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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예술평

[서평] 일본인의 전쟁관

thezine 2007. 7. 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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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 신간 소설은 보안을 위해 수백억원이 투입되는가 하면 어떤 책은 아무런 마케팅도 없이 아무도 모르는 채로 잊혀지는 책도 있다.

 예전에 중국어를 처음 시작할 때, 도서관에 가서 제목에 '중국'이 들어가는 책들을 닥치는대로 빌려서 읽었다. 10권씩 쌓아놓고 훑어본 후에 읽을 만한 책을 추려서 대출 한도인 5권을 빌리고 시간나는대로 읽어가면서 다 읽은 책은 도로 갖다놓고 새로 빌리며 책을 읽었다.

 일본어를 언젠가는 공부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또 요즘 들어 중국의 역사책을 읽다보니 일본의 역사 역시 궁금해기도 했다. 미국, 일본, 중국 이 세 나라가 우리나라 역사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중국어를 시작했을 때처럼 일본에 대한 책을 닥치는대로 검색했다. 학생 시절과 달라진 점이라면 이젠 도서관에 가지 않고 인터넷 서점에서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한다는 점.

 아무튼 그렇게 '찜해둔' 책만 30권이 넘는데 그 중에 가장 먼저 '일본인의 전쟁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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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요시다 유타카, 일본의 '히토치바시 대학' 사회학부 교수, 역사학자

내용 소개:

 2차대전(태평양 전쟁, 한국 식민지화, 대만 식민지화, 중국 대륙 침략, 동남아시아 침략 포함)이 끝난 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의 변화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전쟁 책임에 대한 생각하고 받아들였는지 다양한 기록물(정치인의 언급, 잡지, 신문, 소설 및 도서 등)과 통계자료를 통해 이를 묘사하고 뒷받침한다.

군데군데 줄을 쳐가며 읽었지만 책을 소개하려니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가) 일본은 전쟁 책임 문제, 보상 문제를 별로 지지 않았다. 2차 대전 직후 불어온 '냉전이라는 훈풍' 때문이었다. 미국은 일본에 전쟁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당장 시급한 냉전 체제 하에서 극동에 거점을 마련하고 강화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이 때문에 전쟁 후처리는 부실하고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고 전쟁피해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나) 일본은 전범들을 재판하고 전쟁의 후속처리를 의미했던 '도쿄재판'을 통해 국외적으로는 최소한의 책임만을 인정하고 소수의 전범만 처형한 후 나머지 전범들은 석방했다. 또 국내적으로는 전쟁의 책임을 불문에 부쳤다.

다) 전후(戰後) 일본은 고도 성장을 이룩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전쟁에 대한 반성, 책임의 소재에 대한 정리 같은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 1965년도에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질 무렵, 한국은 과거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고 있었고, 일본 내부에서는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할 경우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고 박정희의 독재정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이유로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고 있었다. (역사책을 읽으며 종종 발견하는 의외의 사실들 중 하나다.)

마) 1980년대에 들어 일본 문부성이 '중국 침략을 진출로, 한국의 3.1운동을 폭동으로' 묘사한 교과서를 승인한 이후 이 문제가 한국과 중국에서 국제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비화되었다. 처음에는 한국과 중국의 반발과 비난을 무시했던 일본은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입장을 바꾸어 이 같은 내용을 고치기로 하고 침략 사실을 문부대신이 시인하기도 한다.

바) 망언을 쏟아내는 정치인과 그에 동조하는 극우파가 일정 비율로 항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의 과거 침략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일본인들 역시 적지 않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대하는 방침은 진정한 반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정치인들이 다양한 자리에서 언급한 대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사를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는 전략적 선택에 의한 반성이라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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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나는 대로 위와 같이 정리를 하긴 했는데 애당초 꼼꼼하게 읽질 않아서 좀 부실하다. --; 아무튼 대강이 저렇다는 말인데, 전후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냉전 때문에 대충 이루어졌다는 점, 전쟁의 책임이 있는 대다수의 지도자, 학자, 언론인, 군인들은 아무런 책임 의식 없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은 왠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일본의 전후 처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은 일제 시대에 일본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해방 후에 미군정의 편의를 위해 적절한 정리 절차 없이 그대로 기득권을 유지했고, 그 결과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아직까지도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대대로 고위공무원, 법관, 경찰, 군인 자리를 차지했던 아쉬운 과거와 닮았다.

 '일본인의 전쟁관'에 종종 등장하는 일본 극우파의 행동 들 중에 한국사람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 바로 시시때때로 터져나오는 망언이다. 한국과 중국의 국민 감정이 들끓을 때는 반성하는 척만 하고 곧이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들으면서 가식적인 반성에 분통 터져하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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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하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서 일본 의원들이 미국 신문에 전면 광고를 실어 책임을 부인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반발감만 불러 일으켜 역효과를 냈고,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미국 사람은 쓰지도 않는 '사과의 감정(sense of apology)'라는 말로, 아니 하니만 못한 사과를 했었다. (물론 일본 사람 치고는 저 정도면 상당한 사과의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긴 하다. 하지만 사과 받는 사람이 사과하는 사람의 처지를 너무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일본인의 전쟁관'을 읽으며 자꾸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근대 이후 외교적 마찰이나 압력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과', '사과 받는 사람이 진심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사과'로 일관했던 일본의 태도를 보며 박근혜 후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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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그 표현마저도 이리 닮았는지. 워싱턴포스트에 일본 의원들이 냈다는 '위안부 모집에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일본 극우파의 언동과의 비슷한 점 말고도 더 눈에 띄는 것은 박근혜가 이 말을 하기 2주 전에 고 장준하 선생의 부인을 만나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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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가 의문사한 장준하 선생의 부인을 찾아가 진심으로 위로 한다던 사람이 겨우 2주 후에 '5.16은 구국혁명이며 유신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18년 동안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사람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스스로 권력을 넘겼을 것이라고 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5.16 당시 학교에 입학했던 초등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 회사를 다닐 때까지 박정희는 권좌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 그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사람들은 '대통령은 원래 박정희이고 언제까지나 박정희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재원 마련에 대한 대책도 없이 하루에도 몇 조원짜리 공약을 쏟아내는 박근혜 후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겠느냐는 질문에 기껏 한다는 대답이 '씀씀이를 줄여서'라는 대답을 하는 지지율2위 후보. 유신을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하고 5.16을 구국혁명이었다고 말하는 역사인식을 가진 후보. 1960년대의 정신으로 2007년을 살아가는 후보. 대한민국의 수준에 딱 맞는 후보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의 과거 반성과 박근혜의 역사 인식에 공통점을 느끼는 건 나뿐인 걸까? 궁금해진다.

-끝-


(참고로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자료를 올린다. 어쩌다 보니 조선일보 자료가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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