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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홍콩산책

thezine 2023. 4. 23. 15:39

홍콩산책 표지

세상 많은 책 중에 어떤 책을 내가 읽는 것은 나름 대단한 인연이다. 1년에 몇 권이나 읽을까. 항상 책을 갖고 다니고, 고르고 하지만 권수로는 그리 많지 않다. 딴지일보에서 기사로 올라온 홍콩 이야기를 읽던 중에 저자의 관점도, 깊이도 재미가 있어서 누군지 찾아보고, 책도 쓴 사람이기에 주문해본 책이다. 학문적인 바탕이 있어 깊이는 있으면서도 여행자로, 관찰자로, 홍콩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홍콩에 친구가 있는 사람으로, 홍콩에서 유학했던 사람으로 홍콩을 바라본 글이다. 홍콩의 랜드마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여행가이드책보다는, 산책 중에 마주친 건물에 담긴 이야기(같은 뜻이지만 보통은 '스토리'라고들 더 많이 부르는)를 재밌게 풀어주는 느낌이다. 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이야기는 그래도 여행에 방점을 둔 책인데, 이 책은 한정된 일정의 제약이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 한달살이? 라고 비유를 해볼까 했는데 기간으로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임.)

나름 출장으로 여행으로 이래 저래 홍콩을 적진 않게 다녀보았다. 주권 반환이 한참 지난 후에 2006년 정도에 처음 가보았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홍콩은 그때와 지금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우산 혁명 이후 통제가 더 빡세진 것일 수도 있고, 원래 수순이었을 수도 있다. 홍콩의 사업가나 상류층은 대체로 중국 정부에 순응하는 것 같다. 사업을 하는 현지인 지인이 있는데, 애국심을 고취하는 행사에 참석해서 주류 인사들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고, 정부 입김이 강한 스포츠 단체에서 감투를 쓴 모습을 보면 홍콩에서 잘 나가기 위해 어디에 줄을 서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저자가 거론한 변한 홍콩의 모습의 단면 중에,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던 홍콩 공무원 사회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있다. 홍콩은 영국식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영국은 잘 모르지만) 영국보다도 더 자유롭게, 미국보다도 더 적자생존의 사회를 이룬 곳이 홍콩이었던 것 같다. 극단적인 각자 도생의 비정함을, 각종 규제로부터의 자유로움으로 커버하며 홍콩 사회가 균형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개입이 커지고 사회가 더 경직되게 변해가면서 사회의 비효율은 늘어나고, 그렇다고 사회안전망은 확대되지도 않고, 그래서 홍콩에서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 각박해진 것 아닐까 싶다.

언론인이 길거리에서 칼을 맞고 구속되고, 서점 주인이 납치되어 사라지고, 시위 주동자가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이런 일을 실제 겪은 사람의 숫자는 얼마 안되지만, 인구 700만? 정도의 크지 않은 홍콩이라는 사회에서 홍콩인들은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회적 연대감이 높지 않은 문화임에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홍콩이라는 곳이 상징했던 화려함과 자유로움과 관광지로서의 매력과 그 모든 반짝거리던 것들은 이미 절반쯤 퇴색했고 더 많이 퇴색해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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