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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출일기

맛의 기억

thezine 2024. 6. 28. 00:42



해장국이 제주도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된 이유가 뭘까. 제주 사람들은 해장할 일이 많았을까? 제주는 소보다는 돼지가 유명한데 해장국은 소 선지와 내장이 위주다. 언뜻 이해는 되지 않는다. 이날 나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전날 소맥과 백주를 마신 것일까? 접시에 담아 나온 부추를 수북히 국물 깊숙히 쑤셔넣고 부추의 풀이 죽는 동안 열심히 건더기를 건져 먹었다. 양념장은 익숙한 고추기름 베이스가 아닌 담백하고 매운 소스였다. 식사에 국물이 꼭 필요한 입맛은 아니지만 국물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함께 해준 국물이 지금도 고맙고 그립다. 산방산 근처 강풍해장국의 내장탕이다.


밀크쉐이크를 늘 그리워하는 나란 사람... 제주에 가면 평소 자제하는 메뉴를 마음껏 고른다. 우선 쉐이크를 급하게 마셨다. 그리고 늦은 점심이기에 양을 줄이고자 프라이는 시키지 않았다. 가게에 들어서자 손님이 한 명도 없는데도 음식 냄새가 진하다. 햄버거 가게 냄새와도 조금 다른 강한 향이다. 두툼한 햄버거를 피자 자르듯 뾰족한 모양으로 곡예 하듯 먹어보니 통후추가 듬뿍 뿌려져있다. 가게에서 나는 냄새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나는 후추를 좋아하지만 후추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미리 빼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배를 덜 채우기 위해 윗쪽 빵을 조금 남겼다. 패티 위 아래에 카라멜라이즈 된 양파가 곁들여졌다. 처음 가는 수제버거집에서는 항상 더블패티 치즈버거를 주문한다. 살짝 삐뚫어진 뷰 이지만 법환 포구가 보여서 나름 뷰가 좋다. 폭우만 아니었다면 무조건 베란다 자리에 앉았을 텐데 아쉬웠다. 다음에 지나갈 일이 생기면 또 가보고 싶다. '버거 인 제주'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다.


섭지코지 신양 해수욕장을 한 눈에 조망하는 길고 길고 길고 긴 통창을 가진 어마어마한 뷰를 자랑하는 베이커리 카페였다. 아침에 거의 제일 먼저 문을 여는 곳이라서 찾아갔는데 건물도 크고 고급스럽다. 제주도에 종종 보이는 대형 카페다. 건물도 크고 깔끔하고 제빵도 나름 신경써서 운영하고 뷰도 좋고, 꽤 많은 돈을 들였을 것 같다. 유명한 곳인지 외국인들 손님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디저트보다는 식사에 가까운 빵이 많아서 나는 그나마 작은 치즈케이크와 시그니처 커피라고 쓰인 커피를 골랐는데, 커피에 너트류와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올려져 있고 커피도 느끼한 믹스커피 맛이었다. 겨울에 몸 쓰는 일 하다가 마시면 배도 부르고 당 보충하기에는 좋을 것도 같다. 케이크? 타르트?도 영 맛이 없었다. 메뉴 선정을 영 잘못 했다. 뷰가 워낙 좋아서 다시 갈 것 같긴 하다. 다만 커피나 빵은 신중하게 보수적으로 골라야 한다. 에어컨 바람 휑휑 부는데 양쪽으로 사람이 다니는 선반에 덩그러니 늘어선 빵들의 모습이 1초마다 건조해지고 먼지 쌓여가고 있었다. 다음엔 토핑이 없는 게 확실한 드립커피나 아메리카노만 골라야겠다. 빵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지 않아서 평가할 순 없고 아무튼 사진에 나온 메뉴는 영 별로였다.


제주도에는 동네마다 해녀의 집이 있다. 한 서른개 정도 될까. 내가 가본 곳은 그 중에 몇 곳 없지만 의견을 말하자면, 해녀의 집 음식은 해장국처럼 양념이 중요하거나, 중식당처럼 요리 실력이 좋아야 하는 메뉴라기보다는 신선한 재료 자체가 중요하고 맛의 전부인 곳이다. 그게 맞는 생각인지 어떤지, 아무튼 해녀의 집에 가서 전복죽이나 물회를 시키면 나는 항상 맛있게 먹었다. 이날 간 곳은 섭지코지 입구 부근이다. 아침밥으로 좋은 메뉴였다.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는 가격이다. 큰 전복을 반마리 정도 썰어넣은 것 같다.


