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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서평] 미국 민중사 1, 2권

thezine 2007. 5. 2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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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민중사, HOWARD ZINN, 도서출판 시울

 오래 전에 노암 촘스키의 책에서 본 내용이었던 것 같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추앙받는, 노예 해방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사실은 노예 해방을 그렇게 바라진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 말이다. 정치적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노예를 해방했지만 링컨은 흑인이 백인과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었다.

 '미국민중사'는 이처럼 우리는 물론 미국 사람조차 잘 알지 못하는 미국 역사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책이다.

 노암 촘스키의 책에서 간단히 다뤘던 내용(링컨 신화의 진실)을 '미국민중사'에서 다시 만난 건 알고 보니 우연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하워드 진'은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손 꼽힌다. MIT에서 기호학을 가르치는 노암 촘스키와 같이 하워드 진 역시 보스턴 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다. (지금도 일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던 새로운 내용 중 몇가지롤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신대륙까지 항해하는 비용을 대준 왕실에 그 댓가로 신대륙의 금덩어리 같은 결과물을 발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협박해서 금을 모으는 데 집착했고, 그로 인해 몇 몇 섬의 원주민이 절멸한 것을 비롯해서 콜롬버스 원정대의 발길이 닿은 곳의 수 많은 원주민이 스페인 군대에 의해 학살 당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다수는 여전히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를 기리고 있다.

- 노예무역자들은 노예를 짐짝 다루듯 배에 실었다. 아프리카의 노예를 아메리카까지 데려가는 데 두세달의 시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예들은 '선실' 같은 공간이 아닌, 몸을 돌아눕거나 일어나 앉을 수 없는 선반에 차곡차곡 누운채로 항해를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노예의 절반 내외는 항해 도중에 죽거나 미쳤다.

- 지금까지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로 추앙받는 워싱턴과 벤자민 프랭클린 같은 사람들은 '식민지의 자유'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식민지의 부자들과 사업가들을 영국의 세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대다수의 가난한 백인과 흑인 노예들은 부자들의 전쟁에 참여하길 원치 않았고 그 때문에 독립 전쟁은 그 과정에서 징병의 어려움을 비롯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 미국은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를 선정한다. 반면 미국은 남미에서 미국의 기업이 광산, 농장과 같은 곳을 독점으로 유지하고 현지인을 저임금, 악조건에서 일하도록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권만을 인정했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으로 뽑혔을 때 아옌데를 전복시키려는 군부의 쿠데타를 지원해주거나, 국민을 총칼로 억압하는 군사정권이 파나마 운하를 통제하도록 군사훈련, 자금, 무기를 대주기도 했다. 마치 그 옛날 우리나라에서 평시작전권을 갖고 있던 미국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무력진압을 허가하거나 최소한 용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오늘날에도 미국인이 100명이 죽을 때 1000명씩, 2000명씩 무고한 민간인들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죽어나가고 있다. 뉴스를 조금만 살펴보면 병원과 주거지역을 폭격해놓고 군사시설이었다고 끝까지 주장하거나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는 변명을 지금도 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그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두 권 모두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빡빡히 들어찬 내용을 읽느라 꽤 오래 시간이 걸렸다. 소책자 한 권 분량밖에 안되는 내용을 길게 늘이고 늘여서 두꺼운 표지를 갖다 붙인 '밀리언 달러 티켓'같은 허접한 책과 너무나도 비교된다. (물론 책의 분량과 책의 질은 별개의 문제지만.)

'회사가 당신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20대여 재테크에 미쳐라', '밀리언 달러 티켓', '실전 개인재무설계'와 같은 처세서, 재테크 서적, 경영 서적들은 내용도 그리 복잡하지 않고 분량도 많지 않아서 필 받으면 하루에도 다 읽을 수 있는데 이 책은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언제 읽기 시작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

이 책을 읽기 오래 전에 읽은 'the right nation'이라는 책이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기자 두명이 미국의 우파의 역사와 현재를 조명하며 쓴 책이다. 글 쓰는 업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들이 최고 주류 인사들을 접하며 작성한 '미국 우파 보고서'다. 역시 좀 두껍다. -_-;

이 책에서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참 흥미로운 건, 같은 사람을 놓고도 우파 지식인이 쓴 책과 하워드 진이 쓴 책은 너무나도 그 평가가 상반된다.

예를 들어 우파에서 볼 때 '조지 부시(아버지)' 대통령은 아이비 리그의 교육을 받은 동부 엘리트이며 아주 신사적인, 그래서 우파의 이익에 충실치 못한 부분도 많았으며, 충분히 우편향적이지 못했던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물론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미국민중사'에서 '조지 부시'는 그 어느 대통령 못지 않게 주류의 이익에 충실한 대통령이었으며 외교적 해결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도 전쟁을 선호하는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평가가 상반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대해서 만큼은 비교적 근접한 내용을 발견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인 출신으로 정치적 배경이 없었는데, 그 때문인지 대통령 집권 후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을 한동안 폈었다. 물론 우파에서는 이 시기를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모든 미사일, 탱크, 잠수함과 전투기는 가난한 사람의 빵을 빼앗아 만든 것들이다."



미국의 국방 예산은 세계 1위이다. 국방에 돈을 많이 쓰는 2위부터 10위까지의 모든 나라의 국방 예산을 모두 더한다고 해도 미국 혼자 쓰는 국방 예산보다 적은 액수이다.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4-5% 정도이지만 세계의 자원의 30%를 소비하고 있다.

하워드 진 스스로도 이 책에서 몇 차례 강조했고 번역자도 재차 강조한 사실이 있다.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 역사가이든 기자이든 누구든 간에 '객관성'이란 건 있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사실들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기록하느냐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의 미신을 쫓는 것은 무의미해보인다.

하워드 진은 기존의 주류 역사가들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핍박받은 다수 민중의 이야기를 선택했고, 주류 역사가들이 쌓아올린 산과 산 사이에 계곡을 최대한 메우기 위한 역작으로 이 책을 써냈다. 초판은 1980년에 쓰였고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2003년에 마지막으로 개정이 되었으며 번역본은 작년 8월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되뇌었다. '왜 그들은 우리를 증오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자세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명이 죽었을 때 아무 곳이든 눈에 띄는 곳을 폭격해서 100명 쯤 죽이는 방법으로는 테러를 멈출 수 없다. 국방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미국 국내외의 극빈 계층을 돕고 질병, 분쟁 예방에 쓰는 방법으로 미국은 스스로가 원하는 존중을 얻어내고 미국을 향한 3세계의 증오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것은 미국으로선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 '다행히도(?)' 테러라는 적을 '찾아냈고'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일 땐 다시 또 다른 적을 찾아낼 것이다. 미국의 국방 예산을 유지하고 군산복합체와 공영을 위해서 말이다.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는 말 그대로 민중의 역사다. 노예제 폐지, 인권, 인종차별 폐지, 남녀차별 폐지, 베트남전 종전과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의 질곡은 지도자들이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 아니고 모두 민중들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얻어낸 것들이다. 그를 통해 미국은 국내에서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뤄냈다. 하워드 진이 묘사한 민중의 힘이 앞으로는 미국의 대외 폭력정책을 해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데 희망을 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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