 본격적으로 예술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자금성에 쌓인 유물들이다.

 청이 멸망한 후 국민당 정부가 이 유물들을 접수했다. 나중에는 국민당이 본거지를 옮기면서, 그에 따라 중국의 남경으로 이동시키고 남쪽으로 다시 이동시키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그 중에서 선별된 유물만 다시 대만으로 가지고 왔다고 한다. 중국의 박물관에 가봐야 볼만한 유물이 거의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고르고 고른 최상급 유물들이 대만에 와있기 때문이다.

 천안문 광장에 인접한 북경의 박물관이 너무나 실망스러운, 허접한 수준이었던 것이 이해가 가고, 한 편으론 나름 괜찮았던 상해의 박물관에서 본 건 뭘까 궁금하다. (지금 생각하니 상해 박물관도 유물은 그럭저럭 괜찮지만 규모가 작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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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lr로 셀카찍기. 혼자 여행 중이라 어쩔 수 없지. ㅎㅎ 너무 햇빛이 강해서 웃는 표정은 도저히 안나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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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받은 자료 사진

 역시나 고궁박물관(고궁=자금성)에 전시된 유물들은 보존상태도 좋고 예술적 가치, 유물 가치가 아주 높은 것들이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위 사진 속의 배추모양의 옥이다. 녹색이 포함된 옥을 어떻게 가공할까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배추 모양이 나오도록 조각한 것이다. 조각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작품. 심지어 배추 끝에 붙은 메뚜기까지 조각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유물에 관한 자료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신라시대의 금관 사진을 흔히 쓰는 것처럼 대만의 '고궁박물관'이라고 하면 흔히 저 사진이 쓰이는 것 같다. 아무튼 대만에 가게 되면 꼭 가봐야 할 곳 중에 한 곳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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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박물관 홈페이지 자료

 눈길을 끌었던 접이식 보관함. 접고 펴고 끼우고 닫고 빼고... 남자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장난감 같은 유물이다.

 볼 거리가 많은 훌륭한 박물관이지만 박물관 규모가 생각보다 작고(대충 봐도 2-3시간은 걸릴 정도이지만 유물에 비해 작다는 말씀) 동선이 불편했던 점이 아쉽다. 별 생각 없이 화살표만 따라가면서 봐도 다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리모델링 중인 전시관은 닫혀있고 동선도 제각각이라 알아서 찾아다녀야 했다.

 유물이 너무 많아서 핵심 유물 외에는 순차적으로 전시를 하는데, 현재 '타이중'이라는 도시에 신관을 건설 중이라고 한다. 타이중의 관광 활성화도 목적 중에 하나라고 한다. 어차피 이번에 타이중에 안 가봤으니 다음에 가면 새 박물관도 건설되어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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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전철역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익숙한 풍경. 교통카드에 자기 사진을 박아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나레이터모델 복장도 우리나라랑 비슷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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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적지,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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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목적지는 충렬사. 버스를 찾아보니 '홍3'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왠지 웃겨서 찍어왔는데 사진으로 보니까 안 웃긴가? -_-;
 
 아무튼.. 정류장에는 분명히 버스가 간다고 써있는데 신경질나게 안 와서 무지 오래 기다렸다. 5시에 문을 닫는다는데 시간도 많지 않아서 계속 고민했는데 고민하는 와중에 버스가 왔다. 이럴 땐 우유부단한 게 도움이 된다. ㅎㅎ 그런데 결국 버스를 탔지만 잘못 내려서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또 오래 기다려서 -_- 삽질 끝에 충렬사에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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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사는 원래 순국선열을 기리는 장소다. 묘지는 없지만 국립묘지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한 건 바로 충렬사 위병들 때문이다. 매시간마다 교대식을 한다는데 절도있는 교대식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온다.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하기 때문에 1시간만 서있어도 꽤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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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충렬사 내부를 관람하러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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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 사람들이 항일 투쟁을 하던 모습.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이 떠올랐다. 외국인들도 한국에 올 때 독립기념관에 들릴까? 아마 론리플래닛에는 이렇게 써있을 것 같다.
 
 '한국인들이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벌인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다. 오래 전에 개관한 이후 거의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이미 가본 사람이라면 또 가볼 필요는 없다. 고문 장면을 묘사한 자극적인 전시물들이 많다.'

 독립운동 같은 주제는 우리나라 사람에겐 참 진지하고 엄숙한 주제이지만 외국인에겐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과연 외국인이 어느 정도로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이해할지, 나도 잘은 모르지만 어떤 조사에서 '한국에 오래 있었더니 괜히 일본이 싫어진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도 같다.

