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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9356

전여옥, 나경원은 한국의 사라 페일린

thezine 2009. 6. 18. 16:06

전여옥, 나경원 의원


 전여옥과 나경원 의원은 진보 진영에서 가장 싫어하는 한나라당 의원으로 손에 꼽힌다. 미운 털이 얼마나 세게 박혔는지는 두 사람의 관련 기사에 달리는 리플을 보면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진보 진영의 나경원 의원에 대한 반감이 희화화되어 웃음으로 승화된 별명이 생기기에 이르렀을까.

'국민XX'로 네이버를 검색하면 '나경원'이 연관검색어로 등장할 정도


 얼마 전에 '미디어법은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입법 여부에 있어서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후로 진보의 증오를 독차지 하고 있는 나 의원은 최근에는 국민xx라는 단어와 연관검색어로 오르기가지 했다. 자해공갈 비슷한 사건 이후 활동이 뜸한 편인 전여옥 의원이 주로 온라인으로 올리는 글에만 거의 의존해서 안티를 모으는 반면 나 의원은 정조위원인지 뭔지를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TIME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Sarah Palin


 전, 나 의원은 등장 이래 꽤 활발하게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최근까지도 이 두 의원의 활약상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사람이 생각났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등장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Sarah Palin이다.

 그녀의 막내 아기가 사실은 10대 딸이 임신해서 낳은 딸이라는 그럴 듯한 소문도 있었고, 알래스카 주지사로서 직권남용 등 나름 사연이 있는 사람이다. 그간의 행적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았다면 이런 후보가 인기를 얻기 힘들겠지만 어디 정치란 것이 그렇던가.

 단지 공개석상에서 경쟁자에게(Palin에겐 오바마가 그 대상이었다.) 막말을 퍼붓고 '쟤들은 미국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로 '그들만의 열광' 속에서 그녀는 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다. Sarah Paliln이 극우보수층의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그녀의 특징이 뭔지 알기 위해서는 Ann Coulter라는 보수 필자의 글을 참고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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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me의 '영향력...100인' 기사는 특이하게 기자가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한다. 그 중에는 흥행을 고려한 필자 선정도 많은 것 같다. (레너드 디카프리오, 안젤리나 졸리, 보노, 블레어 전 총리 등등 수 많은 유명인들이 다른 누군가를 100인으로 꼽은 이유에 대해 글을 썼다.)

 위에 말한 Ann Coulter란 사람은 Sarah Palin 못지 않은 hard core 공화당파다.(꼴통이란 표현은 내 블로그에선 자제하고 싶고, 그렇다고 '보수주의'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보니 전, 나 의원이든 Sarah Palin이든 정체성을 말하기가 애매해진다.)

 Time의 올해 5월 11일자에 실린 Ann Coulter의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라 페일린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은 바로 진보주의자들이 그녀에 대해 멈추지 않고 떠들어댄다는 점이다..... 페일린이 하나님과 국가, 그리고 가정을 신봉하기 때문에 그녀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그녀는 좌파의 증오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나를 추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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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n Coulter라는 사람이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이나, 그녀가 칭찬해 마지 않는 Sarah Palin이나 모두 전, 나 의원을 연상케하는 공통적인 전투력을 보여준다. (전 의원과 나 의원의 방식은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전투 방식은 대체로 몇 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 아군이 열광하게 만드는 막말(=몸 사리는 아군을 대신해 적군에게 더러운 말을 하는 'dirty mouth' 역할) 하기
- 논리에서 살짝 비껴서 있지만 고의인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자신의 논리가 확고부동하다고 확신
- 가족, 애국, 자유, 자본주의와 같은 가치를 독창적(?)으로 해석해서 그것만이 진리라고 확신

 (Time을 읽다보니 미국식 정치용어가 익숙해져서 참고로 언급하자면) 영어로는 이런 정치인을 partisan, polarizing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당파적인', '양극화하다'의 뜻이다. (앞의 단어는 6.25 때 등장한 '빨치산'의 어원이기도 하다. 여기에선 '유격-게릴라 대원'의 의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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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견해를 달리 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잘 이끌어내는 사람은 물론 진보 진영에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진중권교수나 유시민 전 장관 같은 사람들이다. (진중권 교수의 최근 글 추천함. 신랄하고 명쾌) 진중권 교수야 원래 줄곧 아웃사이더로 활발한 저술, 칼럼 집필만 해왔지만 유시민 전 장관은 국회의원으로, 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여러 차례 튀는 행동으로 한나라당 의원의 반감을 사왔다.

