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ZINE

있어야 할 자리, 몸에 맞는 옷, 걸어야 할 길 본문

잡담끄적끄적

있어야 할 자리, 몸에 맞는 옷, 걸어야 할 길

thezine 2010. 9. 19. 03:18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글을 쓰긴 하지만, 그놈의 글들이 시사적인 내용에 주로 머물게 되서 그런 것도 있겠다. 글을 쓰는 재미가 예전 같지 않은 이유 말이다.

 오래전, 대학 시절! (그렇다~ 대학시절은 '오래전'인 것이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면 샤워(라기보단 물바가지로 씻는 거... 뭐라고 하면 좋을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마치 가벼운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정해진 수순에 따라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곤 했다. 샤워 후, 잠옷, 형광등 끄고 스탠드 불빛만, 글 쓰고 바로 자야 하는 늦은 시간.

 그렇게 글을 썼고, 어떤 사람은 내 글에서 그런 느낌이 묻어난다고 했다. 칭찬도 비판도 아닌 그냥 느낌을 이야기해준 건데 난 그 말이 좋았다. 늦은 밤에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만 켜놓고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는 모습이 연상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외할머니댁의 좁은 방에서 잡다한 내 짐들에 둘러싸여서, 지금 나의 본부인(어차피 부인은 한 명 뿐이지만 괜히 나도 이 말을 써보고 싶었다!)이 보면 당장 내다 버리라고 할 옷을 잠옷으로 입고 글을 썼지. 그 누군가의 말처럼 늦은 밤 스탠드를 켜놓고 샤워를 마친 정갈한(?) 매무새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썼다. 스탠드 불빛이 아니면, 방 전체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으면, 사물이 또렷이 보이는 햇빛이 뜨면, 진짜 글을 쓰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싼 노트북도 200만원씩 하던 시절이었고 내 컴퓨터는 책상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CRT 모니터에 연결된 데스크탑이었다. 지금은 출장에 가져갔던 회사 노트북이라는 점만 빼곤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작은 불만 켜놓았고 시간은 어느새 3시다. 회식을 거하게 해도 최대 2시 전에는 집에 들어왔다. (물론 2시도 꽤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 이렇게 맘 편하게 이시간까지 이렇게 있었던 적이 없다.

 휴가와 연휴를 합쳐서 7일씩이나 쉰다고 생각을 하니 맘이 편해진 것 같다. 주말 중에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때도 많았으니까. 이렇게 다음날 뿐 아니라 다다음날, 다다다음날...도 늦게 자도 괜찮아! 라는 느낌이 드는 건 정말 얼마만일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보고서 쓸 게 있어서 집에서도 회사 노트북을 두드리곤 하지만 아무튼. 역시 노트북은 결국 어차피 일 더 할 거 집에서 하라는 회사의 배려 아닌 배려인 것이다.)

 그래선지 어째선지, 아무튼 3일째 늦게 자고 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니까, 그래서 어제도 오랜만에 편하게 글을 썼고 오늘도 이러고 있다. 나는 옛날부터 여건이 되면 늘 그랬던 것처럼 야행성 짐승이 체질에 맞는 것 같다. 어떤 때는 하도 밤낮이 바뀐 채로 생활을 하느라, 은행에 볼 일을 보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반지하에서 창문에 담요를 스테플러로 박아버리면 가능한 일이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어째 글을 써도 건조한 글만 써질까, 왜 옛날에 글을 마무리지을 때의 그 사소한 보람 같은 느낌이 없을까, 내 글은 늘지 않는 것 같다.... 등등.
 
 이번 추석 연휴 첫 며칠을 보내보니 그건 모두 이놈의 사회 생활 때문이었다. 주말에 피곤함을 참고 운동을 하거나 부산에 다녀올 수는 있었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여유 있게 쓰고 싶은 글 쓰는 데 1-2시간을 쓰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정신적인 여유는 노력한다고 생기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정신없이 업무가 몰릴 때 한 숨 돌리며 잠시 안마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15분짜리 종합코스를 누르고 긴장을 푸는 건 가능하지만, 똑같이 15분을 쉬어도 그 시간에 시를 쓰라고 하면 쓸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간에, 새벽 3시가 되어 창 밖에 한강에는 가로등도 거의 꺼졌고, 요즘 새로 설치하고 있는 조명등은 12시도 전에 진작 꺼졌다. (집 앞에 한강 야간 조명이 보기 좋긴 하지만, 몇 명이나 볼 수 있을까, 조금 아깝긴 하다. 한강변 대부분에 강변공원을 제외하면 유동인구가 많은 공용공간은 없고 오직 아파트들 뿐이니 말이다. 아 그런데 난 왜 이렇게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어했으면서도 이런 코멘트를 쓰고 있는 건지.)

 새벽에 스타크래프트를 하느라 늦게 잘 때는 뭔가 모를 죄책감(?)에 맘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늦게 잘 때는 다음날 일어날 일이 걱정이 될 지언정 후회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직장에 다녀야 해서, 일을 제대로 하려면 신경이 많이 쓰여서,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니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서로 감안을 해야 해서... 이래저래 자리에 앉아서 작은 불만 켜놓고 편하게 글 쓰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워졌다. 근데 그건 내가 원하는 생활이 아닌 건 맞다는, 작은 확신 같은 게 드는 밤이다.

 지금 하는 일도 나름 재미가 있고, 꼬박꼬박 월급 꽂히는 울타리에서 한 번 벗어나면 RISK가 엄청 큰 나라에 살고 있기도 하고,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계획들도 있고... 그래서 한동안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주욱~은 아닐 거라는,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밤 다시금 든다. 그렇게 주욱~ 살아야 한다면 인생이 너무 아까울 것이 뻔하다.



'잡담끄적끄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독 초기 증세  (4) 2011.01.17
황무지 위의 럭셔리 매장 Prada Marfa  (4) 2011.01.09
최고 유명한 삼계탕집 '토속촌' 방문기  (0) 2010.06.20
bookish  (0) 2010.06.14
꿈 이야기  (2) 201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