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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라이프

thezine 2014. 5. 11. 02:34

 어릴 땐 혼자 깨있는 일이 생기면 외롭고 싫었는데, 중학생 무렵부터 밤에 늦게 자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방학이나 긴 연휴에는 리듬이 완전히 바뀌곤 했다. 가장 큰 취미는 동생 친구네 비디오 가게에서 공짜로 비디오를 빌려보는 일이었다. 밤새 보고, 졸리면 자고, 눈 떠지면 밥 먹고, 또 영화 보고. 그 다음으로 많이 한 일은 아마 편지 쓰고, 일기 쓰고, 책 읽고 하며 밤을 보낸 것 같다.


 한 방에서 지내던 나의 동생들은 어쩌면 자는데 불이 켜있어서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스탠드 불빛도 밤에는 꽤 밝으니.


 그렇게 밤을 새면서 뭘 했나 생각해보면, 공짜 비디오 외에는 다 활자 매체였다. 용돈으로 사느라 심혈을 기울여 고른 책과 집에 있던 책 읽기, 친구가 보낸 편지 읽기, 거기에 답장 쓰기, 두꺼운 노트에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에 대한 잡문을 끄적이고 릴케(시인), 헤르만 헤세(작가), 철학자, 문필가의 유명한 문구를 베껴 적어넣기도 했다. (부모님댁에 가게 되면 그 오래된 노트들을 꺼내서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며칠 전부터 했다.)


 내가 2014년도에 그런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다면 어땠을까. 나의 올빼미 생활 첫 걸음은 1992년 정도. 스마트폰은 커녕 컴퓨터도 로망으로만 간직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잠시라도 시간이 빌 때면 사람들은 뉴스 읽기, 카톡, 각종 까페/커뮤니티 들락거리기, 모바일 게임에 몰두한다. 지하철에서 보면 혼자 가는 사람들을 보면, 전화기를 붙들고 뭔가를 하거나, 잠자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냥 멍 때리거나 책 보는 사람도 소수 있긴 하지만.)


 92년도에 나는 친구들에게 징하게 편지를 쓰고 받았고, 책 읽기, 영화 보기와 잡문 끄적이기에 빠져 살았다. 그런데 내가 20년 늦게 태어났다면, 그 시기에 그것들 대신 온라인 게임과 스마트폰에 빠져 살았을 수도 있었겠다.그 결과가 꼭 나빠졌으리란 법은 없지만, (물론 페이스북을 만든 주커버그나, 오늘날 한국 IT 산업 다 해먹은 IT 창업 세대처럼 되진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라는 사람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겠지.


 내 아이가, 둘째 아이가 사춘기를 보낼 무렵 그 아이들은 어떤 취미와 오락에 몰두하고 있을까. 나는 아이들에게 글 읽고 글 쓰기와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설득해야 할까? 아이들 동년배들이 즐기는 것과 조금 다른 취향을 권하는 것 자체는 가장 어려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면, 그 점이 가장 어려운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작지만 나름 다양한 여러 가지의 책을 갖추고 있었던 동네 서점, 그 시절 이후로 나의 친구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스탠드 불빛, 나의 작은 놀이터였던 빈 노트, 즐거움과 환상이 담겨 있던 비디오 테이프... 문득 그립구나. 지금 중고등학생들은 20년쯤 후엔, 갤럭시와 아이폰 시리즈를 그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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