 진중권/유시민은 그래도 집필을 많이 하고 주로 글로 활동해온 지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전여옥, 나경원 의원에 버금가는 전투적인 이미지로 꼽자면 이해찬 전 총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해찬 전 총리가 국회에서 차떼기당, 나쁜당으로 한나라당을 공격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돌발영상은 여전히 인터넷에서 인기다. 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의 속을 뒤집어놓는다는 점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유시민/진중권을 제치고 가히 진보진영의 당파적 정치인으로 꼽힐 만 하다. 이해찬 전 총리가 과거에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무렵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 최후 진술은 그러한 그의 전투적 이미지에 딱 어울린다. 다음은 그 진술 내용이다.

<이해찬의 1980년 비상군법회의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이 재판이 과연 정당한 재판이냐. 이 군사법정이 혁명 재판부인지 쿠테타 재판부인지를 분명히 밝혀라. 만일 이 재판이 혁명 재판부라면 혁명의 대의명분이 무엇이냐. 수천명의 광주시민을 살상하고 전국에서 수천명의 학생 시민을 구속한 혁명의 명분이 과연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라. 명분이 없는 혁명은 없다. 그것은 바로 권력을 뺏는 쿠테타다.

이 재판이 혁명재판부가 아니라 쿠테타 법정이라면 내란음모를 자행한 것은 여기 이 자리에 오랏줄로 묶여있는 김대중 선생. 문익환 목사. 이문영 교수, 고은시인, 한승헌 변호사를 비롯한 우리 24명의 동지들이 아니라 전두환일당인 바로 당신들이다.

박정희가 비참한 종말을 고했듯이, 당신들 전두환일당도 10년이 못가 망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심판이다. 남녘땅 광주등지에서 무수한 동포들이 비명에 사라져 갔는데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다. 당신들의 총칼에 죽어간 우리 동포들의 원혼이 구만리 청천 하늘을 떠돌고 있는데 내 어찌 편한 잠을 자겠는가.

이 영혼들을 위로하는 길은 이 땅을 민주화하는 것뿐이다. 나는 이 목숨을 다바쳐 이 땅이 민주화 될 때까지 싸워 나가겠다. 전두환일당인 당신들을 붙잡아 이 법정에 세우겠다. 나는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5공 당시 전두환 정권에 부역했던 한승수 국무총리나 '어린쥐' 발음을 널리 알린 이경숙 숙대총장 같은 사람들은 아마 지금도 이해찬 전 총리의 최후진술을 접한다면 표정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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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언급한 미국의 Sarah Palin은 이미 미국 대선을 치를 때부터 지지율이 낮은 맥케인을 위해 뛰는 건 포기하고 앞으로의 인기를 위한 활동만을 중시했던 터라 앞으로도 국제뉴스에서 가끔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미국 대선 레이스 당시 Palin이 보여준 저돌적이고 무지하고 당파적인 면모를 볼 때 그녀가 어느 정도로 미국 정치의 중심부에 다가갈 수 있을지를 통해 미국 보수층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몽준, 박근혜, 이명박으로 갈아타는 정치감각을 가진 전여옥 의원, 그리고 나경원 의원의 화보



 반대로 한국에서는 김구라에 비견할 만한 독설과 특유의 생존전략을 발휘해온 전여옥 의원, 그리고 사학재벌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과 국회의원 중 눈에 띄는 미모 하나로 인기를 얻고 있는 나경원 의원이 위에 비교대상으로 언급한 국내외의 정치인과 비교해서 어떤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긴 안목으로 두 사람의 정치행보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의미있는, 감동적인 일은 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