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연휴의 끝날, 집의 의미에 대해서 본문

잡담끄적끄적

연휴의 끝날, 집의 의미에 대해서

thezine 2008. 2. 10. 01:2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설날 연휴 내내 날씨는 맑았다. 아쉽게도 몸상태가 안 좋아서 고생을 했는데, 그렇지만 않았다면 훨씬 더 즐거웠을 며칠을 보냈다. 역시 뭘 하든 체력이 중요하다. 잘 놀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나의 지론을 또 확인했네.

 송정 바닷가에서 태양을 찍었다. 여기저기서 햇빛을 많이 봐서 며칠 새 조금 타진 않았을까.

 이번엔 몸이 안 좋아서 고생을 했지만 그 와중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놓치는 것이 아쉬웠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몸만 괜찮았다면, 직접 발로 걸어다니면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것들.

 집에도 다녀오고 군생활의 추억이 남은 곳 부산도 다녀왔다.

 돌아다니고 구경하는 걸 좋아하지만 집에 왔을 때 편안함 역시 그 못지 않게 좋아한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집을 나서는 '명절'을 생각하면서, 어딜 가도 결혼하라는 이야길 들으면서, 몸이 아픈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고생을 하면서, 집에 대한 생각을 몇 가지 해봤다.

 서양에서 말하는 집(家)은 house라는 '건물이나 공간'의 개념이지만 동양에서 말하는 집은 가족과 같은 '관계'를 주로 의미한다고 했다. '집 밖'을 돌아다니면서 '나의 가족'을 만나고 다른 '가족'도 만나고, 덤으로 몸이 아파 따뜻한 '방 구들'(방구의 복수형으로 오해할까 싶어 띄어쓰기함)을 그리워하다보니 '집'의 몇 가지 의미 모두가 절실하게 다가왔다.

 피곤한 몸을 누일 따뜻하고 개인적인 공간도 필요하고 세상을 같이 살아갈 가족이라는 추상적인 울타리도 인간에겐 절실하다. 유교에서 말하는 오륜 중에 부부유별, 부자유친,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장유유서도 가족에 대한 것들이다. 그러니 동양적인 관계를 위주로 봤을 때 오륜의 그 절반은 가족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2개 중 군신유의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어졌으니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관계의 중심은 가족이다....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그럼 나머지 한 개는 뭐였지?' 하고 기억을 더듬고 있을 사람을 위해 덧붙이면, 오륜의 나머지 하나는 '붕우유신'이다.)

 더불어 날이 춥고 몸이 아프면 따뜻한 방이 얼마나 고마운 공간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은 어렸을 때, 울산에 이사간지 오래지 않았을 때였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집에 다 와서 갑자기 배가 아팠다. 화장실은 급하고 날씨도 추운데 하필이면 주머니에 열쇠가 없을 줄이야. 다른 식구가 곧 왔었는지, 오던 길을 돌아서 교회까지 걸어갔는지, 내가 어떻게 그 상황에서 구원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절실히 느꼈다. 배아프고 추운데 집이 없으면(있어도 들어갈 수 없으면) 무지 서럽다는 것을.

 물론 집은, 가족은 화장실과 온돌 이상의 것들을 제공해준다. 그저 단적인 예일 뿐. ^^



 아무튼, 연휴는 이제 끝나간다. 회사원에겐 그저 연휴는 연휴지 주말은 따로 구분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구민회관은 토요일에 문을 연다고 했었다. 평소에 퇴근 길에 쫄볶이를 사먹곤 하는 분식집도 오늘 집에 들어오는 길에 보니 문을 열고 있었다. 공식연휴는 수목금일 뿐, 주말은 평소같은 주말로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 비하면 아직 만 하루의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연휴 동안 나의 집이 어딘가 생각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이 원룸방이 나의 집이다. 새로 지은 후 내가 지낸 날이 다 합쳐도 열흘 정도밖에는 되지 않을 울산집도 어딘가 불편하고, 다 합쳐서 만6년 정도 살았던 외할머니댁도 마찬가지로 편하지 않다. 이사한지 이제 한달 남짓된 이 원룸방에서 나는 가장 잠을 잘 잔다. 집에 누가 오거나 어디에 가서 잘 땐 늘 잠을 별로 못잔다. (이것 역시 여행을 좋아한다는 인간치곤 이상한 일면이겠다.)


 여기저기 돌아다닌 덕에 집과 가족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딱히 결론 같은 게 있는 생각들은 아니었던 터라 결국 글도 나열식으로 끝나버렸다. 요리로 치자면 랍스터나 스테이크처럼 메인디시의 덩어리가 분명한 글이 아니라 버무려놓은 샐러드처럼 어딜 집어먹어도 비슷한 글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표현은 나열식의 글을 뭐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또 다른 수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결론은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생각은, 집에 오니까 너무 좋다는 것! 이제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누가 방해라도 한다면 폭발해버릴 것 같다. 돌아다니는 내내 나의 침대가 너무 그리웠다. 헐값에 샀지만 넓기도 넓고 쿠션이 훌륭한 나의 매트리스여~ 어서 샤워를 하고 저 매트리스에 등을 대고 누워야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잡담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난감'  (1) 2008.02.22
석화(굴) 먹는 법, 그리고 어울리는 술  (2) 2008.02.12
연휴 첫 날  (0) 2008.02.06
How can I keep from singing?  (0) 2008.02.04
노량진파 킹크랩  (0) 2008.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