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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는 겨울

thezine 2008. 12. 6. 02:41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다.

 어제(목요일 12.4) 저녁부터 몰아치는 찬 바람 때문에 아무 문이라도 문만 보이면 열고 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이 겨울지만, 역시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 어릴 적에 서울도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던 일이 있었다. 눈이 펑펑 와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날 그 넓은 길에 사람이라곤 볼 수 없었던 을지로 큰 길을 걸었던 기억처럼, 다락방의 먼지 쌓인 상자를 열어볼 때와 같은 기억들도 되살아난다. (글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때 함께 을지로를 걸었던 녀석은 한두살 어린 남자 후배였고, 더군다나 연애와는 거리가 먼 청소년 시절이었다.)

 겨울은 춥고 고독하지만 사람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썼던 신영복의 글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감옥은 겨울은 여름 보다 나았다고, 서로 붙어 자며 온기를 나누던 겨울과 달리 서로가 열덩어리에 불과한 여름이 끔찍했다고 하던 말이 그 예이다. 겨울과 냉기는 사람들을 서로 그리워하게 만든다. 지겨웠을지도 모르는 집구석인데, 현관문을 열었을 때의 온기가 소박한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이 겨울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말하길 '그때는 순수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땐 참 서로 허물이 없었던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처음 했던 그날 이후의 기억들도, 따져보면 애틋하긴 마찬가지다.

 옛날 어린 시절의 풋사랑이, 흙으로 쌓아올린 흙담처럼 무너져내리고도 또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은 그 사랑은 잊어버려도 사랑했던 자신의 모습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이란 감정은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또 다른 형태의 이기주의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진정한 이타주의였다면 이별도 그다지 아프지 않을 것이다.

 '왜 나는 그때 가졌던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일까?' 하는 자기 연민은 일종의 취미 생활과도 같다. 평소에는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습관적으로 커피 믹스를 타서 마시지만, 가끔은 벤치에 앉아 1-2천원짜리 아메리카노라도 마시고 싶은 날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순서 없이 늘어놓았는데,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겨울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겨울 바람을 피해 몸을 녹이는 즐거움이 없다면 겨울의 매력은 대부분 사라져버릴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이 상쾌해서 여름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는 걸 보면 여름과는 확실히 다르다. 난로나 온돌바닥이 주는 따뜻함은 처음엔 손끝부터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가슴까지 스며든다. 하루를 잘 보냈나 하는 것을 가장 일상적인 고민으로 안고 사는 성격이지만, 그래서 언제고 특별하지 않았던 날이 하루라도 있었는가 싶긴 하지만, 이번 겨울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겨울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