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제대 8주년 - 한국판 제대군인 원호법을 생각해보며 본문

잡담끄적끄적

제대 8주년 - 한국판 제대군인 원호법을 생각해보며

thezine 2008. 12. 16. 21:08

MRF(Mobile Reaction Force)의 험비(HMMWV)옆에서


 사진을 한 장 골라봤는데 마침 2000년 12월 2일에 찍은 사진이다. 제대를 며칠 앞두고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동기와 함께 사진을 찍었었다. 어제 12월 15일로 제대한지 만 8년이 됐다. 올해 예비군 8년차, 훈련은 없이 예비군에 소속만 된 채로 1년을 보냈고 이제 며칠이 지나면 '민방위'가 되는 것 같다.

 요즘 제2의 대공황이니, 혹은 그때보다 더 심한 위기가 닥쳤느니 하는데, 미국은 심각한 대공황에 대해 루즈벨트 전에 후버 대통령 때부터 시작한 New Deal 정책과 함께 곧 이어 발발한 2차대전 덕분에(?) 경기를 호경기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big 3(포드, GM, 크라이슬러)가 휘청거리는 이유가 실은 당시 엄청난 호경기 덕분에 아무 자동차나 만드는대로 팔려나가던 시절에 과도하게 후한 복지 정책을 시행한 뒷감당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 시절과 요즘 경제 위기가 여러 가지로 비교가 되고 있긴 한데, 요점은 경기에 큰 도움이 될 정도로 돈을 많이 쓴 덕에 전쟁에서 복무 겸 일을 했던 미군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자 이들을 위한 후속 지원이 필요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직업훈련, 교육, 생활비 보조 등과 같은 정책을 포함한 '제대군인원호법(영어로 G.I. BILL인데 번역을 '적극적으로' 한 것 같다.)'이라고 부르는 법안을 만들었다.

 물론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군들과 한국의 의무복무자들의 상황은 다르다. 비교하자면 명칭이 비슷해서 예를 들었는데 우리나라에선 제대군인을 위한, 정확하게 말하면 군복무에 대한 정당한 보상체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에도 글을 썼지만 극소수의 사람만이 혜택을 보는 공무원시험 군복무 가산점 같은 허접한 제도 뿐.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군대에 간 사람들의 착취의 수혜자가 되고 있다.

 이는 달리 보면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졌지만 신체적인 장애나 성별 때문에 본의아니게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정부 역할의 실패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남들은 가는 것이 당연하고 본인은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기존의 군복무 체계를 바꾸던, 군복무 현역 등급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봉사 제도를 만들던, 아니면 면제자가 일정 기간 병역세를 부담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의무군복무가 불가피하다면 사회적 봉사의 짐을 나눠지는 것이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

 여성의 출산을 병역에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주장은 말하면 '비논리'에 속한다. 출산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출산 및 육아 지원이 부족한 문제는 별개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점, 병역면제자가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같은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2개의 문제를 놓고 둘 다 해결하지 말자는 생각이 아니라면 두 문제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반 우스개로 소리로, 출산하지 않았다고 감옥에 가는 일도 없다.)


 -=-=-=-=-=-=-=-=-=-=-=-=-=-=-=-=-=-=-=-=-=-=-=-=-=-=-=-=-=-=-=-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우선 사회적인 제도의 완성도를 꼽고 싶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던 시절이라면 이런저런 사정으로 병역제도를 도입하고 그것이 불합리하게 운용되는 것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기존의 제도에 대해서 잘못된 부분이 없었는지 돌아보고 '당연한 것은 없다'는 태도로 연구해보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한다.

 예비군이란 제도도 알고 보면 문제가 많고 병역 방면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신경써야 할 문제들이 아주 많다. 물론 사람들이 내부적인 갈등과 문제에만 신경쓰다보니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는 기대를 버리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