수요일 저녁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성산/제주 동쪽이 원래부터 조용하고 썰렁한 편이라서 그랬을까, 이날 저녁 섭지코지 입구의 식당들 중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혼자 다니다보면 메뉴 선정에 제약이 더 추가 된다. 그래서 고민하다 고른 곳. 해물라면이고, 가격은 아마 만원 중후반대였던 것 같다. 작은 문어, 조개, 홍합, 게가 들어있었다. 인스턴트 라면에 재료만 넣은 것이 아니고 직접 요리한다고 했다. 미리 손질을 하고 먹는 스타일이라 문어를 자르고, 조개 껍데기를 건져낸 후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면이 불었다. 면을 먼저 먹고 해물을 먹어야 하나보다. 재료는 모두 냉동인지 조개에서 모래가 조금 씹혔다.사장님 표정이 어둡다. 회전율이 안 나오는 식당에 온 듯한 안타까운 느낌으로 가게를 나섰다.


마음 같아선 밀크쉐이크 외에도 요거트나 다른 메뉴도 더 시키고 싶었지만, 다 감당이 되는 양이 아니기도 하고, 이곳은 밀크쉐이크 위에 우유 아이스크림이 올려져있어서 아이스크림을 같이 맛볼 수 있어서 밀크쉐이크를 골랐다. 섞어서 먹는 건 아닌 것 같고, 빨대로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나중에 쉐이크를 마셨다. 태어나서 마셔본 그 어떤 밀크쉐이크보다도 훌륭하다. 가게 위치가 비교적 외졌다. 제주에서 성산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리기 좋다. '어니스트 밀크 본점'이라는데, 분점이나 지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기 얹어진 아이스크림 만큼 작은 컵에 담아서 집 근처에서 3천원에 판매하는데, 저 밀크쉐이크는 6,800원.


제주는 논농사를 짓지 않아서 일까, 당근, 메밀, 보리 같은 밭작물이 유명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제주도만의 콩국수 맛집들이 있다. 조천이라는 곳은 제주에서 동쪽으로 함덕해수욕장을 향해 가다 보면 나온다. 조천의 통일가든은 1년에 5개월인가밖에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칼국수집에서 여름에만 콩국수를 판매하는데, 이곳에서는 콩국수를 판매할 때만 문을 연다. 블로그 광고가 판을 치지만, 맛집은 조금 검색해보면 이내 알 수 있다. 각기 다른 소스를 통해서 거기 맛있다는 이야길 들으면 신뢰도가 확 올라간다. 이 가게는 출퇴근복장을 한 현지 도민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 제주에서 내세우는 맛집 표현 중에 하나가 '도민맛집'이다. 이곳도 도민맛집 인증마크는 따놓은 당상이다. 면 색깔이 특이한데 브로콜리를 넣었다고 한다. 혀가 둔한 편이긴 한데, 면에서 브로콜리 맛이 느껴지진 않는다.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는 검은콩국수다. 검은콩만 넣은 게 아니고 검은깨도 넣었다. 오히려 향은 검은깨 향이 더 튀는 것 같다. 맛있게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왔다. 칼국수만큼이나 콩국수 역시 함께 나오는 김치가 중요하다. 칼국수 콩국수 맛집에 김치가 맛없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곳 김치도 개성도 있고 맛도 좋았다. 다만 이곳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조천면장국수의 콩국수가 내 입맛에는 더 맛있었던 기억이다. 유명하기로는 이곳이 더 유명한 것 같다.



죽죽죽 제주도에서 다녀온 곳만 이야기하다가, 식당 글 쓰는 김에 회사 근처 물회 후기도 써본다. 회사 근처에서 나름 동네 맛집 정도는 되는 회집이다. 물회 특으로 주문했다. 시원하고 맛있고, 들어간 해물도 신선하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면 더 입맛에 맞겠다. 제주도와 청담 물가를 비교하면 안되겠지만 '특'자가 붙은 것 치고는 해물의 양은 살짝, 아주 살~짝 아쉽다. 양념이 상당히 맵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여긴 맵긴 꽤 맵다. 오후에 속이 좀 쓰렸다. 맛있게 잘 먹고 우유로 속을 달래던가, 아니면 양념을 숟가락으로 너무 많이 퍼먹지는 않는 것도 방법이다.


호평은 아니면 굳이 상호는 밝히지 않았다. 독서평을 쓰는 것과 같은 이유로 식당에 대한 글도 쓰기로 했다. 아무런 글도 쓰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읽은 글이 어떤 글이었는지 아무런 단서도 없이, 매직잉크로 써놓은 편지가 지워진 것처럼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질 때가 많다. 책을 읽은 후에 감상을 남기듯, 평소 자주 가지 않는 곳에서 자주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은 후에도 감상을 남기려고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불완전한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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