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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에 얽힌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

thezine 2008. 7. 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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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매년 5월쯤 하던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검사를 받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이번엔 조금 늦어서 며칠 전에 건강검진을 했다. 건강검진을 할 때는 치과에도 가는데 건강검진 때문에 가는 경우에는 스켈링을 싸게 해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간 김에 엑스레이를 찍고 사랑니도 뽑기로 했다.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한 첫 여름이었나, 치대 본과 4학년인 '원내생'들에게 싸게 사랑니를 뽑을 수 있었다. 원내생인 친구가 뽑으러 오라고 해서 간 건데, 오른쪽 위 아래만 뽑고 왼쪽은 기약 없이 뒤로 미뤘던 것을 이번에야 뽑게 됐다.

 그때도 엑스레이를 찍어보곤 아랫 사랑니가 누워있다고, 뽑기가 조금 번거롭다고 했었다. 오늘은 왼쪽 윗사랑니를 뽑았다. 마취를 하고는 그냥 집게로 뽑아도 뽑히는 걸 보면 의사의 기술이 좋은 건지, 이빨이란 게 씹는 거에는 잘 버텨도 뽑는 거에는 잘 못 버티는 건지.

 위의 엑스레이 사진은 내 사랑니와 99% 똑같은 상황이다. 아랫놈이 누워있어서 옆놈 옆구리를 망가트리고 있다. 근묵자흑이라는 말처럼, 삐뚫어진 녀석 옆에 있으면 이래저래 안 좋은 영향을 받는가보다. 덕분에 예상치도 못한 대공사(?)를 하게 돼서 목돈이 나가게 생겼다. 옆 어금니는 신경치료를 한 후 금으로 씌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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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젖니가 빠진 후에 28개의 이빨이 자라고, 20대를 전후해서 자라나는 4개의 어금니들을 우리나라에선 꽤 낭만적인 이름인 '사랑니'로 부른다. 영어 문화권에서는 한 사람이 성인이 되어 지혜로와지는 20대 무렵에 나는 이빨이라 해서 wisdom teeth 라고 부른다. 문득 중국에서는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나 궁금해서 찾아봤다.

 중국에서는 사랑니를 지혜라는 뜻의 '지智'자와 치아의 '치齒'자를 써서 '지치智齒'라고 부른다. 치과 용어들이 모두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도 '지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원래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몇 백년 전 수명이 아주 짧던 시절에는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나 나오는 이빨'이기 때문에 '부모를 모르는 놈'이라는 뜻으로 '오야시라즈'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영어 표현을 받아들여 '지치'로 바뀌었다.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든 일본, 그리고 그것을 수입해서 사용한 한국과 중국의 역사. 집게로 우직~ 하는 소리를 내며 뽑힌 사랑니에도 그 역사가 묻어있었다. '보통 여드름'을 의학용어로 '심상성 좌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치과 의사들은 사랑니를 '지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굳이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런 관행이 쉽게 바뀌지 않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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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검색엔진인 '바이두(百度)'에서 사랑니를 검색했더니 '20대 전후에 나오는 이빨 어쩌구'하는 일반적인 정보에 더해서 아래 정보가 나왔다. 일반 검색결과가 아니라 '바이두백과'라고 하는 위키피디아 같은 기능에 소개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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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영화 [사랑니], 번역명 Sarangni, 감독 정지우, 주연 김정은...." 이런 영화가 있었던가? 한창 중국에서 지낼 때라서 더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검색 엔진에서 사랑니를 검색했는데 이게 나오는 걸 보면 평가가 어쨌거나 한국 영화도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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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회사에서 중국 사람과 이야길 하다가 내일 뭐 하냐는 얘길 했다. 친구 아기의 돌잔치에 간다고 이야기하면서 중국에서는 아기의 첫 생일을 기념하는 풍습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 친구의 말로는 중국에서도 아기의 첫 돌에는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연다고 한다. 그리고 가까운 친척 같은 경우에는 금목걸이를 선물로 준다고 한다. 한국의 금반지와 품목은 다르지만 금제품을 준다는 상징적인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중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난 후 1개월이 되는 날도 간단히 기념일로 챙긴다고 한다.

 '돌'에 해당하는 중국어를 찾아보니 '만저우쑤이滿周歲(Man Zhou Sui)'라고 부른다. 해석하자면 '1주년을 가득 채우는 나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중국은 워낙 넓어서 '중국은 이렇게 한다더라'고 획일적으로 말하기가 어렵다. 그 점을 감안해서 말하면,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우리나라의 돌잔치처럼 아기에게 붓이나 책, 물건을 집게 만드는 돌잡이를 한다고 한다.
 
 일본식 돌잔치를 검색해보니 돌잔치를 일본 음식으로 해준다는 광고만 걸려나온다. -_-; 얼결에 본 것 중에는 미국의 어떤 사람이 자기 아기의 첫돌잔치는 과자와 음료수, 과일, 핫도그 따위를 차린다고 하는 내용. 많이 찾아보진 않았지만 일본과 미국에는 돌잔치 개념은 따로 없는 듯 하다.

 돌잔치의 유래는 위생이 안 좋았던 옛날에 아기들이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1년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고도 한다. 1920년대의 한국인 평균 수명이 겨우 30대 초중반이었던 건 사람들이 서른살 때쯤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어린 아기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영유아 사망률이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출산율이 낮아지고, 아기가 둘 이상인 집에서는 둘째부터는 돌잔치를 따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상황은 여러 면에서 다른 셈이다.


 돌잔치를 중국에선 뭐라고 할까 중국인에게 물어보면서 드는 생각이, 중국에서 중국어를 공부할 때는 돌잔치에 대해서는 궁금해해본 적이 없다는 점. 언어는 결국 생활의 밀접한 반영反映이다. 그때 겪어볼 일이 없고 관심도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우연히 교재에서 접한 내용이 아니라면 배울 기회가 드물다.

 그런 면에서 영어든, 중국어든 어느 수준까지는 일반적인 공부를 통해 배워 도달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과정은 살면서 조금씩 배워나가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우연하게 사랑니와 돌잔치에 대해 알게 된 것처럼 어떤 날은 특별히 새로운 것 없이 지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흥미로운 것을 배우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단편적인 지식을 백과사전처럼 수집하는 방식이라 깊이를 더하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나름 바람직한 취미 생활(?)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