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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람

thezine 2009. 1. 14. 23:09

강변


  지난 일요일, 이사 후 처음으로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 근처의 고수부지(?)는 여의도쪽이나 다른 넓은 곳에 비해 좁은 편이다. 위에 나오는 것처럼 강변에 여유공간이 많지 않다. 오른쪽은 강변북로 서쪽으로 가는 차들, 왼쪽에 고가다리 같은 곳은 강변북로로 동쪽으로 가는 차들이 지나다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포장도로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사진에 나온 것처럼 가끔은 '순찰' 표시를 등에 붙인 경찰이 순찰을 돌기도 하나보다.




추웠던 날. 강물이 얼었다.


 상해에서 월세방을 얻고나서 한동안은 틈틈이 동네 산책을 다닌 생각이 난다. 그래봐야 반경이 넓지는 않았지만, 부근에 이마트나 까르푸에 가는 다른 길을 찾아보기도 하고 가까운 세탁소 따위가 어디 있나 찾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 시간이 나지 않는 게, 이사온지 한 달이 다 되가도록 이날 강변을 살짝 돌아본 게 전부다. 실은 더 멀리 갈 생각이었지만 이날 강바람이 어찌나 차던지 도저히 멀리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친 김에 생각나서 찾아보니 상해에서 1년 살았던 자취방에 이사가던 날의 사진이 있다. 난 그 와중에도 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사진을 보면 짐 싸느라 고생한 게 생각나는데 그래도 카메라 만큼은 항상 갖고 다녔다.

 중국에는 일반 택시처럼 미터기가 달린 소형 화물차가 있다. 미리 예약을 하고 부르면 용달보다도 작은 화물차를 부를 수 있다. 물론 택시보다는 요금이 비싸다. 그 차에 내 짐들을 싣고 새 집으로 이사가는데, 거리가 가까운 편이라 그랬던가... 화물칸에 앉아서 갔다. 화물칸의 문은 닫았지만 어째서였는지 그 차는 지붕은 열고 다닐 수 있었던 지라 저렇게 지붕을 열고 새로 살 집으로 갔다. 생각해보면 저렇게 하늘만 쳐다보며 길을 가는 것도 독특한 느낌이었다.

 저 낡은 건물은 분명 상해 외대와 츠펑루에 내가 살게 되었던 그집 사이에 있던 건물. 저 건물 앞에 보도 블럭 하나는 고정이 되지 않아서 비가 온 날 그 블럭을 밟으면 물이 튀어 신발을 버리곤 했었지.

  그때 이사간 집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딱 1년만 살았던 곳인데 역시나 기억이 생생하다. 상해의 여느 거리가 그렇듯 은근히 통행량이 많고 매연도 먼지도 많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창문을 열면 나무가 많이 보였다. 보기엔 괜찮은 섀시 창문 같지만 실제론 아귀가 맞지 않아서 찬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창문이었다. -_- 겨울이 되보니 방도 춥지만 거실이 유난히 추워서 입김이 나올 정도였는데 찾아보니 저 창문은 잘 닫아도... 저 집 추웠던 생각을 하니 지긋지긋하다. 단열이 잘 되는 한국의 아파트가 새삼 감사하다.

 겨우 1년(?)을 살았을 뿐인데 이렇게 생각이 날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한달 전까지 살았던 낙성대의 원룸은 1년도 채우지 못했음에도 이래저래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을.

 이 집에 들어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집에선 얼마나 살게 될까,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삶이 펼쳐질까, 어떤 추억이 쌓이고 난 여기에 살면서 어떤 사진을 찍고 다닐까 하는 생각.

 

 언젠가 밤 늦게 창밖을 보다가 찍은 사진이다. 밤에 창밖을 보면 아주 적막하다. 강변북로는 늘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데, 나도 이 집에 이사오기 전에 여러 번 차를 타고 이 길을 지나쳤었다. 강 건너편에는 추석이나 명절이면 합창단 사람들과 불꽃놀이를 했던 '여의나루'역이다. 그때 강 건너편에 보이던 '번개표' 빌딩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그 빌딩은 금호전기의 건물인데, '번개표'라는 브랜드가 구시대적이란 느낌이 들었던 건지, 선명하고 크게 빛나던 번개표 간판을 떼어버렸다.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지만 무의식중에 지난 날의 랜드마크로 남아있었는데 이젠 사라져버렸다니 아쉽다.

 그때 친구들과 종종 놀러갔던 곳에서 보이던 이곳에서 살게 될 줄이야. 사람의 운명이란.



 저 사진을 찍을 때 지나가던 차들은 각기 추운 겨울밤 귀가를 서두르던 사람들일 것이다. 무관심하게 그저 갈 길을 가는 차들을 하루에도 여러 대 지나쳐보내는 이 곳은 어쩌면 도시 사람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일 수도 있다. 스쳐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로 아무런 인간적인 관심이 없이, 그렇게 어울려서 살아가는 대도시의 생활 말이다.

 이 날도 물론 날씨가 무지 추웠다. 창문을 열고 사진을 찍고 나니 삼각대가 얼음장처럼 차가와져있었다. 창밖을 볼 때면 창문에 먼지를 닦아야 굳이 찬바람 맞으면서 창문을 열지 않고도 창 밖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 나눠준 종이를 보니 베란다 창문 청소는 가급적 비오는 날에 하란다. '어이쿠 비온다, 서둘러서 창문 문지르자' 이렇게 하란 건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오다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