 어쨌거나, 론리플래닛이 내 여행스타일에 맞는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문득 드는 생각에,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보는 시선으로 나도 대만 문화를 보고 있다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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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셀카를 찍는 한 방법. 큰 문에 잘 닦인 구리가 보여서 찍어봤다. 카메라 렌즈가 대포처럼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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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패를 모신 곳이다. '개국열사'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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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옆에는 '항일열사'의 위패들이 있다. 대만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의식은 과연 무엇인지 내내 헷갈리던 차에 한 가지 참고가 됐던 장면이다.

 대만 사람들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 참 헷갈리는 부분인데 이 '항일열사'패를 보고 한 가지 깨달은 건 적어도 공식적으로 국민당 정부에서는 항일 정신이 있었나보다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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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 모형인데 꽤 사실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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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렬사 주 건물 안에 있던 위패. 지금 생각하니 뭐라고 쓰여있는지 잘 봐둘걸, 아쉬운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위패에는 뭐라고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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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충렬사 내부를 돌아보고 나오니 관광객이 더 많이 몰려있다. 알고 보니 매시마다 하는 교대식보다 중요한 그 날의 마지막 교대식, 문 닫기 전에 하는 교대식이 남아있었다. 북적대는 사람들, 여기저기 캠코더와 카메라, 폰카가 난무한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패키지로 온 가족단위 한국 사람들. 추석연휴니까 그럴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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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부터는 대만 육군 의장대의 충렬사 문닫기 전 교대식(명칭이 애매하네. 관문식이라고 해야 하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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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에 '중화민국육군의대'라고 쓰여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의장대'를 '의대'라고 부르는 것 같다. 참고로 영어로는 Honor Guard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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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릿 느릿, 절도 있는 걸음 걸이가 독특하다. 의장대가 원래 그렇지만. 그리고 발목 부근에 쇠구슬 철걱 소리도 우리나라 의장대와 비슷. 걸음걸이가 재밌어서 나도 옆에서 따라했다. 다른 사람들은 친구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따라하고 그러던데 난 창피해도 재밌어 보여서 따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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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의장대의 행렬이 끝났다. 다시 돌아온 충렬사 입구의 현판을 찍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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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 진행 요원?이라고 할 만한 병사들. 아마 마찬가지로 의무 복무 중인 군인들인 것 같다. 머리도 짧고 가무잡잡하고, 친숙한 모습이다. 우리나라랑 그나마 비슷한 군인들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더군.



대만 사람이 생각하는 일본 - 몇 가지 장면들

 대만 사람들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영 이해가 안 된다. 몇 가지 장면들만 모아놓으면 다음과 같다.

-일설에 의하면 일본 식민지를 겪은 사람들은 일본을 싫어하는 편이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이후 본토에서 대만으로 넘어온 본토 출신 한족들은 비교적 그런 감정이 덜하다는 말도 있다.

-박물관에 가는 아침에, 버스 안에서 한 일본인이 헤메니까 어떤 대만인 할머니가 일본말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니혼진데스까?' 하며 친절하게, 일본어를 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표정

-대만 거리의 자동차는 거의 대부분 일본 브랜드. 토요타, 혼다, 미츠비시, 마츠다가 거의 대부분이다.

-대만의 편의점은 소수의 자체 브랜드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 뿐.

-많지는 않지만 항일운동을 기념한 유적들이 전국에 몇 곳 남아있다.

-소수민족이 사는 어떤 촌마을은 식민지 시절의 영향으로 아직도 일본어를 사용하는 부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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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적지, '스린야시장'


 '스린야시장'은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야시장이다. 워낙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대만은 전국적으로 야시장이 발달해있다. 타이베이에만 해도 몇 곳이 있는데 그 중에 '스린'이 가장 유명하다. 출장 때 구경은 해본지라 갈 생각이 없었는데 충렬사에서 타고 온 버스가 이 곳에 내려서 한 번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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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간식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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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의 게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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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도 비슷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색깔 참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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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거탑'
감자를 돌려깎아서 하나로 이어진 긴 모양을 만든 후 통채로 튀긴 간식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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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어포를 파는 곳. 배가 고팠으면 몇 개 시식도 해봤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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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타코야키. 저건 하나만 먹어도 든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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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먹물?로 만들었다는 소세지를 파는 곳. 소세지가 시커멓다.
불켜진 간판에는 TV 드라마에 스쳐지나가며 등장한 쥔 아저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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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린 야시장의 골목 모습. 안 그래도 사람이 많고 복잡한데 노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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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LG나 삼성의 광고판을 보는 정도로는 반갑지도 않을 만큼 국제화된지 오래.
하지만 김태희가 보이니까 왠지 반갑네. ㅎㅎ
옛날에 중국 사천성의 '성도'에 갔을 때 한예슬의 삼성광고를 봤을 때도 그랬다.
김태희, 한예슬 팬은 아니지만 로고보단 사람 사진이 더 반갑네.

