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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thezine 2023. 7. 18. 00:22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퍼와진 글을 읽고 호기심이 생겨서 이 작가의 책 중에 최근에 나온 듯한 책을 골랐던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책을 기준으로도 꽤 짧은 단락으로 된 글들, 한 꼭지가 3-4페이지에서 마무리되는 여러 편의 짧은 글을 모아 만든 책이다. 그리고 그 글들을 나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묶기는 했지만 크게 내용으로 구분되어있지는 않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본 정지우 작가의 글도 그렇고, 이 책에 나온 다른 글들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평소 생각을 비슷하게 표현한 것 같기도 한 글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공감이 잘 되는 글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읽다 보면 표현을 더 쉽게 해도 됐을 텐데 하는 문체이다. 딱딱하고 힘이 들어간 느낌. 그렇지 않으면 더 쉽게 읽혔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써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게 하는, 어쩌면 쉬워보이고, 내 염두에 가끔 나타나  맴돌다 사라지는 그런 생각들을 글로 표현했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이런 건방진 평가는 마치 이등별 시절의 고된 생활에서 불만이 생긴 것을 마음 속으로만 조교나 간부, 고참들을 깎아내리던 심리와 비슷한 느낌일지도.

작가는 커뮤니티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유행어, 밈, 동영상 자료를 카드뉴스처럼 여러 장의 이미지로 만든 유행 짤방들이 나도 아는 것들이 종종 등장한다. 작가도 (나처럼) 커뮤니티 폐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일상의 공기 속에 옅은 농도로 떠다니는 생각 거리들을 포집해서 짧지만 결말이 있는 글로 소포장해 묶은 이야기들이다. 문장과 문단과 챕터와 전체가 마무리를 갖추는 것, 그렇게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작가로서의 역량이자 덕목일 텐데, 그러고 보면 쉬워보이는 느낌도 느낌일 뿐, 내가 해보면 쉽지 않을 것이다. 글이란 게, 억지로 쓰면 산으로 헤멜 때가 있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을 책으로 엮으려고 하면 이 산이 아닌가벼 하는 순간이 올 것 같다. (그러다가 모로 가도 서울로 가는 순간도 올 수도 있고.)

이 책의 여러 짧은 글뭉치 중에 기억에 남는 걸 하나 꼽자면, 한국인의 문해력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인의 문맹률은 세계적으로도 낮은 편이지만, 의외로 문해력은 부족하다, 통계를 보아도 독서를 적게 한다, 그런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서, 나도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나처럼 어디선가 들은 사람들 앞에서 서로의 옅은 지식을 서로 확인하는 멋적은 대화로 이어지는 그런 지식.)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문해력에 대한 또 다른 작은 통찰이 재미있었다.

요즘 인터넷에 떠다니는 글들 중에는 마냥 웃기고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 글들도 있는가 하면, 누군가 빌런을 상정하고 다 같이 마음을 모아 손가락질을 하라는 듯이 '돌격'을 외치는 게시물도 많다. 무개념OOO(OOO= 양카운전자, 아줌마, MZ세대, 꼰대세대, 캣맘, 종교인, 정치인, 잼민이, 맘충, 노인, 있는놈/없는놈 등 수 없이 많음)을 공통의 적으로 상정하고 이미 어느 정도 가치판단을 끝낸 게시물이 많다.

이렇게 결론이 답정너인 형태의 콘텐츠가 워낙 많다 보니 숏츠/유튜브/짤방/경험담을 보면서 행간을 읽을 필요도, 판단을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문해력은 더더욱 낮아진다는 말.

이런 문제가 바로 커뮤니티에 빠져 사는 휴머니스트가 가장 개탄하는 시류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나랑 이런 부분이 작가의 생각과 비슷해서 재밌게 읽은 것 같다. 누군가 '알고 보면 이런 상황'이라던지 하는 아주 작은 약간의 맥락마저도 사라진 후에는, 화면 속의 무개념 존재로 요약된 인물만 남게 되고, 사람들은 서서히 공감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노파심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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