그나저나 그 밑에는 '한국식 성형외과'라는 광고판이 눈에 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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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처음 만난 한국 사람들과 찾아간 '후어궈'집. 특이하게 국물 중에 김치맛 탕도 있었다. 먹어본 결과... 훠궈는 중국에서 먹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다. 메뉴가 다양하고 부페식으로 골라서 집어먹는 방식은 편리했다. 그나저나 모르는 사람들하고 먹으니 재미가 없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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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고 숙소에 가서 샤워하고 자고... 둘째 날은 생각해보니 단순하고 순탄하게 흘러갔네. 실제 여행을 해보면 여행기에 쓰기엔 '깜도 안되는' 자잘한 일들이 많다. 숙소 dorm에서 알게 된 한국 사람과 이런 저런 이야길 한다거나, 같은 방에 묵은 콜롬비아 출신인 2명이 손바닥만한 삼각팬티만 입고 다녀서 같은 남자지만 남새스러웠다던가 하는 것들. 그리고 이번엔 좀 귀찮아서 그런지 사진도 덜 찍은 것 같다.

 어쨌거나, 지금 생각하면 타이베이 여행은 비교적 단조로웠다. 목적지도 대충 정해져있고, 한국 사람들이 가는 곳은 더군다나 고정적이다. 모두 다 똑같이 Just go를 들고 다니고 있고, 마치 팜플렛에 도장 받아와야 되는 사람들처럼 정해진 몇 군데만 가곤 한다. 순서만 다를 뿐 가는 곳은 거의 비슷. 물론 다른 여행책자라고 해서 완전히 다르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에 비하면 일정도 매일매일 유동적이었고 여행책자보다는 현지에서 즉흥적인 결정에 의지해서 다녔던 이날 이후의 일정이 더 기억에 남는다. 새벽에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한 후 만 2일을 보낸 시점이었는데, 여행 감각이 슬슬 살아난 게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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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감각'論(론)


 여행 감각이 뭔지 정의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도 빨라지고 지각도 예민해지고, 한 편으론 틈틈이 매 순간을 즐기는 여유가 생긴다. 내가 뭘 원하는지,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어렵지 않다.

 첫날 숙소에 도착한 새벽에, 샤워도 못하고 발만 씻고, 어두운 방에서 여러 침대 중에 빈 침대를 찾아 푹푹 찌는 방 안에서 (써놓고 보니 구구절절, 좀 길다. ^^;) 느꼈던 걸 생각해보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건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일단 오긴 왔는데 어떻게 여행을 해야 좋을지 별 생각이 없었다. 일단 분명한 것들부터, 그러니까 여행책자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찍어서 일단 다녀오는 걸로 시작은 했지만 만 이틀을 보낸 후에야 감각이 살아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여행 감각'은 사실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생소한 여행지에 떨궈지면 누구나 생존을 위해, 필요에 의해 눈치도 빨라지고 기민해지기 마련. 여행감각을 일깨우는 이 과정은, 어찌 보면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이게 피곤하고 싫기만 한 사람은 여행 보내줘도 안 간다.) 쳇바퀴 돌듯 단조로운 생활을 깨고 싶은 사람에겐 갈증 끝에 마시는 맛있는 음료수처럼 달콤한 변화.

 연인들이 매일 같은 곳만 다니고 단조로운 데이트만 반복하면 지루해지고 권태롭기도 한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도 이런 변화를 가져와보면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아, 정말이지 너무 상투적이라 닭살스러울 정도지만 꼭 맞는 표현이라 그냥 쓰련다.)

 둘째날의 여행기를 쓰고 보니 뭔가 단조로운 느낌이 들어서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여행기보다 더 긴 '여행감각'론을 써버리고 말았다.

 셋째날부터가 내 기억에는 뭔가 활기차고 신선하고 새롭고 꿈처럼 몽롱하게 남아있다. 감각이 깨어난 이후의 여행기록. 그렇게 말하기엔 타이베이에서 보낸 시간들(?)이 섭섭해할지 모르겠다. ^^

 어쨌거나, To be continued...

(To be countinued 쓰려다보니 말장난을 하고 싶어졌다. to be continued, or not to be continued,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아니가 '다음에 이어질 것인가, 안 이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물론 결론은 다음에 세째날 이야기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